수필

“그날 밤 눈사람”

유소솔 2025. 5. 14. 00:00

 

           - 시인 박목월 교수의 부부애

                                                                      박동규 박사(박목월 시인의 장남)

 

내가 6살 때였습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밤인데, 저녁을 먹고 나서 어머니가 닦아 놓은 밥상에서 아버지는 시를 쓰시려고 원고지를 올려놓고 연필을 깎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나에게 세달 된 여동생을 등에 업히라고 하고, 포대기를 덮고서는 옆집에 가서 놀다 올게.”하고 나가셨습니다.

나는 글 쓰는 아버지의 등 뒤에 붙어 있다가 잠이 들었죠.

 

얼마를 잤는지 알 수 없는데, 아버지가 나를 깨웠습니다.

통행금지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네 어머니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 나가서 어머니를 좀 찾아오너라.

나는 자던 눈을 손으로 비비고 털모자를 쓰고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나가 보니까 무릎높이까지 눈이 쌓여있었고 하늘에서는 계속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 집 저 집 어머니를 찾아 다녔지만 찾지를 못했는데,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어머니와 제일 친한 아주머니가 아랫동네에 살고 있어, 그 집에 한 번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골목길로 들어서는데, 전봇대가 있고 그 전봇대 옆에 나보다 더 큰 눈사람이 있었습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눈사람 곁을 스쳐 지나가는데 뒤에서 동규야~”하고 불렀습니다.

보니까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눈을 철철 맞으며 보자기를 머리에 쓰고 있었는데 그 보자기를 들추면서 가까이에 오시더니 너 어디 가니?’하고 물었습니다.

나는 어머니를 찾아오라고 해서 아랫동네 아줌마 집에 가는 길이라고 했더니, 어머니가 내 귀에 가까이 입을 대면서 물었습니다.

아버지 글 다 썼니?” 나는 고개만 까딱였더니, 어머니는 내 등을 밀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사건을 평생 잊지 못하고 삽니다.

세월이 갈수록 내 머릿속엔 몇 시간씩이나 눈구덩이에 서서 눈을 맞으며 세달 된 딸을 업고 있던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내 여동생이 아버지가 시를 쓸 때 울어서 방해될 까봐 그렇게 어머니는 나와서 눈을 맞고 서 있었던 겁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직장에 다닐 때 어머니에게 한 번 물었습니다.

엄마, 그때 얼마나 힘들었어. 아버지가 돈도 많이 벌어오지도 못하는데 어머니는 뭐가 좋아서 밖에 나가서 일도 하고 힘들게 고생하면서 눈도 오는데 애를 업고 있었어?”

어머니는 웃으면서 그래도 니 아버지는 밤에 그렇게 를 다 쓰고 나면 발표하기 전에 제일 먼저 나보고 읽어보라고 해~” 하고 웃으셨습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살아가면서 힘든 일을 겪어가면서 詩人으로 살아가는 아버지를 이해하는 것은 바로 시 한 편을 읽어보라고 하는 아버지의 배려의 힘이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사는 것은 이런 배려를 통해서 서로 사랑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