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게 하소서 3

기도하게 하소서

유소솔 기도는 언어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때 묻은 욕망이 깃든 언어는 기도가 아니다. 기도는 자기 포기抛棄, 자기 해체解體의 선언이다. 거짓된 언어 오염된 탐욕들을 몽땅 불살라버리고 진리의 빛 속에서 참되게 타오르는 기도는 겟세마네에서 피땀 흘리며 드린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자기 비움의 기도와 스스로 십자가 지는 삶이 없다면 아직 기도를 모르는 철부지일 뿐이다.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첫날 주여,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

2024.03.25

가을의 기도

- 김현승(1913-1975)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기름진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1956년 작

2022.09.08

9월의 기도

박화목(1924-2005) 가을 하늘은 크낙한 수정 함지박 가을 파란 햇살이 은혜처럼 쏟아지네 저 맑은 빗줄기 속에 하마 그리운 님의 형상을 찾을 때, 그러할 때 너도밤나무 숲 스쳐오는 바람소린 양 문득 들려오는 그윽한 음성 너는 나를 찾으라! 우연한 들판은 정녕 황금물결 훠어이 훠어이 새떼를 쫓는 초동의 목소리 차라리 한가로워 감사하는 마음 저마다 뿌듯하여 저녁놀 바라보면 어느 교회당의 종소리 네 이웃을 사랑했느냐? 이제 소슬한 가을밤은 깊어 섬돌 아래 귀뚜라미도 한밤 내 울어예리 내일 새벽에는 찬서리 내리려는 듯 내 마음 터전에도 소리 없이 낙엽 질텐데 이 가을에는 이 가을에는 진실로 기도하게 하소서 가까이 있듯 멀리 멀리 있듯 가까이 있는 아픔의 형제를 위해 또 나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