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어령 교수(1934~2022)
보아라, 이것은 활이란다.
화살을 당기고 그 줄을 당기면
반달 같던 활이 보름달처럼 커지고
팽팽한 활시위를 튕기면
화살은 아주 빨리 아주 힘차게 날아간단다.
보아라, 이것은 하프라는 악기란다.
큰 활처럼 생겼지.
이 줄을 튕기면 아름다운 물방울,
은방울 같은 예쁜 소리가 울린단다.
사람들은 그 소리에 맞춰 노래 부르고 춤을 춘단다.
보아라, 활은 사냥터에서
전쟁터에서 쓰는 거란다.
사냥터에서 화살을 맞은 사슴은 죽고 만단다.
전쟁터에서 화살을 맞은 사람은 죽고 만단다.
하프, 가야금, 거문고, 기타, 바이올린
줄 달린 모든 현악기들은 활시위에서 생긴 거란다.
화살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목숨을 빼앗지만
줄 달린 악기들은 죽어 있는 것들에게 목숨을 준단다.
활은 전쟁, 하프는 평화!
네가 크거든 활시위를 모아
예쁜 소리를 내는 가야금을 만들거라.
날아가는 화살이 아니라
가슴을 뚫고 적시는 노랫소리를 울리게 하라.
알겠니?
활이 아니라 하프란다. 가야금이란다.
날아가는 화살이 아니라
손끝에서 튕기는 맑은 생명의 소리란다.
활이 아니라
하프가 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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