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아침 윤병춘(기독교문협 부이사장) 새벽이 깨기 전에 어머니의 아침은 눈을 뜬다.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 웃기도 전에 어머니는 텃밭에서 채소들과 인사로 시작한다. 햇빛이 얼굴 내밀기 전에 어머니의 아침은 된장찌개의 구수한 연주로 밥상을 차린다. 어머니의 아침은 새들이 깨기 전에 빨래터에서 방망이 소리로 하루를 깨우고 있다. 시 2023.05.26 (12)
위대한 유산 유안진(서울대 명예교수) 저녁상을 물리고 지아비를 기다리며 아가와 함께 읽는 ‘예수의 생애’ 네 눈이 보아내는 참 모습 그대로 네 귀가 들을 수 있는 옛 음성 그대로 젖 먹는 네 입이 처음으로 부르는 위대한 그 이름 아가야 네게 줄 나의 재산은 오직 그의 이름뿐이란다. 시 2023.05.17 (24)
서로가 꽃 - 나태주(풀꽃문학관장) 우리는 서로가 꽃이고 기도다. 나 없을 때 너 보고 싶었지? 생각 많이 났지? 나 아플 때 너 걱정됐지? 기도하고 싶었지? 그건 나도 그래 우리는 서로가 기도이고 꽃이다. 시 2023.05.11 (20)
어머니의 길 김후란(1960년 현대문학 등단) 그 옛날 오백년 전 어린 율곡 손잡고 한양으로 떠나던 신 사임당 오죽헌에 남겨둔 어머니 생각에 돌아보고 돌아보던 눈물의 오솔길 그 길 따라 애틋한 어머니들 보릿고개 이겨내려 함지박 이고 가족 생각 종종걸음 장터 오가던 고달픈 발자국 남겨 있네. 아, 그 마음 깊어라 강릉 핸다리 넘어 대관령 찬바람 속 유구한 사모정공원길 효심과 덕성으로 꿈을 키워낸 영원히 빛나는 어머니 길 시 2023.05.07 (21)
산 너머 저쪽 정지용(1903- 1950) 산 너머 저쪽에는 누가 사나? 뻐꾸기 영 위에서 한나절 울음 운다. 산 너머 저쪽에는 누가 사나? 철 나무 치는 소리만 서로 맞어 쩌르릉! 산 너머 저쪽에는 누가 사나? 늘 오던 바늘 장수도 이 봄 들며 아니 뵈네. 시 2023.05.03 (34)
오월 - 오순화 예쁘지 않은 꽃이 없고 푸르지 않은 나무가 없다 사방천지가 초록으로 물들어 초록 웃음 초록 눈 초록 향기 넘치도록 사랑 하여도 좋을 온갖 마음사치를 누려도 좋을 아름다운 날들....... 시 2023.05.01 (25)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제1회 박용철문학상 수상)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시 2023.04.26 (18)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 나태주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사랑한다는 말 차마 건네지 못하고 삽니다. 사랑한다는 그 말 끝 까지 감당할 수 없기 때문 모진 마음 내게 있어도 모진 말 차마하지 못하고 삽니다. 나도 모진 말, 남한테 들으면 오래 잊혀지지 않기 때문 외롭고 슬픈 마음 내게 있어도 외롭고 슬프다는 말 차마하지 못하고 삽니다. 외롭고 슬픈 말, 남한테 들으면 나도 덩달아 외롭고 슬퍼지기 때문 사랑하는 마음을 아끼며 삽니다. 모진 마음 달래며 삽니다. 그럴수록 외롭고 슬픈 마음을 숨기며 삽니다. 시 2023.04.23 (37)
살구꽃 백승훈 (꽃나무 전문 시인) 볕도 잘 들지 않는 좁은 골목이 살구꽃 피어 온통 환하다 화사한 꽃빛에 이끌려 나무에게로 다가서다가 화르르 지는 꽃잎에 놀라 걸음을 멈춘다 꽃가지 사이를 날며 꽃을 쪼던 직박구리 한 마리 인기척에 놀라 힐끗 나를 보곤 이내 날아가 버린다 살구꽃 피었다 지듯 가지 위에새 한 마리 앉았다 날아가듯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지나가는 봄...... 시 2023.04.2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