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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길

김후란(1960년 현대문학 등단) 그 옛날 오백년 전 어린 율곡 손잡고 한양으로 떠나던 신 사임당 오죽헌에 남겨둔 어머니 생각에 돌아보고 돌아보던 눈물의 오솔길 그 길 따라 애틋한 어머니들 보릿고개 이겨내려 함지박 이고 가족 생각 종종걸음 장터 오가던 고달픈 발자국 남겨 있네. 아, 그 마음 깊어라 강릉 핸다리 넘어 대관령 찬바람 속 유구한 사모정공원길 효심과 덕성으로 꿈을 키워낸 영원히 빛나는 어머니 길

2023.05.07 (21)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제1회 박용철문학상 수상)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2023.04.26 (18)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 나태주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사랑한다는 말 차마 건네지 못하고 삽니다. 사랑한다는 그 말 끝 까지 감당할 수 없기 때문 모진 마음 내게 있어도 모진 말 차마하지 못하고 삽니다. 나도 모진 말, 남한테 들으면 오래 잊혀지지 않기 때문 외롭고 슬픈 마음 내게 있어도 외롭고 슬프다는 말 차마하지 못하고 삽니다. 외롭고 슬픈 말, 남한테 들으면 나도 덩달아 외롭고 슬퍼지기 때문 사랑하는 마음을 아끼며 삽니다. 모진 마음 달래며 삽니다. 그럴수록 외롭고 슬픈 마음을 숨기며 삽니다.

2023.04.23 (37)

살구꽃

​ 백승훈 (꽃나무 전문 시인) 볕도 잘 들지 않는 좁은 골목이 살구꽃 피어 온통 환하다 화사한 꽃빛에 이끌려 나무에게로 다가서다가 화르르 지는 꽃잎에 놀라 걸음을 멈춘다 꽃가지 사이를 날며 꽃을 쪼던 직박구리 한 마리 인기척에 놀라 힐끗 나를 보곤 이내 날아가 버린다 살구꽃 피었다 지듯 가지 위에새 한 마리 앉았다 날아가듯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지나가는 봄​......

2023.04.2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