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의 감동 이야기 37

자동차 왕 '헨리 포드'의 가정

헨리 포드(Henry Ford)는 직장 퇴근 후에도 그냥 쉬지 않고 집 뒤뜰로 갔다. 그는 집 뜰에 있는 낡은 창고에서 무슨 연구로 날마다 밤을 번번이 새웠다. 그 사실을 알게된 사람들이 그에게 미친 짓이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며 격려와 믿음을 심어 주었다. 겨울밤에는 추위에 떨면서도 남편을 위해 곁에서 등불을 계속 비추어 주었다. 마침내 그가 자동차를 발명하여 실험에서 대성공했을 때였다. 기자가 그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습니까?"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아내의 남편이 되고 싶습니다. 아내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무엇으로 태어나도 상관없습니다!“ 그는 훗날 고향에 조그마한 집을 아담하게 한 채 지었다. 대 부호가 살기에는 매..

제자의 견책을 순종한 고당 조만식 장로

일제치하에서 독립운동가요 민족지도자 조만식 선생은 평양 산정현교회의 장로였다. 그 교회의 목사는 조만식 장로가 민족지도자 양성학교인 오산중학교 교장시절에 학업과 교훈을 받은 제자 주기철이 목사로 섬기고 있었다. 어느 주일 아침 9시, 조만식 장로가 민족지도자의 긴급회의에 참석하고 11시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급한 걸음으로 교회에 왔으나 예배 시작 5분이나 늦었다. 그때는 교회 안에 의자 없이 마루 바닥에 앉아서 예배드리던 시절이었다. 그가 미안한 마음으로 머리 숙여 조심스럽게 걸어서 어느 바닥에 앉으려고 하자, 담임 주기철 목사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졌다. "조 장로님, 앉지 마시고 뒤에 서서 예배 드리세요." 그 말에 조 장로는 아무 말 없이 뒤로 가서 그대로 서서 한 시간 동안 회개의 눈물 흘리며 예배를..

병사묘역에 부하들과 함께 잠든 채명신 장군

2013년 11월 25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의 제2 병사묘역에 한 장군이 묻혔다. "장성묘역 대신 병사묘역에 묻히기 원한다"는 유언을 남긴 베트남전의 영웅 고 채명신 장군(중장. 86세)의 삼우제가 치러졌다. 부인 문정인 여사와 아들딸을 비롯한 유족들, 베트남전 참전 노병들이 추모예배를 드리 면서 고인을 기렸다. 채 장군은 00교회의 진실한 성도로 직분은 원로장로였다. 그런데 4일장으로 치러지는 채장군의 장례기간 내내 빈소를 지키며 조문객들을 맞았던 채 장군의 동생 채00 교수(76)가 보이지 않았다. 그가 나흘간 밤샘하며 쌓인 피로를 걱정해 “삼우제는 직계가족만으로 치를 테니 나오지 말라”는 문정인 여사의 배려 때문이다. 그러나 동생 채 교수는 채 장군이 60년 넘게 숨겨온 또 다른 미담의 주인공이..

유명 화가 '솔맨'의 기적 이야기

미국에서 태어난 '워너 솔맨' (Warner Sallman: 1892~1968) 은 미국이 자랑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Head of Christ"(그리스도의 머리)라는 예수님의 초상화를 그렸다. 예수님의 머리만 담긴 그의 그림책은 1940년도에 500만부 이상이 인쇄되었고, 오늘날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그림으로 솔맨은 가장 인기 있는 화가가 되었다. 그런데 이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가 있다. 그는 1917년 결혼하고 얼마 안 된 젊은 나이에 중병에 걸렸다. “당신은 임파선 결핵입니다.” 의사가 진단하고 길어야 3개월을 살 것이라고 통지했다. 이 말에 그는 절망했다. 유명한 가수였던 그의 아내는 그때 임신 중이었기에 아내에게 더욱 괴로웠다. ..

신앙 바탕으로 사람들을 잘 섬긴 여왕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에 - 이억주(한국기독교언론회 대표)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하였다. 그는 세계 50여개 나라의 ‘국가 연방’의 상징적 왕이었고, 영연방의 여왕이었다. 또 영국 국교(國敎) 의 수장으로 70년간 영국 왕으로 재임했는데, 2012년 영국인이 뽑은 ‘역대 가장 위대한 영국왕’에서 제1위를 차지할 정도로 국민의 절대적 사랑을 받았다. 그가 국민의 존경과 세계인의 관심을 끈 것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군주의 역할을 잘 수행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영국 역대 수상 15명과 함께 영국을 섬겼는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매우 어려운 시기에 영국을 통합하고 안정되도록 이끄는데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그는 공주 시절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군에 자원하여 운전병으로 군 복무를 ..

태권도 문대성 선수, 그리스의 체육대상 수상자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폐회식 직전 경기는 온 인류의 가슴에 감동의 물결이 일게 했다. 보통 폐회식 직전 행사는 마라톤경기로 진행하여 입상자들의 골인 장면을 세계인들의 관심이 집중하기에 마라톤을 올림픽의 꽃이라고 한다. 올림픽의 시작도 그리스의 승전소식 전하기 위해 마라톤 거리만큼 달렸다가 죽은 한 용사를 기념하기 위한 것 아니던가. 그런데 이날 폐회식에 앞선 경기는 마라톤이 아닌 태권도였다. 주최국 그리스의 자존심을 건 태권도 80kg 이상의 결승전을 선택했다. 이는 그리스 선수가 결승전에 진출하자 우승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리스의 우방국 심판도 세웠다. KO승이 아니면 한국 선수에게 불리할 것이라고 중계한 한국 아나운서의 멘트에 TV로 시청하던 나는 기도했다. 우리 문 선수..

오른편 뺨을 치거든

산상수훈 묵상 -양왕용 교수(부산대 명예)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대적하여 악한 자를 이긴다고 수 천 년 동안 우리의 적개심을 키워온 그 가르침. 당신께서 그 가르침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악을 다스리는 재판관의 것임을 깨닫게 하시고 악을 이기는 방법으로 이르기를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 하십니다.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노를 삼키지 않고 대적하는 것은 세상사람 누구나 할 수 있으나 더 때리라고 다른 뺨을 대주는 것은 당신의 사람들 우리만 할 수 있는 일. 악한 자의 포악한 행동은 끝없이 자행되는 것이 아니고 마지막에는 당신께서 징벌하신다고 믿고는 기다리라는 말씀에 순종하고 또 순종합니다.

바보 의사 장기려 박사(2)

그는 무소유자로, 이웃과 모든 것 나누며 가난하게 살았다. 평생 집이나 재산을 소유하지 않고 무소유로 가난하게 살았다. 그의 삶의 목적은 나눔과 베풂이었다. 그는 성경에서 예수님 사랑의 삶을 통해 많은 어려운 사람들이 삶의 질곡에서 벗어나 빛을 찾은 것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주님을 평생 본 받아 살기로 작정했다.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나 청지기로 생각했다. 예수님의 말씀 따라 자신을 주인이나 소유주로 생각하지 않고 종이나 청지기로 여기며 살았다. 가난한 환자를 무료로 진료해주고 스스로 가난해져서 사람들의 삶을 부요하게 만들어 주는 것을 크리스천의 당연한 의무요 책임이라고 여겼다. 평양에서 국군 부상병을 치료하다 황급히 월남한 1951년 5월부터 부산에서 창고를 빌려 혼자서 간이병원을 설립했다...

바보 의사 장기려 박사(1)

“이 환자에게 닭 두 마리 값을 내주시오.” 이것은 잘 먹어야 하는 환자에게 써준 바보 병원장의 처방전이다. “제가 밤에 뒷문을 열어 놓을 테니 어서 집으로 그냥 가세요” 어느 가난한 분이 퇴원할 때 돈이 없어 울고 있을 때 그 사실을 눈치 채고 병원 뒷문으로 몰래 빠져 나가게 해 준 것도 바보 병원장의 짓이다. 이 바보 의사가 바로 장기려(張基呂) 박사다. 장기려 박사가 1995년 12월25일 성탄절 새벽 1시45분 85세로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다. 한국의 언론은 ‘한국의 슈바이처’ 또는 ‘살아있는 작은 예수’가 우리 곁을 떠났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어두운 밤과 같은 시대에 빛을 비추며 주님과 병든 사람들을 섬기면서 겸손했고, 스스로 가난하면서 남을 따뜻하게 보살펴 준 은인이었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왼손도 모르는 오른 손의 선행자들

43년간 섬긴 소록도 한센병 간호사 외국 수녀 이야기 오랫동안 한센병 환자를 돌보던 수녀 2명이 임무를 마치고 말없이 떠났다. 소록도에서 평생을 환자를 내몸처럼 돌보던 마리안(71), 마가레트(70) 수녀가 43년 동안 임무 잘 마치고 고국 오스트리아로 떠난 때가 2002년이었다. 마리안 수녀는1959년에, 마가레트 수녀는 1962년에 소록도에 첫발을 디뎠었다. 두 수녀는 처음부터 약을 잘 발라줘야 한다며 맨 손으로 환자의 상처에 약을 잘 발라줬다. 또 외국 의료진을 초청해 장애인에게 교정수술을 해 주고, 한센인 자녀를 위한 영아원을 운영하여 잘 성장시켰다. 우리 정부는 이들의 선행에 1972년 국민포장, 1996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소록도 그들의 집에 찾아가서 그들의 공로를 치하하고 정중하게 수여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