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33

얼음 위에 쓴 동시

매섭게 춥던 지난겨울 꽁꽁 언 마을 호수 아이들이 왁자지껄 신나게 뛰놀았지 팽이 치는 아이들 썰매 타는 아이들 스케이트 지치는 아이들 지쳐 눈 위에 눕는 아이들 나는 미소로 지켜보며 솔가지 붓으로 떠오르는 동시를 얼음 위에다 크게 썼었지. 이제 봄이 된 호수에는 푸르른 물이 가득하고 얼음 위에 쓴 내 동시는 사라졌으나 큰 잉어 한 마리 물 위로 크게 솟구치는 걸 보며 아, 나는 기원했다. 내 동시를 먹은 물고기들이 싱싱하고 통통하게 자라 낚시로 사람들 밥상에 오른다면 그걸 먹은 사람들의 마음 모두 동심으로 변할 수 있기를 동심으로 환한 세상이 될 수 있기를.

동시 2021.01.08

나와 거울

너를 통해 나를 본다 아직 내 진짜 얼굴 한 번도 본적이 없거든 내가 웃으면 네가 웃고 네가 슬프면 나도 슬퍼했지. 언젠가, 내가 놀란 건 난, 기분이 좋은데 네가 우중충해서 말야 거울을 말갛게 닦고서야 내 얼굴이 환함을 알 수 있었지. 맞아. 내가 즐거우려면 너를 늘 닦아줘야 하듯 나 혼자서는 살 수 없어 내가 너고 네가 바로 나니까. - 계간문예 상상탐구 게재(2019)

동시 2020.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