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33

이슬 1

어둔 세상 지키는 밝은 눈 새론 세상 밝히는 맑은 등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시평) 시인은 모름지기 언어를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류 시인이 이 시에서 언어를 절제할 줄 아는 능력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작품은 모두 스무 자로 되었으며, 또 연마다 4-3-2-1의 가장 짧은 글자로 역 삼각형의 정형시를 형성하고 있어, 기가 막힌 재주가 아닐 수 없다. 또 이슬방울을 어둔 세상을 지키는 으로, 새로운 세상을 밝히는 으로 비유하는 혜안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엄기원 원로아동문학가)

동시 2020.11.20

나뭇잎 편지

몇 차례 비가 오고 찬 서리 내리자 나무들이 서둘러 옷을 벗고 편지를 날려 보낸다. 단풍 잎은 빨갛게 빨갛게 더욱 열심히 살라하고 은행 잎은 노랗게 노랗게 서로 정답게 살라하고 오동 잎은 드넓게 드넓게 서로 감싸며 살라한다. 가을은 나무들 옷자락 편지를 주워 읽는 계절이다. - 소솔 제1동시집(1991) 수록 - 5,6학년 동시교육교재 수록(1998) ------------------------------------------ 이 동시를 읽으면 나무 한그루, 풀 한 뿌리도 우리에게 무심한 것이 없음을 알게 한다. 가을에 흔히 볼 수 있는 빨갛게 물든 단풍잎이나, 놀하게 물든 은행잎이나, 하다못해 갈색으로 물들어 있는 오동잎 까지도 우리에게 큰 의미와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그러니 시인의 사명이 얼마나 크..

동시 2020.11.20

먼 바다

멀고 먼 푸른 바다 헤엄을 치고 보트를 저어보고 모터보트로 신나게 달려보지만 끝 간 데 몰라 아이들은 잠잘 때마다 수평선 넘나드는 꿈을 꾼다. - 소솔 제1동시집 수록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시평) 망망대해! 그 넓은 바다를 꿈꾸는 어린이의 세계. 오늘의 도시 어린이들은 공부와 과외에 짓눌려 살아가고 있다. 옛날보다 물질적 혜택은 많이 누리고 있지만, 자연 속에서 뛰놀면서 미래의 아름다운 꿈을 키워 갈 틈이 없어 안타깝기만 한다. 이런 현실을 알기 때문에 류 시인은 라는 크고 넓은 꿈 같은 멋진 동시를 어린이들에게 선사하고 있는지 모른다.(엄기원 아동문학연구회장)

동시 2020.11.20

꽃이 사는 이유

이 세상 고운 빛깔 모두 모아 하나님은 꽃을 만들었습니다. 그토록 많은 빛깔 중에서 벚나무에게 흰 빛을 개나리에게 노랑 빛을 진달래에게 진분홍빛을 예쁘고 샘이 많은 장미에겐 가시와 함께 빨강, 노랑, 하양, 분홍, 까망... 원하는 빛을 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꽃들마다 향주머니 하나씩 안겨주었습니다 그래서 꽃은 제각기 다른 빛깔로 제각기 다른 향기로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며 열심히 사는 것입니다. - 소솔 제2동시집(2001)에 게재 - 한국기독교 시의 주류 '사랑의 시학' 수록(2020) ----------------------------------- (시평) 이 시는 2019년 최규창 시인이 기독교신문 연재 에서 대표적 기독교 시의 하나로 선정했다. '태초에 하나님의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 1)는..

동시 2020.11.20

사진기 하나 있다면

사진기 하나 있다면 봄 뜰에 함박 웃는 개나리꽃 찰칵 찍어두었다가 엄마한테 야단맞고 우는 아이에게 개나리꽃 환한 웃음 보여주고 싶다. 바구니 하나 있다면 봄 언덕에 곱게 핀 진달래꽃 곱게 접어두었다가 겨우내 추워 떠는 아이들에게 진달래꽃 예쁜 옷 지어주고 싶다. 녹음기 하나 있다면 봄 하늘에 지저귀는 종달새 노래 몰래 담아두었다가 몸이 성치 못한 아이들에게 종달새 희망찬 노래 들려주고 싶다. - 동아일보신춘문예(1966) 최종심 4편 중에 오른 시 - 월간문학공간 당선 동시(1990)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시평) 이 시는 모두 세 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 연에서는 사진기로 개나리를 찍어두었다가 우는 아이에게 개나리 환한 웃음을 선사하고 싶..

동시 2020.11.20

겨울 우체통

흰 눈이 쌓인다 빨강 우체통 위에 흰 사연이 쌓인다 우체통 안으로 갈 곳이 서로 다르고 받는 사람이 서로 달라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 비가 내리고 눈보라가 휘날려도 편지는 언제나 옷깃에 날개를 단다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기쁨에. - 월간문학(2005)에 게재 - 소솔 제3동시집 수록(2018) --------------------------------------------------- (시평) 맑고 포근한 겨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네요. 흰 눈이 소복소복 쌓이는 빨강우체통, 그 안으로 흰 사연이 쌓이는 정경이 눈송이처럼 따스합니다. 기다리는 사람에,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기쁨이 있어 빨강 우체통은 그렇게 추운 겨울도 아랑곳 않고 길가에 서 있다는 생각에 우리 맘이 왠지 폭신해 집니다. 이 시를 읽으..

동시 2020.11.20

미술시간

하얀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린다 하늘엔 파란색 칠하고 바다엔 푸른색 칠하고 이를 어쩌나 하늘과 바다가 붙어버렸다. 노란 돛단배는 어디에다 그리지? - 소솔 제3동시집 수록(2018) ------------------------------------------------------------------------------ 도화지에 그려진 바다와 하늘의 맞닿음, 갈라지고 떨어지기보다는 하나 되는 삶의 이치, 그곳엔 누구도 들어갈 수 없을 만치 빈 공간이 허용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이게 속맛입니다. 돛단배 하나 그릴 자리가 없더라도 바다와 하늘이 맞닿으니 어쩐지 든든하고 넉넉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따뜻한 게 아닐까요? (김완기 원로 아동문학가)

동시 2020.11.20

재개발 산동네

앞집이 이사 가고 또 옆집이 이사 갔다. 하루가 다르게 텅텅 비어가는 산동네 정답던 동네가 을씨년스럽고 무서워진다. 빈집마다 붉은 ☆이 그려지는데 우리는 어디로 가나. 밤에 엄마가 한숨을 쉴 때마다 나는 하늘의 ☆을 보며 기도한다. “저 하늘의 ☆이 우리 집에 내려오게 하소서.“ ---------------------------------------------------- 오순도순 정답게 모여 살던 산동네가 갑자기 재개발에 밀려 흩어지게 됩니다. 엄마가 긴 한 숨을 쉴 때마다 아이는 하늘의 별을 바라본다고 했네요. 그리고 작은 가슴으로 기도하네요. 저 하늘의 별이 우리 집에 내려오게 해달라고 손을 모읍니다. 아이다운 순수함을 보게 됩니다. 별은 꿈입니다. 어려운 처지에서 별을 찾는 마음, 풋풋함이 묻어납..

동시 2020.11.20

철새

세상에 가장 큰 귀 하나 있어 푸른 하늘에 V자로 떼지어가는 저 멋진 철새들의 속삭임을 슬며시 엿들을 수만 있다면----. - 계간 사상과 문학(2010) 게재 - 한국문협 아동문학선집에 수록(2015) ---------------------------------------------------------------- 푸른 하늘을 V자로 떼 지어 날아가는 철새들은 어떤 이야기들을 서로 속삭이며 날아갈까?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끼륵끼륵 속삭이는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큰 귀를 가지고 싶어 하는 호기심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특히 군더기가 한 곳도 없이 꼭 필요한 말만 사용했기 때문에 시어들이 제자리에서 반짝반짝 빛을 발휘하며 깔끔하게 느껴진다. 시는 간결 할수록 더욱..

동시 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