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4

오늘이 좋다

김창희(수필가, 초등교장 역임) 어제는 눈이 내리더니 오늘 아침 기온이 4도나 더 떨어졌다. 밖은 찬바람이 모자, 장갑, 오리털 점퍼로 중무장한 옷 속을 파고든다. 한참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을 때인데도 인적이 뜸하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은 세상이 어떻든 간에 따뜻하고 찬란하게 보인다. 오늘이 좋다. '나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가던 길 잠시 멈추고 뒤돌아보니, 걸어온 길 모르듯이 가야할 길도 잘 알 수가 없다. 그리움의 순간들이나 매달리고 싶었던 욕망의 시간도 인생의 겨울 문턱에 서고 보니 모두가 놓치고 싶지 않은 추억이다. 이제는 어디로 흘러 갈 것인지 걱정하지 않는다. 아쉬움도 그리움으로 간직하고 오늘의 거울 앞에 선다. 오늘도 어제처럼, 내일은 오늘처럼 살면 된다. 살맛나는 세상은 사람관계가..

수필 2022.12.15

봄의 예찬(안병욱)

봄의 예 찬 안병욱(1920~ 2013, 철학자) '봄은 처녀, 여름은 어머니, 가을은 미망인, 겨울은 계모’ 이는 일 년 사계절을 여인에 비유한 폴란드의 명언이다. 봄은 처녀처럼 부드럽다. 여름은 어머니처럼 풍성하다. 가을은 미망인처럼 쓸쓸하다. 겨울은 계모처럼 차갑다. 봄 처녀가 불룩한 생명의 젖가슴을 갖고 부드러운 희열(喜悅)의 미소를 지으면서 우리의 문을 두드린다. 봄은 세 가지의 덕을 지닌다. 첫째는 생명이요, 둘째는 희망이요, 셋째는 환희(喜)다. 봄은 생명의 계절이다. 땅에 씨앗을 뿌리면 푸른 새싹이 난다. 나뭇가지마다 신생의 잎이 돋고 아름다운 꽃이 핀다. 봄의 여신은 생명의 여신이다. 생생육육은 천지의 대덕이다. 세상에 생명이 자라는 것처럼 아름답고 신비롭고 놀라운 일이 없다. 시인이여,..

수필 2022.03.08

또 하나의 기다림

또 하나의 기다림 - 김창희 산다는 건 기다림의 연속이다. 단지 그 기다림의 색깔이 누군가에는 다를 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 아니 다가올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사랑해서 기다리지만 때로 기다림의 시간만큼 사랑이 더 짙어지기도 했다. 기다림의 시간은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다. 가장 깊이 내게로 오는 시간이다. 시간을 견디며 사랑을 기다리는 일. 살아가야 하는 많은 날의 주인인 나는 또 어떤 기다림으로 오늘 견디며 살아야 할까. 2001년부터 연말이면 교수신문에서 한해를 상징하는 사자성(四字成語)를 정해 발표하고 있다. 이는 전국의 대학교 교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하여 가장 많은 선택 받은 사자성어라고 한다. 세상살이가 어렵고 힘들었든지 늘 부정적인 사자성어가 대다수였다...

수필 2021.12.27

인생 계산서

인생계산서 - 김창희(수필가. 교장 역임) 결혼하자 월급 봉투를 몽땅 아내에게 가져다 주었다. 결혼 전에 모아 놓은 재산도 없고 수저 색깔이 흙색이라 물려 받은 유산도 없었다. 전세도 아닌 방을 얻어서 출발했지만 결혼 빚을 3개월이나 갚았다. 다들 그렇게 사는 세상이라 셈이 빠른 아내가 내민 신혼의 계산서에는 내 용돈이 월 3만 원이었다. 당시 월급이 적기는 했지만 용돈이 양에 차지 않았다. 적금 붓고, 생활비 떼고 애들 양육비 등 이리저리 제하고 나면 나도 할 말은 없었다. 초임 교사 때는 학교에서 배웠지만, 모르는 것이 천지였다. 하라는 것은 많은데 무엇부터해야할지 몰라 옆반 선배를 따라하기에 바빴다. 우리 반 아이들 이름도 외우기가 힘들었다. 이름은 알겠는데 얼굴이 헷갈렸다. 그럴만도 한 것이 우리..

수필 2021.12.10

낙엽을 태우면서

낙엽을 태우면서 -이효석(1907∼1942) 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거의 매일 같이 뜰의 낙엽을 긁어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날마다 하는 일이건만, 낙엽은 어느덧 날고 떨어져서 또 다시 쌓이는 것이다. 낙엽이란 참으로 이 세상의 사람의 수효보다도 많은가 보다. 삼십여 평에 차지 못하는 뜰이건만, 날마다의 시중이 조련(調練)치 않다. (중략) 벚나무 아래에 긁어모은 낙엽의 산더미를 모으고 불을 붙이면, 속엣 것부터 푸슥푸슥 타기 시작해서, 가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바람이나 없는 날이면, 그 연기가 낮게 드리워서, 어느덧 뜰 안에 가득히 담겨진다.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까지든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

수필 2021.11.25

백두산 ‘하늘 호수’ 찾아서

2001년 10월 초순에 여행하러 나선 ‘중국동포 사랑단’의 문학회원들은 서둘러야 했다. 기후 변화가 심한 백두산이기에 10월 초순에도 가끔 통제한다는 말에 우선 첫 행선지로 백두산 등반을 선택했다. 일행 18명은 연길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서둘러 마친 후, 예약한 버스에 올랐다. 인솔자가 누구에게 '출발 기도'하라는 말에 그가 약 30초 정도 ‘백두산을 꼭 볼 수 있게 하시고, 모두 건강하게 잘 다녀올 수 오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다. 중국의 모든 차는 한국처럼 빠르게 달리지 않고 겨우 시속 40km로 달렸다. 그게 운행 규칙이란다. 중국인 특유의 ‘만만디‘였다. 즉 ’천천히 안전하게‘라는 구호였다. '빨리 빨리'로 단련된 우리는 처음엔 좀 답답함을 느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수필 2021.10.29

장미

- 피천득(1910~2007) 잠이 깨면 바라다보려고 장미 일곱 송이를 샀다. 거리에 나오니 사람들이 내 꽃을 보고 간다. 여학생들도 내 꽃을 보고 간다. 전차를 기다리고 섰다가 Y를 만났다. 언제나 그는 나를 보면 웃더니, 오늘은 웃지를 않는다. 부인이 달포째 앓는데, 약 지으러 갈 돈도 떨어졌다고 한다. 나에게도 가진 돈이 없었다. 머뭇거리다가 부인께 갖다 드리라고 장미 두 송이를 주었다. Y와 헤어져서 동대문행 전차를 탔다. 팔에 안긴 아기가 자나 하고 들여다보는 엄마와 같이 종이에 싸인 장미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문득 C의 화병에 시든 꽃이 그냥 꽂혀 있던 것이 생각났다. 그때는 전차가 벌써 종로를 지났으나 그 화병을 그냥 내버려 두고 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전차에서 내려 사직동에 있는..

수필 2021.09.11

‘소망교도소’ 아십니까?

사회 범죄 줄이기 위해 ‘기독교 교도소’ 설립 추진위 조직 사회는 민주화가 되어 가는데, 이상하게 범죄자의 수는 계속 증가되고 있었다. 사회의 개혁을 기독교 신앙으로 이루려는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 약칭)은 산하 사회위원회의 세미나를 통해 사회의 범죄자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기독교 교도소’를 설립해 추진하기로 했다. 국가가 주도하는 교도소를 민간 운영으로 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한국교회 목회자 100명씩 모두 2번 초청을 받은 적이 있었다. 처음 초청 때는 1998년 4월 초였다. 그때 한기총에서 추진 중인 ‘기독교 교도소’ 설립 문제를 호소했더니, 대통령의 긍정적 답변을 받았다. 그래서 추진위원회(위원장 김삼환 목사)에서는 힘을 얻어 전국교회를 대상으로 모금..

수필 2021.07.13

한 소년이 겪은 6.25 (3)

그러나 곧 통일이 될 것만 같던 우리 아군의 승승장구의 기쁨도 잠시였다. 11월 초 신문에는 중공군 백만 명이 압록강을 넘어 불법으로 참전, 인해전술로 아군이 계속 후퇴하며 악전고투하고 있다는 암울한 소식이었다. 우리는 그때부터 학교에서 ‘무찌르자 오랑케 몇 백만이냐’하는 군가를 배우고 불렀다. 나중에 알고보니, 중공군 50만 명이 참전했는데, 적의 군사 비밀을 정확히 알지 못한 오보였다. 또 한 학기에 한 번씩 국군장병들과 우리를 도우러 온 유엔군에게 위문편지를 써서 보냈고, 이 일을 휴전될 때까지 3년 간 계속했다. 또 교회에서는 우리 국군과 유엔군의 승리를 위해 수요일 저녁마다 기도회를 개최할 때 나도 참석해서 기도했던 일이 생각난다. 중공군 개입이 없었으면 한국은 평화통일이 되었을텐데, 그들이 참..

수필 2021.06.25

한 소년이 겪은 6.25 (2)

그 해 10월 초순 어느 날이었다. 가까운 마을 사람들이 자은에 상륙한 국군이 온다는 말에 환영하기 위해 면사무소로 통하는 20릿 길을 두 줄로 길게 늘어섰다. 이장의 부탁으로 맨 앞에는 우리 아버지를 비롯 목포에서 피란 온 교회의 남자 어른들 네 분이 섰다. 우리 가족은 그 뒤에 서있었다. 마침내 무장한 다섯 명의 국군용사가 나타나자, 우리는 “대한민국 만세!”하고 소리 높여 웨쳤다. 그런데 그 중 한분은 총이 없는 우리 교회 김 목사님이셨다. 목사님이 먼저 아버지를 알아보신 후, 달려와서 피란 온 어른들과 서로 몸을 껴안고 기뻐하셨다. 부산의 피란에서 돌아 온 목사님이 섬으로 피란 간 네 집사들 가족들이 궁금해서 목포해군부대를 찾아 ‘국군 설무원’이란 노란색 완장을 두르고 함께 찾아 온 것이다. 그 ..

수필 2021.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