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인생 계산서

유소솔 2021. 12. 10. 00:03

 

 

   인생계산서

                   - 김창희(수필가. 교장 역임)

 

결혼하자 월급 봉투를 몽땅 아내에게 가져다 주었다. 

결혼 전에 모아 놓은 재산도 없고 수저 색깔이 흙색이라 물려 받은 유산도 없었다. 

전세도 아닌 방을 얻어서 출발했지만 결혼 빚을 3개월이나 갚았다. 다들 그렇게 사는 세상이라 셈이 빠른 아내가 내민 신혼의 계산서에는 내 용돈이 월 3만 원이었다. 당시 월급이 적기는 했지만 용돈이 양에 차지 않았다. 적금 붓고, 생활비 떼고 애들 양육비 등 이리저리 제하고 나면 나도 할 말은 없었다

 

초임 교사 때는 학교에서 배웠지만, 모르는 것이 천지였다. 

하라는 것은 많은데 무엇부터해야할지 몰라 옆반 선배를 따라하기에 바빴다. 우리 반 아이들 이름도 외우기가 힘들었다. 이름은 알겠는데 얼굴이 헷갈렸다. 그럴만도 한 것이 우리 반 아이들이 54명이었다. 

그런데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또 하나의 과제가 떨어졌다. 국화 삽목 화분을 반에 3개씩주고 잘 가꾸면 가을에 전시회를 한다고 한다. 상금도 있단다. 내 처지에는 상금에 눈이 돌아갈 만큼 마음이 여유롭지 못해 우리 반 아이들의 숫자가 3명 더 늘어난 느낌이었다. 

 

교실 앞 화단에 화분을 놓고 정신없이 1주일을 지낸 뒤에야 '아차!' 하며 그 화분이 생각났다

쉬는 시간에 달려가 보니 걱정과 달리 잘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선배 화분을 훔쳐보니 뭔가 다르다. 고추 모종처럼 막대가 꽂아져 있고 잎들이 깔끔하다. 

"선배님, 왜 막대를 꽂고 국화 잎들이 적어요?"

"지주를 세워 묶어줘야 곧게 자라고, 곁순을 따 주면 더 잘 자란다네."

가끔 물이나 주면 될 것 같았는데 이 애들은 내 손이 더 필요할 것 같아 걱정이 많아졌다. 지나쳐버린 1주일을 보상하는 마음으로 아침에 물도 주고 햇볕이 뜨거운 날은 그늘에 들여놓기도 했다. 

 

국화가 나를 닮았는지 줄기는 가늘고 멀쑥하게 컸다. 

"선배님, 내 국화는 키가 너무 커서 걱정이에요."

"응, 그럴 땐 핀을 줄기에 몇 개 꽂아주면 키가 덜 자라니 한번 해보게나."

그 해 내 국화는 키는 멀쑥하게 크고 꽃대는 이리저리 구부러졌으며 작은 꽃이 많이 피었다. 교장선생님 배려로 내 국화도 전시회 한 모퉁이에 놓였다. 눈 여겨 본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나와 우리 반 아이들은 그 국화 화분이 제일 예쁘다고 엄지를 세웠다. 그 속에 인생계산은 들어 있지 않았다. 

 

이렇게 저렇게 살았던 삶을 뒤돌아보니 이익만큼 부채도 많은 계산서가 나온다. 

인생을 경제적 가치로 계산 하는 사람이 많다. 사랑은 값을 매길 수 없다. 사랑이 전제되지 않으면 헌신도 계산이 된다. 그래서 헌신은 아프다. 힘들기 때문이다. 살다보니 너무나 세상적인 사람이 된 것 같다. 내게 이익이 없는 길이라면 가고 싶지 않았고 이익을 주지 않은 사람과 함께 하기를 주저했다.

 

박수 칠 때가 더 좋았다.  박수 받을 때 보다 마음이 더 가볍다. 

그 박수의 무게가 삶을 부담 없이 살기 어렵게 만든다. 받은 만큼 되돌려 주어야 한다. 햇살이 따가울 때는 늙은 나무의 그늘이 좋지만 비가 올 때는 잎이 무성한 나무의 그늘이 안전한 법이다. 고목나무의 뿌리는 튼튼해도 가지들은 약해지고 무성한 잎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러나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나무는 튼튼한 가지로 무성한 잎을 피워낸다. 지금의 나의 작은 사랑이 더 큰 사랑을 위해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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