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백두산 ‘하늘 호수’ 찾아서

유소솔 2021. 10. 29. 00:02

 

 

 

2001년 10월 초순에 여행하러 나선 ‘중국동포 사랑단’의 문학회원들은 서둘러야 했다.

기후 변화가 심한 백두산이기에 10월 초순에도 가끔 통제한다는 말에 우선 첫 행선지로 백두산 등반을 선택했다.

일행 18명은 연길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서둘러 마친 후, 예약한 버스에 올랐다.

인솔자가 누구에게 '출발 기도'하라는 말에 그가 약 30초 정도 ‘백두산을 꼭 볼 수 있게 하시고, 모두 건강하게 잘 다녀올 수 오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다.

 

중국의 모든 차는 한국처럼 빠르게 달리지 않고 겨우 시속 40km로 달렸다.

그게 운행 규칙이란다. 중국인 특유의 ‘만만디‘였다. 즉 ’천천히 안전하게‘라는 구호였다.

'빨리 빨리'로 단련된 우리는 처음엔 좀 답답함을 느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농촌의 풍경은 중국 도시보다 훨씬 낙후된 모습이었고, 우리의 농촌보다 많이 어려운듯 했다.

 

한참 동안 달리던 버스가 한 시간만에 갑자기 길가에 정차했다.

중국인 기사가 고장이라고 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었다. 기사가 낡은 버스 밑으로 들어가 차를 고치는 것을 보니 우리 60년대를 보는 듯 했다.  우리는 도시와 농촌의 삶이 별 차이가 없는데 중국은 여전히 극심한듯 했다.

우리는 밖에서 삼삼오오 한담하는데 평소 농담 잘 하는 분이 불쑥 한마디했다.

“버스 떠날 때 하나님께 기도하더니 이게 뭐요? 이게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거요?“

시비를 거는 것보다 농담조로 웃으며 던진 말이었다.

떠날 때 기도했던 목사님이 얼굴을 붉히자, 내가 한 마디 거들었다.

고장난 버스는 중국 버스회사 정비불량이지, 하나님의 탓 아닙니다.그래서 모두 웃었다.

 

버스가 40분가량 지난 후에야 모두 승차하고 다시 떠났다.

우리는 계속 차창을 통해 낙후된 농촌풍경 보다가 갑자기 ‘장백산 입구’라는 문을 서서히 지나가고 있음을 알았다.

같은 산인데도 우리는 백두산, 중국은 장백산으로 부르는가 보다.

문득 6.25 전쟁 때 피난 간 마을의 어린이를 모아 놓고 인민군이 ‘김일성 장군 노래‘를 가르치던 것이 생각났다. 그 노래는 ’장백산 줄기줄기‘하고 시작해서 그냥 가르치는 대로 따라 불렀다. 그렇다면 북한도 백두산을 장백산으로 부른다는 얘기였다. 초록이 동색이라더니, 같은 공산국가라서 중국이 부른대로 따라 부르는 것은 한민족 자존심도 없단 말인가?

 

버스는 백두산의 길을 계속 천천히 오르다가 한참 후에 기슭에 있는 정차장에 섰다.

그곳에는 승용차들과 관광버스 몇 대가 정차 중이었다. 우리는 백두산 정상까지 1백미터를 걸어서 오르기 위해 모두 차에서 내렸다. 그 때 관광객 수십 명이 함께 내려오며 불평하는 한국인 말소리가 들려왔다.

괜히 왔다. 구름에 가려 천지를 볼 수 있어야지” 하는 볼멘소리였다.

“백두산 천지를 못 보았어요?하고 우리 중 누가 묻자, 고개를 흔들더니 말했다.

지금 막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어요. 5분 만 기다리면 조금이라도 볼 텐데 우린 시간에 쫓겨 못보고 가니, 우리 대신 실컷 구경하고 오세요.”하며, 아쉬운 표정으로 내려갔다.

 

우리는 이곳에 정차 한 후 구경 시간은 불과 10분이라는 말에 어떤 기대감 때문에 실망했다. 

고산공포증이 있는 자는 별도로 약을 먹은 후에야 우리는 걱정 반, 기대 반 심정으로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고소공포증이 없으나, 2,700m 높은 산에 처음 오르니, 약간 숨이 차는 듯해서 심호흡을 계속 하면서 올랐다.

백두산이 구름으로 덮였다가 이제야 서서히 몸을 풀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 앞서 온 사람들은 백두산과 천지를 구경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아닌가?

 

우리가 더 가깝게 다가가자 비장의 보물처럼 덮었던 구름보자기를 서서히 풀어헤치시는 그 손길!

나는 하나님의 손길로 보았다. 그리고 감사했다. 조금씩 조금씩 하얀 구름보자기를 벗기며 보여주는 ‘하늘연못’을 보며 모두가 감탄했다. 마침내 백두산 16개 봉우리와 새 파란 ‘하늘호수’가 천천히 들어날 때 우리는 ‘우와!’ 하며, 감탄! 또 감탄! 했다.

우리는 서둘러 ‘천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천지‘의 저 커다란 파랗고 맑은 물이 장백폭포를 통해 흐르고 흘러 한국의 두만, 압록강과 중국의 송화강으로 흘러가므로 극동지역 백성들 젖줄의 근원지 ’천지’에서 창조주의 사랑을 느꼈다.

 

우리는 인솔자의 독촉에 아쉬운 마음으로 내려오다 올라오는 관광객들과 마주쳤다.

그들도 한국인들이었다. “어때요?묻자, 나는 한 손을 높이 들고 ‘엄지 축!하며 최고!라고 왜쳤다.

그러다 올라갈 때 못 본 거대한 장백폭포와 그 장엄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허연 물결이 쏟아지는 광경은 볼수록 신기하고, 생각할수록 신비한 창조주 손길에 감사 감격한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에서 솟아오르는 찬송이 터져나왔다.

 

-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어느새 내 곁에는 일행 중 성도들이 모여들어 합창을 하며 기쁜 마음으로 내려갔다.

또 놀라운 것은 고장 난 버스 때문에 우리는 장엄한 ‘천지‘를 볼 수 있었음을 깨닫고 새삼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득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 받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 28)는 말씀이 떠올랐다.

출발 전에 드린 기도가 그대로 응답된 기쁘고 복된 날이었다.  - (2001.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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