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오월

유소솔 2024. 5. 10. 00:00

 

                                                피천득 교수(1910-2007/ 시인. 수필가)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앵두와 어린 딸기이요, 오월모란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 같이 보드랍다.

 

스물한 살였던 오월. 불현 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 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사월같이 쓸쓸하지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사랑을 얻었어도 고통스럽고)

失了愛情痛苦(사랑을 잃었어도 고통스럽다)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 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

영문학자이며, 시인, 수필가 피천득 선생의 대표적인 유명수필입니다. 이 수필은 싯적인 영감이 넘치는

문체로 오월을 아주 참신하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수필 중간에 중국 시인이 모래 위에 써놓고 죽은

한문 싯귀만 그대로 적어 놓아, 소솔이 한글로 풀어 해석을 했습니다.(소솔)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이 좋다  (29) 2022.12.15
봄의 예찬(안병욱)  (0) 2022.03.08
또 하나의 기다림  (0) 2021.12.27
인생 계산서  (0) 2021.12.10
낙엽을 태우면서  (0) 2021.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