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희(수필가, 초등교장 역임)
어제는 눈이 내리더니 오늘 아침 기온이 4도나 더 떨어졌다.
밖은 찬바람이 모자, 장갑, 오리털 점퍼로 중무장한 옷 속을 파고든다.
한참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을 때인데도 인적이 뜸하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은 세상이 어떻든
간에 따뜻하고 찬란하게 보인다. 오늘이 좋다.
'나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가던 길 잠시 멈추고 뒤돌아보니, 걸어온 길 모르듯이 가야할 길도 잘 알 수가 없다.
그리움의 순간들이나 매달리고 싶었던 욕망의 시간도 인생의 겨울 문턱에 서고 보니 모두가 놓치고
싶지 않은 추억이다. 이제는 어디로 흘러 갈 것인지 걱정하지 않는다.
아쉬움도 그리움으로 간직하고 오늘의 거울 앞에 선다. 오늘도 어제처럼, 내일은 오늘처럼 살면 된다.
살맛나는 세상은 사람관계가 좋아야 한다. 성공했다는 사람도 적을 많이 만들었다면 자기만의 성공이다.
관계란 우연히 만나 관심을 가지면 인연이 되고 공을 들이면 필연이 된다.
우연은 10% 노력이 90%의 결과를 가져온 것이기에 행운이라 부르는데 누구에게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인연도 서로의 노력 없이는 오래갈 수 없고 나쁜 인연도 서로 노력하면 좋은 인연이 된다.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 받는 것 보다 더 많이 주는 사랑, 따뜻함이 표현되는 인연이어야 한다.
좋은 사람으로 만나, 착한 사람으로 헤어지고, 그리운 사람으로 남고 싶다.
꼭 쥐고 있어야 내 것이 되는 인연은 진짜 내 인연이 아닌지 모른다.
잠깐 놓았는데도 내 곁에 머무는 사람이 진짜 내 인연이란 생각을 한다.
인생은 아무리 건강해도 세월은 못 당한다.
예쁘다며 흔들고 다녀도 70이 넘으면 봐 주는 사람이 없고, 돈 많아도 80이면 쓸 곳이 별로 없다.
이빨이 성할 때 먹고 싶은 것 먹어보고, 걸을 수 있을 때 열심히 다니며,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해야 오늘이다.
나도 내 나이가 생소하다. 씨를 울며 뿌리면 기쁨으로 열매를 거둔다. 이제 내 나이가 그 나이다.
죽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소명이 있으니 아직 죽을 수 없다.
하나님이 무엇을 내게 주셨기 때문에 그 뜻대로 살고 있는 것이 은혜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무엇이 자랑이겠는가, 내가 손가락질 하는 사람도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고 선을 베풀었던 사람은 내가 정한 기준의 사람이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
세상은 누군가를 도우라고 할 때 많이 가졌으니 도와주라고 한다.
그 말에 도덕적 우월감을 느낀다. 무언가 특별한 사람이란 생각 때문이다.
내가 가진 것이 영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래 내 곁에 머물지 않는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이 누군가 전에 가졌던 것이다. 기대할 것 없는 사람에게 꾸어주는 것이 참 베품이 아닐까.
늘 세상은 이분법적이어서, 내 편을 만들고 다른 쪽은 적으로 규정한다.
우리 편이더라도 모든 것을 용납하지 말고 잘못한 것은 꾸짖을 수 있어야 그것이 진짜 우리 편을 사랑하는 것이다.
어려운 결정을 할 때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은 내가 그들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다.
자비란 아픔에서 출발한다. 아픔이 느껴지면 마음이 열리고 스스로 움직인다.
그래서 그 자비를 받은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의 아픔을 느끼게 된다.
사람은 항상 다시 두고 보아야 하는 존재다.
처음에는 겉을 보고, 다음은 말과 행동을 보고 마지막에 속마음을 본다.
그렇게 사람을 잘 알 수 없으니 세상살이가 얼마나 어렵겠는가.
사람을 바로 볼 줄 알면 인생살이가 고단하지 않다. 이렇게 인생 훈수訓手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 오늘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