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의 감동 이야기 34

불교에서 기독교 전도대장 된 목사

천세광(千世光) 목사(1904~ 1964)의 본명은 천세봉(千世鳳)이다. 그는 경북 군위 읍에서 부모의 장남으로 출생하여 선비인 아버지보다 대한제국 말기 무관출신인 할아버지를 많이 닮아할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매일 할아버지는 아침마다 불경을 소리 내어 외우시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고, 아버지는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사서삼경을 읽는 유교 선비여서, 종교가 다른 가정이자만 종교 다툼은 한 번도 없었다. 그가 여섯 살 어느 날, 할아버지가 마을에서 유명한 점쟁이를 불러 장손의 사주를 보게 했는데, 뜻밖에 ‘목숨이 짧으니 빨리 절에 입적시키라’는 점괘를 주었다. 금이야 옥이야 하고 키우는 장손의 수명이 짧다는 말에 충격 받은 할아버지는 곧 명령을 내려 가까운 절에 그의 이름을 입적시켰다. 이렇게 ..

만주에서 전도하다 죽은 성결교회 창립자

만주에서 전도하다 죽은 성결교회 창립자 - 정빈(鄭彬) 전도사 1878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그는 당시 전통문화로 유교를 숭상하고 조상제사를 드렸으며, 8살에 서당에 들어가 한학을 공부했다. 그런 그가 10살쯤 기독교에 입신했는데, 1882년 해주에는 북경에서 세례 받고 돌아 온 서상윤의 전도로 교회가 이미 세워졌었다. 그는 관례에 따라 15세쯤에 결혼했으나, 주일학교에서 배운 신앙에 대한 열망 때문에 이듬해 가족을 데리고 서울로 갔다. 그리고 1893년에 세워진 종로의 연동교회의 무어(Moore) 선교사가 목회하는 교회의 교인이 되어 종로 YMCA에 가서 성경공부와 신앙강좌를 들었다. 강사 중 세브란스 의전의 학생 고명우 씨가 있었다. 고명우는 청년들에게 ''이미 기울어져 가는 조국을 붙잡기보다 영..

흰 순교자 추명순 전도사여

추명순 전도사 추모 시 - 류재하 남편의 방탕에 울고, 매 맞다 칼을 품고 산, 한 많은 세월...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 어떤 전도할머니 따라 나선 서천의 비인성결교회 이곳에서 시작된 제2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세월이었다. 1968년 성령에 이끌려 찾아 나선 섬, 섬, 섬, 고군산 군도! 파도와 미신과 가난과 싸우며 기도와 눈물로 복음의 씨 뿌리기 20여년 미신 조장하던 섬 무당들 쫓겨 가고 끝자락 말도에서 시작한 성령행전은 야미도 신시도 선유도 무녀도를 지나 장자도 관리도 방축도 명도 등 유인도 11개 섬마다 교회들이 우뚝 서 새벽마다 퍼지는 찬송과 기도소리에 갈매기들이 ‘끼룩 끼룩’ 화답했으니 하나님의 은혜 아니던가. 지금 고군산은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호남과 호서를 잇는 풍요의 땅이 되어 기..

한국의 다미엔 정순석 목사 2

“주님, 나는 이곳에 있으나 내 몸이 나병이 옮겨질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저를 용서해 주소서. 저는 진정 예수님 사랑이 없사오니, 제게 주님의 그 크고 깊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소서. 죽으면 죽으리이다.” 그는 이렇게 눈물로 회개의 기도를 했다. 그때부터 그는 독신이기에 나환자가 해주는 밥을 조금도 거리낌 없이 즐겁게 먹었다. 신자들이 비로소 좋아서 마음 열고 대화하고, 그가 시키는 대로 교회의 일을 했다. 교회는 천막이고 신자들 집은 움막이나 판잣집이었다. 그들은 죽기만을 기다리는 몸으로 삶의 의지가 전연 없었다. 그는 깨달았다. 목사의 일은 먼저 신자들에게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그래서 그는 성경말씀을 바탕으로 격려하고 때로는 눈물로 호소하면서 그들을 영의 양식과 육의 양식을 ..

한국의 다미엔 정순석 목사 1

정순석 목사(1922~ 1981)는 평북 의주 출생으로 유명한 소설가 정비석 씨의 동생이다. 그보다 11살이나 많은 큰형이지만, 고향에서는 모두 교회에 다니는 신앙가족이었다. 큰형은 19살 때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가 귀국했으나 서울에서 살면서 시인이 되고 나중에는 소설가로 이름을 날렸다. 순석이는 신의주 사범학교에 입학하고 아이들을 훌륭한 인재로 키우겠다는 사명으로 살면서, 명작소설과 신앙전기를 읽고 많은 감동 받았다. 그래서 감동적인 이야기를 교회 어린이들에게 성경말씀과 함께 그대로 가르치면서 자기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기도했다. 그가 사범학교를 졸업한 것은 1941년 일본이 미국을 침략해서 태평양전쟁이 나던 해였다. 전쟁 준비로 일본총독부는 조선인에게 공출이란 명목으로 농민의 농산물을 강제로 반..

예수 믿고 상투 잘라 몰매 맞은 사람

- 김상준 목사의 작은 이야기 한국성결교회를 창립한 주역의 한분인 김상준 목사는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1881년에 엄격한 유교가문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철저히 유교를 섬기며, 예절과 전통을 공부하면서 소년시절을 지냈다. 그는 전통 있는 의성 김씨 한 가문의 외아들이어서 어린 나이에도 한 달에 3번씩 생전에 보지도 못한 조상님의 제사에 끌려 다니며 억지로 절을 했다. 그러면서도 '죽은 조상들이 어떻게 자손에게 복을 줄까?" 하는 의문도 품었다. 그가 20세가 되면서 가정의 대소사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22세가 되던 어느 날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수 백리 떨어진 평양에 처음으로 심부름을 갔다. 모처럼 처음 대도시 평양에 가기 위해 새 바지저고리에 상투를 곱게 틀고, 그 위에 나들이 말총갓을 멋 있게 ..

바로 그 사람

순교자 문준경을 추모하며 이곳에 ‘바로 그 사람’이 있다. 생전에 그를 부르는 많은 이름 있었으니 전도사, 스승, 산파, 간호사, 개척자, 씨암탉, 사랑의 어머니 그리고 거룩한 순교자. 오랜 미신에 찌든 섬마을 사람들 오직 한 여인 때문에 하늘 백성들로 거듭나 빛으로 소금으로 증도가 천사의 섬으로. 이 섬, 저 섬 걷기로 연간 검정고무신 8컬레 닳고 섬마다 나룻배 타고 다니며 복음으로 섬기다가 온갖 미신 다 몰아내고 여섯 성결교회를 세우고 믿음의 청년들 신학교 보내 목사들 세웠더니 6.25 전쟁 공산당들 땅굴에 대창 찔러 순교했네. 그의 순교의 피로 세운 신안군 성결교회가 60여 교회 그가 키운 목사들 8명, 한국교회 큰 지도자 되었고 증도의 '문준경순교기념관'은 한국교회에 오픈되어 연간 4만명 교역자와..

십자가의 길을 철저히 따른 신학생들

1917년 10월 1일 경성성서학원에서 학생소요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세계1차대전이 유럽과 미국 일대에 전쟁으로 휩쓸어 그 영향도 대단하여 세계경제가 매우 어려울 때였다. 미국과 유럽교회의 신자들이 보내주는 선교비로 학원을 전적으로 운영하는 경성성서학원은 선교후원비가 갑자기 삭감되어 학교는 긴축운영을 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기숙사 학생들에게 공급하는 식사를 하루 3끼에서 2끼로 줄여 급식했는데, 식욕이 왕성한 신학생들이 하루 2끼로 산다는 것은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며칠 후 이에 불만을 품은 몇 사람이 선동하여 하루 3끼식 급식하지 않으면 동맹휴학하겠다면서 학생들이 학과수업을 거부, 강당에 모여 구호를 외치며 연좌시위를 했다. 당시 학원장 토마스 선교사와 교수들이 나타나, 학생들에게 학교재정의 어려움을..

독립운동가 김응조의 심문과 답변

김응조 목사(1896~1991)는 신학생 시절에 기미독립운동 선언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요, 민족주의자였다. 민족 대표 33인이 서울 종로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서’에 서명을 하자, 대기하고 있던 각 대학교 대표들 80명이 민족 대표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힘차게 불렀다. 김응조는 이날 성결교 경성성서학원의 대표로 참석하여 만세를 불렀다. 3.1만세운동을 계기로, 일제 조선총독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만세운동의 주동자 민족 대표들과 각 대학생 대표들을 체포하러 일경들이 전국을 샅샅이 뒤졌다. 김응조는 고향 경상도 영덕에 내려가서 고향의 유지들을 찾아가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설명하고 선동하려고 했으나 서울에서 미리 연락 받은 경찰들이 역에서 그를 알아보고 체포했다. 4월 15일이었다. 그러나 영덕에서..

똥통에서 건진 성경책

그날은 1963년 4월 어느 주일 아침이었다. 경기 화성군 반월면 당수리의 마을교회에 낮예배가 시작되었다. 신자들은 겨우 부녀자 10여명과 남자 2-3명이 마루예배당에 앉아 드리는 예배였지만 , 그들은 완고한 한 씨족들의 반대를 이기고 교회에 다니는 신앙의 용사들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신자들은 이상한 냄새에 신경이 쓰여 예배에 정성을 기우릴 수 없었다. 담임전도사가 설교를 마치고, 먼저 교회에 관한 광고를 한 후, 신자들에게 광고할 말이 있으면 하라고 했다. 당시 시골교회에서는 흔히 그랬다. 그러자 어느 여집사가 일어나서 “예배 시작 때부터 나쁜 냄새가 나는데 왜 그런지 조사했으면 좋겠습니다.”하고 말하자, 신자들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감을 표시했다. 바로 그 때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정정혜 집사가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