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의 감동 이야기

한국의 다미엔 정순석 목사 2

유소솔 2021. 3. 23. 15:41

 

“주님, 나는 이곳에 있으나 내 몸이 나병이 옮겨질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저를 용서해 주소서. 저는 진정 예수님 사랑이 없사오니, 제게 주님의 그 크고 깊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소서. 죽으면 죽으리이다.” 그는 이렇게 눈물로 회개의 기도를 했다.

 

그때부터 그는 독신이기에 나환자가 해주는 밥을 조금도 거리낌 없이 즐겁게 먹었다.  신자들이 비로소 좋아서 마음 열고 대화하고, 그가 시키는 대로 교회의 일을 했다. 교회는 천막이고 신자들 집은 움막이나 판잣집이었다. 그들은 죽기만을 기다리는 몸으로 삶의 의지가 전연 없었다.

 그는 깨달았다. 목사의 일은 먼저 신자들에게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그래서 그는 성경말씀을 바탕으로 격려하고 때로는 눈물로 호소하면서 그들을 영의 양식과 육의 양식을 동시에 먹이는 것이 이들 목회자 사명임을 깨닫고 그들의 자립을 위해 열심히 뛰고 일했다.

 

그는 먼저 식량자급을 위해 땅을 개간해야 하는데, 지금 살고 있는 땅은 국유지였으므로 불안했다. 그들에게 땅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서울로 올라가 아는 사람이나 교회들을 찾아가서 영락원의 형편을 말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래서 받은 지원금으로 국유지를 불하 받아 땅을 가정마다 분배한 후, 자기 땅에 채소나 유실수를 심고, 닭과 염소나 개나 돼지까지 기르도록 그가 받은 봉급을 털어 유실수 가지나 가축 새끼들을 트럭으로 사다가 가정에 분배했다.

 

신자들이 놀라며 “목사님도 돈 쓰실 일이 많을텐데, 적은 생활비를 몽땅 우리 위해 쓰시면 어떻게 합니까?”하면, “나는 식구들이 없어 내 한 몸 교회에서 주는 대로 먹고, 여러분들을 섬기다가 천국가면 그만이지, 돈은 필요 없습니다.“ 했다. 신자들은 감동 받아 그를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로 알고 존경하고 복종하기 시작하면서 삶의 의욕이 생겨났다.

  차츰 가정마다 수입이 생기자 더욱 의욕이 생겨, 그들이 합의하여 천막교회를 헐고 각자 헌금을 해서 돌과 흙으로 아담 한 교회당을 스스로 건축했다. 정목사가 교회건축하자는 말도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자진해서 한 것이다. 그는 군수를 찾아가 탁아소를 세울 수 있도록 협력을 받아  탁아소도 세웠다.

                                                                                                                     

정 목사는 신문을 보다가 새마을 개발사업 위해 지원하는 한미재단의 소식을 듣고, 밤을 새워

기도한 후 아침 첫 버스를 타고 가서 협의한 결과 마을주택 30동을 새로 건축해 주기로 약속

받았다. 6개월 후 준공식 날 한미재단 대표와 군수가 와서 축사하고 그들을 격려한 후, 가정마

다 입주를 시키자 그들은 너무 감사해서 더욱 신앙생활에 힘을 기우렸고 점점 부지런해지자,

그들의 살림이 조금씩 나아져 갔다.

 

중요한 것은 이곳 아이들이 전에는 초등학교 졸업하면 자기 신세를 한탄하고 술 담배를 먹고 자기 멋대로 살았는데, 정 목사의 기도와 지도에 따라 중,고교를 의무적으로 졸업하고 그들 소망에 따라 일반대학이나 신학대학에 가서 공부하도록 지원하므로 졸업 후 변호사나 공무원, 간호사, 목사가 되어 명절 때마다 찾아와 기쁨의 마을잔치가 열린다.

 

그가 이곳에서 헌신하기 10년 만에 서울 큰 형님이 어떻게 알고 자기 아들을 보내어 “그곳에서 빨리 나오너라. 내가 서울 큰교회 목사를 잘 아는데, 다른 서울교회로 보내주겠다”고 했으나, 그는 “저는 이곳에서 이들과 함께 평생살기로 하나님과 약속했으니 이를 어기면 죄가 됩니다. 내 걱정 마시고 형님이나 잃어버린 신앙을 속히 찾으세요.”하며, 그냥 돌려보냈다.

 

당시는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으로 경쟁적으로 펼쳐지던 때여서 군수가 나환자촌 사례를 중앙본부에 보고했더니, 청와대까지 알려져 KBS의 ‘인간 승리’의 제작팀이 내려와 정목사와 주민 대표들과의 대담과 나환자촌을 전경과 그들이 일하는 모습 등을 촬영하고 방송하였다. 그래서 전 국민들이 보고 목회자 한 사람의 희생적 활동이 온 마을을 살려냈다고 감동을 받았다.

 TV를 보고서야 충남도지사의 보건향상 공로상(1971), 보건사회부 장관상(1974), 기독교 구라상(1975), 서산 라이온스클럽 봉사상(1976), 특수지역 목회공로상(1977), 크리스천 라이프사 봉사대상(1980)등을 계속 수상하였고 받은 상금은 몽땅 교회에 헌금했다. 이 마을은 새마을운동의 성공적 사례가 되어 당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생전 처음으로 자기들의 얼굴과 생활이 TV에 소개되고 또 많은 을 받자, 그들은 목사님의 은혜라고 감사했다.

그러나 정목사는 “모두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나는 심부름꾼일뿐입니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래서 성도들은 더 그를 존경하면서 주일예배는 물론 수요기도회나 새벽기도회에도 신자들이 거의 참석하여 예배드렸다.

 

그들이 찬송할 때는 손바닥이 없어 손목을 부딪쳐 박수하느라 아프면서도 막대기소리처럼 딱! 딱! 소리와 함께 찬송 부렀다. 그리고 설교의 한 마디마다 “아멘”소리로 은혜충만한 부흥회였다. 오직 그들의 소망은 하나님 나라뿐이어서, 열심히 기도하고 찬송하며 예배드리니 삶의 기쁨과 평안을 얻어, 바로 이곳 영락교회가 이름그대로 천국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헌신적으로 살기 22년, 너무 과로 했던가?

그가 60세가 된 1981년 신자들과 함께 밭을 갈다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가서 과로로 응급 치료를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이제 하늘나라에 와서 안식하라고 부르심으로 영원한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우리 주 예수님의 말씀처럼 “밀알 하나가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은 진리였다. 주님이 그 말씀대로 죽으시므로 온 인류가 그 은혜로 살게 된 것처럼, 정순석 목사! 그는 주님의 참된 제자로 그렇게 살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