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의 감동 이야기

한국의 다미엔 정순석 목사 1

유소솔 2021. 3. 22. 16:13

 

정순석 목사(1922~ 1981)는 평북 의주 출생으로 유명한 소설가 정비석 씨의 동생이다. 그보다 11살이나 많은 큰형이지만, 고향에서는 모두 교회에 다니는 신앙가족이었다. 큰형은 19살 때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가 귀국했으나 서울에서 살면서 시인이 되고 나중에는 소설가로 이름을 날렸다.

 

순석이는 신의주 사범학교에 입학하고 아이들을 훌륭한 인재로 키우겠다는 사명으로 살면서, 명작소설과 신앙전기를 읽고 많은 감동 받았다. 그래서 감동적인 이야기를 교회 어린이들에게 성경말씀과 함께 그대로 가르치면서 자기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기도했다.

 그가 사범학교를 졸업한 것은 1941년 일본이 미국을 침략해서 태평양전쟁이 나던 해였다. 전쟁 준비로 일본총독부는 조선인에게 공출이란 명목으로 농민의 농산물을 강제로 반 이상을 착취하는 등 정신적 물질적 고통이 심했다. 나중에는 전쟁에까지 청년들을 강제 입대시켜 외국 전쟁에 총받이로 내보냈으나 그는 교사의 몸이기에 면제되었다.

 

1945년 하나님 은혜로 광복이 되었으나, 교회를 박해하는 공산당이 싫어 혼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한국으로 탈출할 때 부모님과 아내와 3남매를 두고, 먼저 가서 자리 잡은 후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하고 38선을 넘는 위기 때마다 하나님께 계속 기도로 극복하고 남하에 성공했다.

 그는 서울 큰 형의 집을 찾아가 살면서 가까운 교회에 열심히 다녔고, 목사님의 소개로 작은 사설학교에 교사로 들어가서 가르쳤다. 그가 혼자임을 안 주변에서 결혼을 권했으나 그는 북에 있는 아내와 3남매가 있는데 또 결혼하면 간음죄가 된다며 고집 부려 외로움을 기도와 말씀을 읽으며 달랬다.

 

그러나 인기 있는 애정소설가로 사는 형은 집필을 핑계로 교회를 멀리했다. 어느 날 형의 신문 연재소설 ‘호색가의 고백’ 등을 우연히 보다가 형이 타락했음을 알고, 신앙문제로 몹시 다투었다. 그후 형의 집에서 나와 값싼 하숙집에서 살면서 주간에는 학교와 주일에는 교회에 가서 어린이들 교사로 열심히 가르쳤다.

 그의 신실한 신앙과 열정을 안 담임목사 추천으로 서울신학교에 입학한 것은 1956년이었다. 당시 서울신학교는 가난한 학생에게 미국인 신자들이 보낸 장학금을 모아 무료로 공부할 수 있었다. 그는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공부하고 기도로 밤을 자주 새우면서 주님처럼 살기를 원했다.

 

마침내 1959년 2월, 신학교 졸업을 앞둔 신학생들은 임지를 위해 기도했다. 그의 임지를 향한 기도의 제목은 다른 졸업생과는 뚜렷이 달랐다. 그의 기도제목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아무도 가지 않은 곳, 또 하나는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곳에서 불러주면 서슴없이 가겠다는 것이다.

 마침내 교수님을 통해 그에게 임지가 소개되었다. 충남 서산에 있는 ‘영락원’이란 음성 나환자촌의 천막교회였다. 처음에 그는 놀랐다. 음성 나환자촌의 천막교회! 도저히 자신이 없어 기도하던 중 평소 자기가 기도하던 ‘아무도 가지 않은 곳’이 바로 이 교회가 아닌가?  음성 나환자는 나병이 치료되어 나은 사람인데, 당시 사회 인식은 나병환자로 생각했다.

 

그는 주소 하나만 가지고 시외버스를 타고 서산의 그 교회를 물어물어 찾아갔다. 그를 반기는 신자들 30여명이 대부분 코가 없거나 손이 없고 손목만 남은 사람들이어서 악수도 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들에게서 특이한 냄새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 그는 그들에게 사흘 동안 기도해서 하나님의 뜻이면 다시 오겠다고 한 후, 밤이 늦어 그곳 여관에서 밤새우며 기도했다.

                                                                                                                       

기도 중에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순석아, 네가 나를 위해 아무도 가지 않은 곳에 가겠다고 기도했더냐? 이들은 내가 피 흘려서 구원한 내 자녀들이 아니란 말이냐?” 책망의 음성을 듣고도 “주님, 그래도 저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하고 떼를 썼다.

 그는 밤을 새워 기도하면서 울고 또 울었다. 동이 틀 무렵 그는 확신을 갖고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순종하겠나이다.”하고, 주님께 항복했다. 그리고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 교수님께 “영락원에 가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교수님의 격려하는 기도를 받은 며칠 후 그는 가방하나 들고 영락원 겸 영락교회에 부임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사적 결심으로 부임했으나 처음에는 코가 없고 손목이 없는 그들이 해주는 밥을 먹을 수 없어 두어 숟갈 뜨다가 일어났다. 그는 비통한 마음으로 방에 가서 기도를 하니, 문득 사범학교 시절에 읽은 <몰로카이의 성자 다미엔>의 전기가 생각났다.

 문둥병자들만 따로 모아 살게 한 하와이 몰로카이 섬에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다미엔 신부가 자원한다.

그가 아무리 그들에게 사랑으로 대하지만, 그들이 자꾸 피하는 것을 본 다미엔은 큰 결심을 한다.

'나도 저들처럼 되지 않으면 저들을 구원할 수 없다'

그는 일부러 그들의 고름을 자기의 상처에 발라 문둥이가 되자, 그들이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열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가 된 공동체가 되었다는 전기였다. 그것을 읽고 얼마나 그가 감동했던가?(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