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의 감동 이야기

불교에서 기독교 전도대장 된 목사

유소솔 2021. 7. 4. 23:40

                                                                                         

천세광(千世光) 목사(1904~ 1964)의 본명은 천세봉(千世鳳)이다.

그는 경북 군위 읍에서 부모의 장남으로 출생하여 선비인 아버지보다 대한제국 말기 무관출신인 할아버지를 많이 닮아할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매일 할아버지는 아침마다 불경을 소리 내어 외우시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고, 아버지는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사서삼경을 읽는 유교 선비여서, 종교가 다른 가정이자만 종교 다툼은 한 번도 없었다.

 

그가 여섯 살 어느 날, 할아버지가 마을에서 유명한 점쟁이를 불러 장손의 사주를 보게 했는데, 뜻밖에 ‘목숨이 짧으니 빨리 절에 입적시키라’는 점괘를 주었다. 금이야 옥이야 하고 키우는 장손의 수명이 짧다는 말에 충격 받은 할아버지는 곧 명령을 내려 가까운 절에 그의 이름을 입적시켰다. 이렇게 자신도 모르게 불교 신자가 된 그는 춘하추동 계절마다 전 가족이 총동원 되어 10년 동안 절에 가서 무병장수의 불공을 드리는 등 그의 유소년 시절은 불교문화에 푹 젖어 살았다.

 

그는 영리하고 누구에게 지기 싫어하는 뱃심이 있어 군위 읍의 보통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자, 할아버지의 명령으로 서울로 보내어 하숙으로 종로에 있는 보성고보(5년제)에 입학하여 다녔다. 그러나 그는 명예심이 생겨나 보성보다 더 유명한 양정고보에 가기 위해 양정고보 보결시험에 합격하여 양정고보 4학년에 편입하였다. 그래서 하숙집도 학교에 가까운 아현동으로 옮겼는데, 고묘하게도 옆에 경성성서학원으로 가는 건물 근처였다.

 

1921년 어느 날 성서학원 앞을 지나가는데, 많은 사람들이 성서학원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경성성서학원이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아현동 언덕에 벽돌 건물을 완공하고, 이를 기념하는 전도집회 광고를 보고 알았다. 그는 갑자기 호기심이 생겨 사람들 따라 30여 개 되는 계단을 오르며 가보니, 세상에! 그가 처음으로 보는 붉은 벽돌 5층 건물이 아닌가? 당시 서울에서 최고 건물인 종로 화신백화점 5층과 맞먹는 건물이었다.

그는 놀란 마음으로 사람들을 따라 2층 계단으로 올라 강당으로 들어가니 입구에 조선인과 서양 사람들이 서서 “안녕하세요, 어서 오십시오.”하고 웃으며 반갑게 환영하면서, 예배 순서지를 그에게 주었다. 그는 이렇게 친절하게 대접 받는 것이 처음이어서 기분이 좋았다. 강당에는 사람들이 가득 차 기쁨이 넘친 모습으로 노래를 힘차게 부르는 것을 보고 불교에서 느끼지 못했던 활기를 느꼈다. 그는 신자들의 활기찬 노래와 강당에서 외치는 설교자의 열정적인 모습에 이것이 기독교라고 생각했다.

그는 불교의 예식에 많이 참예했으나 이런 생동감 있는 집회는 처음이어서 마음에 감동이 일어났다. 그는 설교자가 “예수 믿을 분 손을 들라”고 했을 때 손을 번쩍 들고 기독교로 개종을 했다. 그날부터 숙소가 가까운 아현교회를 다니며 철저히 회개하고 세례도 받았다. 그는 세례 받은 기념으로 이름을 ‘세상의 빛‘이란 세광(世光)으로 개명했다.

 

그는 기독교를 믿을 바에는 철저하게 믿겠다는 결심으로 양정고보 졸업하고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했다. 그리고 방학 때는 고향에 가서 가족들과 친척들 50여명을 모두 군위교회에 입교시키는 카리스마적 능력을 발휘했다. 이때는 할아버지가 작고하신 후여서 가문의 증손으로 큰일을 했는데, 그후 목사 10여명, 장로 40여명 등 큰 신앙가문이 되었다.

 그는 성서학원을 졸업한 후, 여러 곳에 파송 받아 목회를 했지만 그는 교회전도대를 조직하여 예배드리는 날 1시간 전에 전도대를 인솔하고 나가 길에서 전도설교를 했고, 새로 믿겠다는 사람들을 이끌고 교회에 와서 그들을 환영하고 축복 기도하여 신자로 삼았다.

 

그가 하나님께 받은 은사는 길거리전도였다. 그가 파송 받아 가는 교회마다 길거리전도대를 만들어 전도하므로 교회마다 신자들이 크게 늘고 부흥하였다. 그는 당시 억압하는 일본을 이길 힘은 오직 하나님의 힘, 기독교 밖에 없다는 걸 확신하고 영혼구원을 위해 헌신의 삶을 살았다. 그는1943년 5월 성결교회 목사로 일경에게 체포되어 수감생활도 했다.

 그는 해방 후는 물론 6.25 이후 물질과 마음이 고통스런 민족들에게는 오직 복음 밖에 치료약이 없다는 확신으로 총회의 ‘십자군 전도대장'으로 전국 곳곳마다 대형 천막을 치고 전도집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고 그곳에 교역자를 파송하여 교회를 세우게 했다.

 

 필자는 그의 생전에 그가 신학생 전도대를 이끌고 거리전도를 실습할 때 참가했지만, 그는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키가 크고 카이젤 수염이 있는 근엄한 얼굴인데, 전도설교 할 때는 외치는 목소리가 우렁찼으며, 그의 설교에 감동되지 않은 자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별명이 ‘전도대장’으로, 한국 교회의 성장에 크게 공헌하였다.

 그가 평생 36년 간 전도설교로 결신자 76,294명을 얻었고, 개척교회 38개를 세웠으니, 참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어려서 단명할 것이란 사주를 비웃듯 하나님을 믿었더니 무려 7만 여명을 구원케 한 탁월한 전도자였으며, 60세 회갑잔치까지  잘 마친 후, 몇 달 후 잠을 자듯 평안히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그 이름대로 ‘세상의 빛’ 사명을 다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