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의 감동 이야기

‘할렐루야’로 일본성서학원 입학한 사람

유소솔 2021. 7. 23. 23:57

 

1907년 7월, 그러니까 지금부터 114여 년 전 일이다.

미국인 카우만과 길보른 선교사가 동양의 선교를 목적으로 일본 동경에 세운 동경성서학원에

어느 날 이상한 복장을 한 두 남자가 나타났다.

그들은 여름이어서 시원한 모시옷을 입었는데. 머리는 검은 갓을 쓰고, 갓 속에는 상투를 틀었다.

 

“선생님, 이상한 사람들이 나타났어요.”

수업을 하다 열려진 창을 통해 이들을 처음 본 일본 학생이 놀라 소리 질렀다. 선교사에게 수업을 배우던 일본학생들이 모두 창 곁으로 달려가 보고 놀랐고, 가르치던 선교사도 이를 힐끗 본 후, 2층 교실에서 1층으로 걸어서 내려갈 때 호기심에 학생들 몇이 따라 내려갔다.

 

그동안 중국인, 한국인 몇 사람을 이 학교에서 2년 간 무료로 공부를 시켜 전도자로 귀국 시켰는데, 저런 복장을 입은 나라가 어디인지, 왜 왔는지 궁금했다. 이곳에 입학하고 졸업한 중국인이나 한국인들은 일본인처럼 단발을 하고 있었기에 저들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이들은 한국인들이었다.

한 사람은 김혁준으로 이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성결교회를 맨 처음 개척한 김상준의 사촌 동생이었다. 그는 평양에 갔다가 길거리 전도단에게 전도 받아 예수를 영접하고,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다 집에서 쫓겨났다.

그는 문득 돈 한 푼 없이 일본에 가서 공부하고 돌아온 사촌 형이 귀국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을 기억하고 서울로 찾아갔다. 그는 형이 인도하는 집회를 계속 참석하다 회개하니 얼마나 기쁜지, 주님의 일을 하고 싶었다. 그는 길거리 전도대에 참여하여 전도훈련 받다가 자기도 형처럼 일본 학교에 가겠다고 해서 형에게 약도를 받아가지고 인천으로 갔다가 부두에서 동경성서학원에 가는 친구를 만나 함께 온 것이다.

 

또 한 사람은 강태온으로 어느 날 평양거리를 걷다 길에서 북 치고 전도하는 사람을 만났다. 전도자는 사랑이 많은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누가 오른 편 뺨을 때리면 보복하지 말고 왼편 뺨을 내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에 강태은이 설교자에게 다가가 손바닥으로 뺨을 때렸다. 처음에는 아파서 찡그리던 전도자가 웃으면서 그에게 오른편 뺨까지 내밀며 “여기도 때려 달라”고 말했다. 그 말에 “당신은 진짜 예수쟁이요. 나도 예수 믿겠소.”했다.

그는 전도자를 따라 교회에 가서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세례 받고 전도훈련 받았다. 그는 전도자가 되고 싶었는데 누구의 말에 동경성서학원에 가면 공짜로 공부할 수 있다고 해서 덮어 놓고 배를 타려고 인천부두에 갔다가 마침 김혁준을 만나 함께 동경에 가서 이날 성서학원에 나타난 것이다. 두 사람은 상투머리를 깎을 줄 모르고 여비만 가지고 온 것이다.

 

“당신들은 누구입니까?”어떤 나라에서 왔습니까?”고, 미국 선교사가 영어로 묻고,

일본학생들은 일본말로 같은 질문을 했지만, 그들은 영어도 일본 말로 할 줄 몰라 고개만 흔들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니 서로 난감하고 답답해서 한참동안 쳐다만 보았다.

그때 김혁준이 문득 교회에서 사용하는 ‘할렐루야’가 생각났다. 그들은 이 말이 영어인 줄 알았기에 서로 의논한 후 갑자기 함께 두 손을 높이 들고 외쳤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그 말에 선교사가 알아듣고 다가와 그들을 일일이 껴안으며 말했다.

“당신들도 하늘나라의 백성들이였군요.

그들은 선교사의 안내로 교무실에 들어갔고, 마침 한국말을 조금 알고 있는 일본인 목사의 서투른 통역으로 그들이 조선 사람으로 성서학원에 공부하러 온 것과 먼저 졸업생 정 빈의 소개서를 확인하고  입학을 허락하였다.

예부터 ‘할렐루야’는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히브리의 언어지만, 복음으로 구원받은 하늘 백성들은 늘 이 말을 인삿말처럼 사용한다. 그래서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소통하는 하늘나라의 언어였던 것이다.

 

그들은 성서학원에 입학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열심히 배우고 기도하고 전도훈련도 잘 받아 2년 만에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리고 1909년 11월에 귀국하여 평양 근처 진남포교회김혁준이 개척하여 핍박 속에서 목회했고, 강태온은 개성에 파송 받아 개성교회를 개척하여 부흥되었다.  파송되는 곳마다 교회를 세워 많은 영혼들을 구원했다.

한국 복음전파가 크게 확산되자 OMS는 1910년에 한국 주재 감독으로 존 토마스 목사를 파송했고, 그는 이듬해에 서울에  경성성서학원을 세워 본격적으로 전도자들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오늘 서울신학대학교의 모태가 된다.

강태온은 전도실적이 좋아 1914년 성결교회 제1회 목사안수 후보자 5명으로 목사가 되었고, 김혁준은 제2회 목사안수후보자로 합격해 안수받아 두 사람은 성결교회 초창기 지도자로 할렐루야! 찬양을 부르며 승리로운 목회생활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