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의 감동 이야기

병사묘역에 부하들과 함께 잠든 채명신 장군

유소솔 2023. 6. 9. 00:53

2013년 11월 25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제2 병사묘역에 한 장군이 묻혔다.

"장성묘역 대신 병사묘역에 묻히기 원한다"유언을 남긴 베트남전의 영웅 고 채명신 장군(중장. 86)의 

삼우제가 치러졌다. 부인 문정인 여사와 아들딸을 비롯한 유족들, 베트남전 참전 노병들이 추모예배를 드리

면서 고인을 기렸다. 채 장군은 00교회의 진실한 성도로 직분은 원로장로였다.

 

그런데 4일장으로 치러지는 채장군의 장례기간 내내 빈소를 지키며 조문객들을 맞았던 채 장군의 동생 채00

교수(76)가 보이지 않았다. 그가 나흘간 밤샘하며 쌓인 피로를 걱정해  “삼우제는 직계가족만으로 치를 테니 

나오지 말라”는 문정인 여사의 배려 때문이다.

그러나 동생 채 교수는 채 장군이 60년 넘게 숨겨온 또 다른 미담의 주인공이다. 

 

채씨는 채장군이 1951년 초 강원도에서 생포한 조선노동당 제2비서 겸 북한군 대남 유격부대 총사령관(중장) 길원팔

이 아들처럼 데리고 다녔던 전쟁고아였다.

당시 육군 중령이던 채장군은 유격부대 ‘백골병단’을 이끌며 강원도 내에서 암약하던 북한군 색출작전을 펼쳤다.

채장군에게 생포된 길원팔은 채장군의 전향 권유를 끝내 거부하고 채장군의 권총을 잠간 빌려 자결했다.

자결하기 직전 “전쟁 중에 부모 잃은 소년을 아들처럼 키워왔다. 저기 밖에 있으니 그 소년을 남조선에 데려가서

공부시켜 달라.”고 부탁했다.적장(敵將)이지만 길원팔의 인간됨에 끌린 채장군은 “그러겠다.”고 약속하고 그 소년을 

데려와 동생으호적에 입적시켰다. 그는 당시 총각처지지만 그를 손수 돌봤다. 

 

소년은 채장군의 보살핌에 힘입어 서울대에 들어가 이학사- 이학석사- 이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서울의 유명대학에서 

교수를 지내다 10여 년 전 명예교수로 은퇴했다. 두 사람은 채 장군이 숨질 때까지 우애 깊은 형제로 지내왔다.

채장군의 자녀들은 그를 삼촌으로, 채교수의 자녀들은 채 장군을 큰아버지라고 부른다.

문정인 여사 언젠가 서울 동부이촌동 자택에서 중앙 SUNDAY기자와 만난자리에서채 장군이 길원팔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채 교수를 동생으로 맞은 것이라며, 채 장군이 생전에 길원팔의 칭찬을 했는데, 적장이긴 하지만, 사나이 중의 사나이라고 했다.  여사는 채장군이 채교수를 (아들이 아닌) 동생으로 입적한 건 그때의 채 장군의 나이가 젊었고(25세), 채 소년과의 나이 차도 11세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채장군 총각 시절 본인이 손수 소년을 돌보다 그가 고교생이 될 무렵 문 여사와 결혼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채 장군은 주변 사람에게 소년을 맡기고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해 서울대에 진학하도록 계속 도왔다고 한다.하지만 채장군은 당시 “그의 인생이 중요하니 비밀로 해 달라”고 주위 분들에게 당부했다.  문 여사도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런 사실을 절대 주변에 알리지 않고 지내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라며 기사화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모 신문지는, 적장이 아들처럼 데리고 다닌 소년을 동생으로 입적시켜 대한민국 엘리트로 키워낸 채장군의 선행이 이념 갈등해소와 남북 화해의 귀감으로 판단해 기사화를 결정했다. 그래서 이런 글도 쓰게 되었다.

 

채장군은 한국의 태권도를 보급 발전시키는 데 공로가 컸으며, 주월 한국군 사령관직을 훌륭히 치러낸 후,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에 대하여 면전에서 반대했다. 그래서 대장 진급에도 탈락되는 등 불이익을 받았지만 예편하여 브라질 대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채장군은 지병으로 86세에 운명 하셨다.

 

수많은 공적에도 장군묘역에 묻히길 거부하고 사병묘역에 묻히길 소망했던 장군,

적장이 키우던 전쟁고아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인 사랑의 사람.

고아동생입적시켜 한국의 유명 교수로 키우고도 비밀로 한 지혜의 사람,

절대적인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면전에서 반대한 진정한 애국자 장로님.

채명신 장군이야 말로 진정한 사나이. 애국 군인표상이 아닐까요?

6월, 호국보훈의 달에 진정한 애국자 크리스천 한분을 기쁨으로 추념합니다. (이춘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