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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만나러 가는 길

- 용혜원(목사 시인) 나의 삶에서 너의 만남이 행복하다 내 가슴에 새겨진 너의 흔적들은 이 세상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나의 삶의 길은 언제나 너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그리움으로 수놓은 길 이 길을 내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에도 내가 사랑해야 할 길이다. 이 지상에서 내가 만난 가장 행복한 길 늘 가고 싶은 길 너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2023.12.08

12월

정연복(중견 시인) 뒷 모습이 아름다워야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뒷맛이 개운해야 참으로 맛있는 음식이다 뒤끝이 깨끗한 만남은 오래오래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 ​두툼했던 달력의 마지막 한 장이 걸려 있는 ​지금 이 순간을 보석같이 소중히 아끼자 이미 흘러간 시간에 아무런 미련 두지 말고 올해의 깔끔한 마무리에 최선을 다하자. ​시작이 반이듯이 끝도 반이다!

2023.12.04

12월의 기도

김남조(1927-2023) 찬바람이 목둘레에 스며들면 흘러가는 강물 같은 시간의 흐름 앞에 아쉬움과 그리움이 여울목 이룹니다. 한해가 저무는데 아직 잠 잘 곳이 없는 사람과 아직도 병든 자, 고통 받는 이들과 하늘 저 편으로 스러질 듯 침묵하는 자연에 압도되어 나는 말을 잃어버립니다. 이런 때 가슴 가장 안쪽에 잊었던 별 하나 눈을 뜹니다. 그 별을 아껴 보듬고 그 별빛에 꿈을 비춰보며 오늘은 온종일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 누군가를 위하여 무언가를 위하여

2023.12.01

허락 받은 이 한 날을

전덕기(1992년 노산문학상) 당신이 허락하신 이 한 날의 삶을 아침 창을 열고 진선미로 방을 장식하여 순백의 하늘 뜻 향내 피우게 하소서 지정(至情)의 열정으로 가슴을 열고 악수와 박수의 만남이 되어 현재의 의미를 만끽하는 만물의 영장다운 삶이 되게 하소서 주어진 바탕이 감격스러워 의식하는 삶이 감격스러워 소중한 생명이 감격스러워 다시 오지 않는 이 한 날이 감격스러워 가고 오는 것들의 영원성을 영원한 씨앗으로 계승되는 보람을 이 한 날에 새겨 감사 찬미하게 하소서.

2023.11.27

가을

조병화(1921- 2003/ 경희대 교수 역임) 가을엔 우리 고개 숙입시다 맑게 비워낸 경건한 마음으로 가을엔 우리 서로 고개 숙입시다 높아가는 가을하늘이 두고 가는 이 무거운 사랑 그 무거운 사랑을 이어받아 고운 마음으로 고운 마음으로깊이 간직하면서 그 소중함을 가득히 가을엔 우리 서로 고개 숙입시다. 기도와 같은 순결한 마음을 깨워 우주 만물에 감사를 하며 더욱 익어가는 사랑을 뜨겁게 안고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수가 없어 떠나는 것들에게 눈물로 눈물로 작별을 하면서 남은 것들끼리 슬픔을 서로 나누어 가며 우리도 언젠가는 떠날 그날을 준비하면서 가을엔 그 가을엔 우리 서로 고개 숙여 서로 곁에 있다는 걸 감사합시다.

2023.11.23

당신과의 인연

- 피천득(1910-2007)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구슬이라도 가슴으로 품으면 보석이 될 것이고, 흔하디 흔한 물 한잔도 마음으로 마시면 보약이 될 것입니다. 풀잎 같은 인연에도 잡초라고 여기는 사람은 미련 없이 뽑을 것이고, 꽃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알뜰히 가꿀 것입니다. 당신과 나의 만남이 꽃잎이 햇살에 웃는 것처럼 나뭇잎이 바람에 춤추듯이 일상의 잔잔한 기쁨으로 서로에게 행복의 이유가될 수 있다면 진실한 모습으로 한 떨기 꽃처럼 아름다웠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당신과의 인연 그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기며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당신은 세상에서 제일 기분좋은 사람입니다. 그 덕분에 나 또한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습니다.

2023.11.20

가을의 고백

김연수(시인. 다일공동체 상임대표) 나의 무엇이 아닌 내가 져야하는 계절입니다 당신을 향해 돌아서는 이 시간 주여 버릴 것 버리지 못해 가난한 나날을 참회합니다 사랑으로 살아간대도 너무나 짧은 한 생 더욱 사랑하지 못한 죄를 통회합니다 은총의 햇살에도 익지 못해 어린 영혼을 고백합니다 주여, 척박한 내 뜨락의 마지막 잎 새 까지 지면 가을 산하 어디에나 펼쳐두신 복음을 읽겠습니다 내가 나를 만나는 침묵의 계절을 이젠 허락해 주소서 헐벗은 내가 당신을 입는 기도의 맨 속문을 열어주소서 내가 진 자리마다 당신이 살아오면 남은 날은 더욱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더욱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2023.11.14

낙엽이 지던 날.. 가을

- 용혜원(시인) 나뭇잎들이 마지막 이야기를 끝내고 안녕을 외치는 가을입니다 삶의 마지막을 더욱더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하여 은행잎은 노란 옷을 입기 위해 여름날의 찬란함도 잊어버려야 했습니다 단풍잎은 붉은 옷을 입기 위해 마지막 남아 있던 생명까지 모두 버려야 했습니다 가을 거리에 외로움으로 흔들리며 쏟아져 내리는 낙엽들 우리의 남은 이야기를 다 하기에도 이 가을은 너무나 빨리 흐르고 있습니다.

2023.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