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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盞

윤수천(시인, 아동문학가) 세상에 올 때 우린잔 하나씩 받아왔습니다. 다 채우거든 가져 오너라명령도 받았습니다. 사는 일은잔을 채우는 일입니다. --------------------------------------------------------------------------------------------짧은 시이지만, 마음에 울림이 큰 시입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그 잔을 채울까요? 그 무엇에 따라 하나님께 상과 벌을 받을 것이니까요.(소솔)

2024.10.22

마음의 시학

방한길(시인) 때론한 번쯤 당신이미워질 때가 있습니다. 당신또한 그럴 때가있었겠지요. 사소한일로 마음 상해 미워침묵으로 시위하다가도 어느새미운 생각도 눈 녹듯이다 녹아 버리고 맙니다. 그것역시 사랑이라는 것깨닫게 되지요. 사랑하지 않은 사람을 미워할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미워하다사랑하다 또 사랑하고 미워하다보면사랑이 익어 가지요.

2024.10.17

괜찮아

한강(2014년 노벨문학상)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 버릴까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괜찮아.이젠 괜찮아"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서야 그렇게 알았다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왜 그래? 왜 그래?..

2024.10.14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용혜원(목사 시인) 가을 하늘빛이 내 마음까지 푸르게 만들고불어오는 바람이 느낌마져 달라지고 있습니다. 어느새 고독이 마음의 의자에 앉아 심심한 듯 덫을 놓고 꼬드기고 있습니다 길가에 가냘프게 피어오른 코스모스들이 그리움 얼마나 가득한지 몸을 간드러지게 흔들어 대는 모양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가을이 내 마음을 불러내고 있습니다고독이 가슴에 안겨와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코스모스가 나에게 살짝"사랑하라"고 말합니다. 가을엔 왠지 사랑에 깊이 빠져들고 싶어집니다.

2024.10.11

한글 이름

이문조(시인) 쓰기 좋고 읽기 좋은과학적인 우리 한글세계 글자대회에서 우승한 한글 나는 한글이 너무 좋아아들들 이름도 한글로 지었으니 큰 소나무처럼 자라늘 푸르라는 ‘한솔’큰마음의 사람이 되라는 ‘한울’ 이름이 좋고 아름답다며누가 지었냐고 할 적마다내 어깨가 으쓱해진다. 한글날 맞아글 모르는 가난한 백성 위해6백년 전, 세상에서 가장 좋은 글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님께 엎드려 감사, 또 감사.

2024.10.09

뒷모습

나태주(풀꽃문학관 관장) 뒷모습이 어여쁜사람이 참으로아름다운 사람이다 자기의 눈으로는 결코확인이 되지 않는 뒷모습오로지 타인에게로만 열린 또 하나의 표정 뒷모습은 고칠 수 없다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물소리에게도 뒷모습이 있을까?시드는 노루발풀꽃, 솔바람 소리,찌르레기 울음소리에게도 뒷모습은 있을까? 저기 저 가문비나무 윤노리나무 사이산길을 내려가는야윈 슬픔의 어깨가희고도 푸르다.

2024.10.05

시 읽는 사람

김영진(한국기독교문학상)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 가면시 읽는 사람을 만나보세요낮도 밤도 없이 벤치에 앉아책을 펴들고 시를 읽고 있어요. 뒤뜰에서는 또한 여자가책을 일고 읽는데윤동주의 서시였어요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빗속에서도눈이 내려도시 읽는 사람은젖지 않아요 시를 읽으면온몸이 따뜻해져요겨울에도 봄처럼꽃이 피나 봐요. ----------------------------------------------------------------------------------------10월은 독서의 계절입니다. 가을엔 감수성이 강한 시가 더욱 좋습니다(소솔)

2024.10.04

비밀번호

유승우 교수(인천대 명예) 9월 하순의 저녁입니다.길가에서 휴대전화 소리가 울립니다.호들갑스레 울어댑니다.추분에도 오지 못한 가을의 전화입니다. 다가가니 뚝 끊어지고 조용합니다.물러서면 울리고, 다가서면 끊어집니다. 아, 나는 아직 귀뚜라미 가슴의비밀번호를 모릅니다.--------------------------------------------------  ‘비밀번호’라는 제목 때문에 독자들이 휴대폰에 대한 내용인 줄 알다가 마지막에 귀뚜라미 정체를 밝히는 반전을 통해 이미지 구축에 성공한 수작이다.(류)

2024.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