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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을

​ 유안진(서울대 명예교수)​ 이제는 사랑도 추억이 되어라 ​꽃내음 보다도 마른풀이 향기롭고 ​함께 걷던 길도 홀로 걷고 싶어라​ 침묵으로 말하면 눈 감은 채 고즈넉이 그려보고 싶어라 ​ 어둠이 땅속까지 적시기를 기다려 비로써 등불 하나 켜 놓고 싶어라​ 서 있는 사람은 앉아 있어야 할 때 앉아서 두 손안에 얼굴을 묻고 싶을 때​ 두 귀만 동굴처럼 길게 열거라.

2023.10.20

가을날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가을이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놓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풀어 놓으소서.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숙케 하여 마지막 단맛이 진한 포도주 속에 스며들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에도 오래 고독하게 살면서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레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2023.10.02

가을의 기도

- 조재선(시인) 가을에는 낮은 목소리로 기도하게 하소서. 절정에 꽃다운 마음 떨구는 단풍처럼 가을에는 산허리 걸린 노을이 되게 하소서. 산골짜기 언덕마다 밝게 타오르네 가을에는 모든 것 내어주는 허수아비 되게 하소서. 넉넉한 황금빛 들판이 되게 하소서. 쪽빛 하늘 멀어져 간 그대 그 깊은 마음 헤아릴 길 없어 가을에는 낮은 목소리로 기도하는 바람이게 하소서. 가을에는 낮은 목소리로 기도하는 바람이게 하소서.

2023.09.25

가슴에 쓰는 편지

- 안혜초(윤동주 문학상) 받고 싶은 것은 사랑 주고 싶은 것도 사랑입니다. 미워하고 싶어 미워하고 미움 받고 싶어 미움 받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비워내게 하소서 이 가슴 언제이고 마르지 않는 사랑의 옹달샘으로 쏘아대면 쏘아 대는 대로 웃음으로 맞겠습니다. 빗나간 우리들의 사랑 바로 잡으려 바로잡으려 잘못 묻혀진 마음의 독(毒)일랑 말끔히 씻어버리겠습니다. 밤마다 새벽마다 빠뜨림 없이 기도드리면서 어쩌나, 나도 모르는 한 순간 마음의 화살 또 한 번 쏘아놓고선 나 먼저 방울방울 피 흘리며 아파하고 있습니다.

2023.09.18

그지없는 무지개 사랑

- 유소솔 무지개 보면 그 신비함에 가슴이 뛴다. 어린이처럼 옛적에 죄악에 대한 하나님 심판으로 40일 대홍수로 인류가 전멸할 때 의인 노아의 방주에 탄 그의 가족 8명 각종 동물들 2쌍과 7쌍씩 구원하신 후 하나님이 노아에게 언약하셨다.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지 않겠으니 비 올 때마다 무지개 뜨면 내 사랑의 언약임을 알라.“ 그 후 인류의 죄악이 극심할 때마다 지역 화산폭발이나 전쟁이나 전염병 등 수많은 재난이 임했으나 경고일 뿐 전멸하지 않은 하나님 언약사랑 왜 모를까?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는 구원의 상징 빛은 7색이지만, 우리 눈에 띤 빛일 뿐 우리가 볼 수 없는 수많은 빛의 집약체로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에 대한 은유隱喩다. 성자 예수 메시아, 우리 죄 대속하신 십자가 고난 그를 구주로 영접하는 자..

2023.09.15

나에게 이야기하기

이어령 석좌교수(1934-2022) 너무 잘하려 하지 말라 하네. 이미 살고 있음이 이긴 것이므로~ 너무 슬퍼하지 말라 하네. 삶은 슬픔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돌려주므로~ 너무 고집부리지 말라 하네.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늘 변하는 것이므로~ 너무 욕심부리지 말라 하네. 사람이 살아가는데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치 않으므로~ 너무 연연해하지 말라 하네. 죽을 것 같던 사람이 간 자리에 또 소중한 사람이 오므로~ 너무 미안해하지 말라 하네. 우리 모두는 누구나 실수하는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너무 뒤돌아보지 말라 하네. 지나간 날보다 앞으로 살날이 더 의미 있으므로~ 너무 받으려 하지 말라 하네. 살다보면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기쁘므로~ 너무 조급해 하지 말라 하네. 천천히 가도 얼마든지 먼저 도착 할 수 있..

2023.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