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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시계

전담양(허난설헌문학상) 시간은 흐르고순간들은 잊혀 져도 추억은 생명을 머금고 머금어소리 없는 시내를 이루어메마른 내 마음을촉촉이 적셔줍니다 눈을 뜨고 마음을 보세요 잊혀 진 것 같았던하루하루섭리를 머금은잎사귀 되어 당신 그토록그리워하던초장 위에 피어 있을 게요 순간들이 잊혀지고시간이 흘러가도 언제나 처럼 피어 있는꽃시계향기롭구나.

2024.08.02

만들 수만 있다면

도종환(박용철문학상) 만들 수만 있다면아름다운 기억만을 만들며 삽시다. 남길 수만 있다면부끄럽지 않은 기억만을 남기며 삽시다. 가슴이 성에 낀 듯 시리고 외로웠던 뒤에도당신은 차고 깨끗했습니다. 무참히 짓밟히고 으깨어진 뒤에도당신은 오히려 당당했습니다 사나운 바람 속에서 풀잎처럼 쓰러졌다가도우두둑 우두둑 다시 일어섰습니다. 꽃 피던 시절의 짧은 기쁨보다꽃 지고 서리 내린 뒤의 오랜 황량함 속에서당신과 나는 가만히 손을 잡고 마주서서 적막한 한세상을 살았습니다. 돌아서 뉘우치지 맙시다밤이 가고 새벽이 온 뒤에도 후회하지 맙시다.만들 수만 있다면 아름다운 기억만을 만들며 삽시다.

2024.07.31

희망사항

채희문(녹색문학상) 시는 약이다향기로운 듯 달콤하면서도쌉싸름하거나쓰디 쓴 약이다. 그래서 시는독자가 많지 않은 가보다그래서 시인은 더욱 외로운 존재인가보다. 그래도나의 시는 약이고 싶다상한 갈대를 위한위안의 약이고 싶다쓸쓸한 나그네를 위한사랑의 상비약이고 싶다. 썩는 곳에 소금 같은 약이고 싶다어두운 곳에 빛 같은 약이고 싶다. 마음과 마음으로만남을 만나는정겨운 약속이고 싶다.

2024.07.23

별 하나와 나

최은하 시인(1938-2023)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누구나 별 하나씩 품고 산다 외로운 꿈을 꿀 때면별빛은 영롱하고 어둠이 짙으면 짙을수록별빛은 더욱 빛나고 꿈을 잃을라치면별은 사뭇 가물거리기도 하지만 별을 꼬옥 안고 하루를 지내로라면별은 가슴 속에서 빛난다 바로 이런 참이면비로소 나도 별 하나가 된다.-----------------------------------호가 ‘별밭’인 최은하(銀河)은 1959년 자유문학으로 등단하여 현대시인협회장을 역임하며 제14시집을 출간했다. 등단 60년이 넘은 원로 크리스천 시인으로 시마다 사랑과 정의를 형상화하는데 힘쓰시다가 작년에 85세로 소천하셨다.(소솔)

2024.07.19

별은 너에게로

박노해(노동문학상) 어두운 길을 걷다가빛나는 별 하나 없다고절망하지 말아라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구름 때문이 아니다불운 때문이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본 별들은수억 광년 전에 출발한 빛 길 없는 어둠을 걷다가 별의 지도마저 없다고주저앉지 말아라 가장 빛나는 별은 지금간절하게 길을 찾는 너에게로빛의 속도로 달려오고 있으니

2024.07.13

나는 마중물 되어

오인숙(한국기독교문학상) 지하수를 마중하러 가는 물물줄기 손잡고 올라와목마른 길손 갈증 풀어주고시든 꽃밭을 적셔 주리라. 찬란한 땅 위의 세상 애타게 그리워도잡아주는 손 없어 연못으로 고여 있는 사랑 표현하고 나눌 길 없어 답답하고 음침한 곳에서홀로 흘리던 눈물 이제 드러내어 함께 울자 나는 한 바가지 마중물 되어네 가슴에 고인 사랑 길어 올려푸서리 메마른 곳에 정겨운 시내로 흐르게 하리라.

2024.07.05

그대 빈손에 이 작은 풀꽃을

유안진(서울대 명예교수)  눈물로 눈을 씻어내며 눈물을 흘려본 이는 인생을 아는 사람입니다. 살아가는 길의 험준하고 뜻있고값진 피땀의 노력을 아는 사람이며,고독한 영혼을 아는 사람이며,이웃의 따사로운 손길을 아는 사람이며,가녀린 사람끼리 기대고 의지하고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귀하게 평가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눈물로 마음을 씻어낸 사람에게는 사랑이 그의 무기가 됩니다.용서와 자비를 무기로 사용할 줄 압니다.눈물로 씻어낸 눈에는 神의 존재가 어리비치웁니다. 강팍하고 오만하고 교만스러운 눈에는神의 모습이 비쳐질 수 없지만,길고 오랜 울음을 거두고, 모든 존재의 가치를 아는 눈에는모든 목숨이 고귀하게 보이고,모든 생명을 고귀하게 볼 줄 아는 눈은이미 神의 눈이기 때문입니다.

2024.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