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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서시

전홍구(세종문화예술 대상) 한해의 끝자락에서 나는 묻는다지나온 길에 부끄러움은 없었는지마음 속 약속은 몇 번이나 지켜졌는지 겨울 하늘의 별처럼희미한 기억을 헤아리며내 안의 어둠과 빛을 마주한다 새벽의 찬바람이 문을 두드릴 때나는 흔들리지 않은 나무가 되리라잎을 모두 떨군채로도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는 나무처럼 12월의 문을 연다새로운 시작을 품은 마지막 달 나는 다짐한다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설 것을흔들릴지라도 끝내 꺾이지 않을 것을

2024.12.09

12월의 기도

김덕성(시인)​주님, 12월에는한해 보내는 아쉬움이 있지만아픔과 슬픔일랑 하얀 눈 속에 묻고하얀 영혼으로 살아가게 하시고​날마다 따사로운 햇살삶의 원동력이 되어 새해엔 반듯이 잘못된 일상이 회복되어활기 찬 삶을 열어​길고 긴 인생 여정이지만자기주장만 세우는 그런 삶이 아닌의견을 들어주며 보듬으며 사는겸손하고 존경받는 삶이게 하소서​기쁜 크리스마스에는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땅에는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여모두 기쁜 성탄절이게 하시고​올 한 해아름다운 추억들 모아지혜롭고 성숙하게 마무리 하여유종의 미를 거두게 하소서​

2024.12.05

12월엔 기차를 타자

윤수천(시인, 아동문학가)   12월엔 기차를 타자  Ktx나 새마을호 말고 이왕이면 무궁화호를 타자  눈이 내리면 더욱 좋겠지 뽀얀 눈발 사이로 보이는 산천은 얼마나 멋질까 띄엄띄엄 나타나는 농가의 풍경은 또 얼마나 정겨울까  낯익은 정거장도 한둘쯤은 만날 수 있을지 몰라 어린 날 뛰놀던 초등학교 운동장도 보일지 몰라 나만 보면 얼굴이 홍시 빛깔이 되던  순이는 지금도 예쁘겠지 그래, 이왕이면 무궁화호를 타자가다가 한 시간쯤 고장으로 멈춰 서도 좋겠지 뽀얀 눈발을 뒤집어 쓴 기차는 참 멋질 거야 그 안에서 먹는 김밥 맛은 어떨까 커피 맛은 또 어떨까  12월엔 기차를 타자  Ktx나 새마을호 말고 이왕이면 무궁화호를 타자   목적지가 없으면 더더욱 좋겠지 그냥 가고 싶은 만큼 가서 아무 역이나 내리자 ..

2024.12.04

가을의 언어

석우 윤명상  옹알이하던 가을이이제는 자신의 언어로주저리주저리이야기를 늘어놓는 계절이다. 높푸른 하늘과 뭉게구름.그 하늘을 품은 호수와울긋불긋 산과 들의 단풍들,가을걷이로 마음을 비운 들녘과바람과 갈대와 고추잠자리 하는 말마다예쁜 말만 늘어놓는이 모든 것이우리를 향한 가을의 언어다. 가을이 말하고 있는인생에 대하여사랑에 대하여세상의 모든 의미에 대하여나도 가을 속의 한 단어이고 싶다.

2024.11.30

가을 레슨

채희문(녹색문학상)  가을이면 나무들은 그림을 그리는가. 빨강, 노랑, 다갈색...... 조화로다, 조화로다 황홀한 색감의 조화여  가을이면 나무들은 시를 쓰는가. 소슬바람에 한 잎, 두 잎 스스로를 하나 둘 떨구어 가며 가는 세월의 시를 쓰는가.  가을이면 산과 들은 시화전을 하는가. 보이지 않는 손길의 붓과 물감과 글씨로 그림과 시를 이루곤 우리의 가슴까지 캔버스로 만드는 감동적인 예술가가 되는가.  그래서 우리는 가을이 다가도록 가득한 느낌의 시간에 젖어 살다가 겨울바람이 오는 길목에서 가슴 설레며 울먹이는 마지막 수업의 학생이 되는가.

2024.11.26

가을의 편지

이해경(시인) 고운 손길 가득히 쏟아내는가을의 낙엽 속에어제 다 쓰지 못한사랑의 말들이 새겨져 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쏟아내는가을의 낙엽 속에어제 다 풀지 못한사랑의 숙제가 새겨져 있다. 울다 지친 마른 울음을 쏟아내는가을의 낙엽 속에어제 다 주지 못한사랑의 선물이 새겨져 있다. 발길 닿는 곳에 쏟아내는가을의 낙엽 속에어제 다 가지 못한사랑의 길이 새겨져 있다.

2024.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