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 구 상(1919~ 2004)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시 2023.09.11
호수 - 유경환(1936- 2007) 호수가 산을 다 품을 수 있는 것은 깊어서가 아니라, 맑아서이다. 우리가 주님을 안을 수 있는 것은 가슴이 넓어서가 아니라, 영혼이 맑아서이다. 시 2023.09.09
너의 그리움이 되고 싶다 - 용혜원(사랑의 시인) 누구나 꿈꾸는 사랑의 목마름이 있다하지만 살아가며 착하고 고운사람 만나 마음 터놓고 허물없이 기대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네가 나의 그리움이듯 나도 너의 그리움이 되고 싶다 너의 그리움이 되고 싶다. 시 2023.09.08
당신과의 인연 - 피천득 시인(1910-2007)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구슬이라도 가슴으로 품으면 보석이 될 것이고, 흔하디 흔한 물 한잔도 마음으로 마시면 보약이 될 것입니다. 풀잎 같은 인연에도 잡초라고 여기는 사람은 미련 없이 뽑을 것이고, 꽃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알뜰히 가꿀 것입니다. 당신과 나의 만남이 꽃잎이 햇살에 웃는 것처럼 나뭇잎이 바람에 춤추듯이 일상의 잔잔한 기쁨으로 서로에게 행복의 이유가 될 수 있다면 진실한 모습으로 한 떨기 꽃처럼 아름다웠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당신과의 인연 그 소중함을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기며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당신은 세상에서 제일 기분좋은 사람입니다. 그 덕분에 나또한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습니다. 시 2023.09.06
9월의 기도 - 채희문(녹색문학상) 세월이 벌써 흘러 가로수 낙엽 지는 가을이 왔습니다. 9월엔 여름의 열기와 먹구름을 거두어 주시고 태풍의 발달을 막아 과실들이 예쁘게 충실하게 하소서. 우리들 가슴의 문을 열어 어둠의 마음 지우게 하시고 아픈 몸을 위로와 치유해 주소서. 아쉬움과 미련 없이 가을의 풍성한 길에 사랑과 믿음이 더욱 돈독하게 하시고 이 기도가 축복과 감사의 편지되게 하소서. 시 2023.09.02
해바라기 밭으로 가려오 청마 유치환(1908-1967) 해바라기 밭으로 가려오. 해바라기 밭 해바라기들 새에 서서 나도 해바라기가 되려오. 황금사자(黃金獅子) 나룻오만한 왕후(王候)의 몸매로 진종일 찍소리 없이 삼복(三伏)의 염천(炎天)을 노리고 서서 눈부시어 요요히 호접(蝴蝶)도 못오는 백주(白晝)! 한 점 회의도 감상도 용납치 않는 그 불령스런 의지의 바다의 한 분신이 되려오. 해바라기의 밭으로 가려오. 해바라기의 밭으로 가서 해바라기가 되어 섰으려오. 시 2023.09.01
여행 - 권성길(세계문학 등단) 여행은 삶도 죽음도 미련 없이 떠나는 것 어디서든 자유로운 자신을 보는 것 세상을 보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참 자아自我를 보기 위해 떠나는 것 여행은 끝이 없다 삶이 곧 여행이기에 죽어도 끝이 없다 또 다른 세계의 여행이기에 시 2023.08.26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 나태주(풀꽃 시인)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저에게가 아니에요. 저의 아내 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달라는 말씀이에요. 이 여자는 젊어서부터 병과 더불어 약과 더불어 산 여자예요. 세상에 대한 꿈도 없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죄를 안 만든 여자예요. 신장에 구두도 많지 않은 여자구요, 장롱에 비싸고 좋은 옷도 여러 벌 가지지 못한 여자예요. 한 남자의 아내로서 그림자로 살았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 울면서 기도하는 능력밖엔 없는 여자이지요. 자기 이름으로 꽃밭 한 평, 채전 밭 한 귀퉁이 가지지 못한 여자예요. 남편 되는 사람이 운전조차 할 줄 모르는 쑥맥이라 늘 버스만 타고 다닌 여자예요. 돈 아끼느라 꽤나 먼 시장 길도 걸어다니고 싸구려 미장원에만 골라 다닌.. 시 2023.08.25
나팔꽃 - 정호승(소월시 문학상) 한쪽 시력을 잃은 아버지 내가 무심코 식탁 위에 놓아둔 까만 나팔꽃 꽃씨를 환약인 줄 알고 드셨다. 아침마다 창가에 나팔꽃으로 피어나 자꾸 웃으시는 아버지. 시 2023.08.19
1945년 8월 15일 피천득(1910- 2007) 그때 그 얼굴들 그 얼굴들은 기쁨이요 흥분이었다. 그 순간 살아있다는 것은 축복이요 보람이었다. 가슴에는 희망이요 천한 욕심이 없었다 누구나 정답고 믿음직스러웠다. 누구의 손이나 잡고 싶었다. 얼었던 심장이 녹고 막혔던 혈관이 뚫린 듯 했다. 같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모두 다 ‘나’가 아니고 ‘우리’였다. 시 2023.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