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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고백

김연수(시인. 다일공동체 상임대표) 나의 무엇이 아닌 내가 져야하는 계절입니다 당신을 향해 돌아서는 이 시간 주여 버릴 것 버리지 못해 가난한 나날을 참회합니다 사랑으로 살아간대도 너무나 짧은 한 생 더욱 사랑하지 못한 죄를 통회합니다 은총의 햇살에도 익지 못해 어린 영혼을 고백합니다 주여, 척박한 내 뜨락의 마지막 잎 새 까지 지면 가을 산하 어디에나 펼쳐두신 복음을 읽겠습니다 내가 나를 만나는 침묵의 계절을 이젠 허락해 주소서 헐벗은 내가 당신을 입는 기도의 맨 속문을 열어주소서 내가 진 자리마다 당신이 살아오면 남은 날은 더욱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더욱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2023.11.14

낙엽이 지던 날.. 가을

- 용혜원(시인) 나뭇잎들이 마지막 이야기를 끝내고 안녕을 외치는 가을입니다 삶의 마지막을 더욱더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하여 은행잎은 노란 옷을 입기 위해 여름날의 찬란함도 잊어버려야 했습니다 단풍잎은 붉은 옷을 입기 위해 마지막 남아 있던 생명까지 모두 버려야 했습니다 가을 거리에 외로움으로 흔들리며 쏟아져 내리는 낙엽들 우리의 남은 이야기를 다 하기에도 이 가을은 너무나 빨리 흐르고 있습니다.

2023.11.11

그분이 계시기에

- 유소솔 우리가 봄꽃을 잃었을 때 여름 꽃을 주셨지요, 우리가 여름 꽃을 잃었을 때 가을 단풍을 주셨지요, 하루 두 번 썰물로 모래밭 텅 비우시고 밀물로 모래밭 가득 채우시듯 우리가 10월 멋진 단풍의 빛을 잃게 되면 11월 풍요로운 추수의 노래 부르게 하시겠지요. 우리 필요에 따라 비우고 채워주시는 사랑이 그득한 하늘 그분이 계시기에 언제나 감사로 사는 행복함이여!

2023.10.31

이어령 교수의 후회

- 그의 마지막 수업에서 남긴 말 존경은 받았으나 사랑은 못 받았다. 그래서 외로웠다. 다르게 산다는 건 외로운 것이다. 세속적인 문필가로 교수로, 장관으로 활동했으니 성공했다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나는 실패한 삶을 살았다. 겸손이 아니다. 나는 실패했다.그것을 항상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내게는 친구가 없다. 그래서 내 삶은 실패했다. 혼자서 나의 그림자만 보고 달려왔던 삶이다. 동행자 없이 숨 가쁘게 여기까지 달려왔다. 더러는 동행자가 있다고 생각했지만,나중에 보니 경쟁자였다. 정기적으로 만나 밥 먹고 커피 마시면서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를 만들어야 그 삶이 풍성해진다. 나이 차이, 성별, 직업에 관계없이 함께 만나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다. 조용히 얘기 듣고, 얘..

2023.10.30

가을 햇볕에

​ - 김남조(1927-2023) 보고 싶은 너 가을 햇볕에 이 마음 익어서 음악이 되네. ​ 말은 없이 그리움 영글어서 가지도 휘이는 열매, 참다 못해 가슴 찟고 나오는 비둘기 떼들, ​ 들꽃이 되고 바람 속에 몸을 푸는 갈숲도 되네. ​ 가을 햇볕에 눈물도 말려야지 가을 햇볕에 더욱 나는 사랑하고 있건만 말은 없이 기다림만 쌓여서 낙엽이 되네. ​ 아아 저녁 해를 안고 누운 긴 강물이나 되고 지고 ​ 보고 싶은 너 이 마음이 저물어 밤하늘 되네.

2023.10.28

벌레 울음

- 신규호(1939- 2022) 9월부터 울어대기 시작하는 이름 모를 벌레들 그것이 울음인지, 웃음인지 몰라도 가을벌레소리가 울음으로 들리는 건 사람들 모두 슬프기 때문이다. 삶이 즐겁다 하는 마음보다 슬프다 하는 마음이 인생을 값지게 한다는 역설 나도 잘 울어야 할 것임을 이 가을 깨닫게 하는 저 벌레소리의 강물이 흐르고 있다. 시인은 ‘인생이 슬프다’ 고 여긴다. 그래서 시인은 우리의 삶에서는 고난이나 시련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것으로, 잘 울어야 할 것을 벌레의 울음소리를 듣고 깨닫는다.(류)

2023.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