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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노래

박목월(1916- 1978)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별을 보노라 돌아 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던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 부노라 아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던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 1953년 6.25 피난지 부산에서 중고교생 교양잡지 ‘학생계’가 창간하며 박목월 시인의 시 ‘4월의 노래’를 발표했다. 이대교수 김순애 교수가 작곡하여 당시 전국의 고교생들이 꿈을 노래하는 애창곡이었다.

2024.04.02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 유소솔 그 어느 해던가 교회에서 단체로 본 ‘Passion of Christ'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란 영화. 예수님이 가시관 쓰고 피 흘리는 얼굴, 로마군인들의 사나운 채찍에 맞아 온 몸이 찢어져 핏자국으로 낭자할 때 “아이고, 아이고--” 어느 老 권사가 갑자기 통곡을 하고 남자들의 눈에는 눈물이 번뜩이고 여자들은 손수건에 눈물을 연신 닦고 있을 때 근엄한 담임목사의 얼굴에는 두 줄기의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젊었을 때 어느 부흥회에서 흘렸던 눈물! 40년 만에 그 눈물을 다시 찾은 老 목사님. 잃어버린 한 영혼보다 학위, 명예, 감투 쫒아 동분서주했던 나날들... 조용히 회개하고 있을 때 매 마른 대지에 단비 내리듯 老 목사님의 심령에 은혜가 촉촉이 내려 심령이 소생하고 있었다..

2024.03.29

십자가

윤동주(1917-1945) 쫓아오는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은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1941년 작

2024.03.27

기도하게 하소서

유소솔 기도는 언어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때 묻은 욕망이 깃든 언어는 기도가 아니다. 기도는 자기 포기抛棄, 자기 해체解體의 선언이다. 거짓된 언어 오염된 탐욕들을 몽땅 불살라버리고 진리의 빛 속에서 참되게 타오르는 기도는 겟세마네에서 피땀 흘리며 드린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자기 비움의 기도와 스스로 십자가 지는 삶이 없다면 아직 기도를 모르는 철부지일 뿐이다.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첫날 주여,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

2024.03.25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2

이어령 교수(1934-2022) 하나님, 이 찬란한 빛과 아름다운 풍경. 생명이 넘쳐나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당신께서 만드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왜 당신의 딸 敏娥에게 그 빛을 거두려 하십니까. 기적을 내려달라고 기도드리지 않겠나이다. 우리가 살아서 하늘의 별 地上의 꽃을 보는 것이 그리고 사람의 가슴에서 사랑을 보는 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매일 매일 우리는 당신께서 내려주시는 기적 속에서 삽니다. 그러니 당신께서 주신 그 기적들을 거두어 가지 마시기를 진실로 기도합니다. 만약. 敏娥가 어제 본 것을 내일 볼 수 있고 오늘 본 내 얼굴을 내일 또 볼 수만 있게 해주신다면 저의 남은 生을 주님께 바치겠나이다. 아주 작은 힘이지만 제가 가진 것이라고는 글을 쓰는 것과 말하는 천한 능력이오니 ..

2024.03.19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1

이어령 교수(1934~ 2022) 하나님, 나는 당신의 제단에 꽃 한 송이 촛불 하나도 올린 적이 없으니 날 기억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 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기도 합니다. 사람은 별을 볼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별 사탕이나 혹은 풍선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렇게 높이 날아갈 수 없습니다. 너무 얇아서 작은 바람에도 찢기고 마는 까닭입니다. 바람개비를 만들 수는 있어도 바람이 불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습니다. 보셨지요. 하나님, 바람이 불 때를 기다리다가 풍선을 손에 든 채 잠든 유원지의 아이들 말입니다.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만드셨습니까? 하나님, 그리고 ..

2024.03.13

봄비를 좋아하십니까

용혜원(목사 시인) 봄날 온 땅에 내려 촉촉하게 적셔주는 봄비를 좋아하십니까 겨우내 추위에 떨며 입술이 메말랐던 땅을 푸근하게 적셔주는 봄비를 좋아하십니까 봄비가 내리면 온 세상이 새싹이 돋고 봄꽃이 피어나 봄의 축제가 열리기 시작합니다. 봄비가 내리면 겨우내 추위에 떨었던 나무들이 기지개를 펴고 기운을 차리고 씩씩하게 자라나 산들마다 초록 옷을 갈아입습니다. 봄비를 좋아하십니까 사람에 목마른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봄비가 내립니다.

2024.03.08

3월

나태주(인기 시인) 어차피 어차피 3월은 오는 구나 오고야 마는 구나 2월을 이기고 추위와 가난한 마음을 이기고 넓은 마음이 돌아오는 구나 돌아와 우리 앞에 풀잎과 꽃잎의 비단방석을 까는 구나 새들은 우리더러 무슨 소리를 내보라고 조르는 구나 시냇물 소리도 우리더러 지껄이라 그러는 구나 아, 젊은 아이들은 다시 한 번 새옷을 갈아입고 새 가방을 들고 새 배지를 달고 우리 앞을 물결쳐 스쳐가겠지... 그러나 3월에도 외로운 사람은 여전히 외롭고 쓸쓸한 사람은 쓸쓸하겠지...

2024.03.04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시인)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며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2024.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