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1

유소솔 2024. 3. 13. 00:00

 

                                               이어령 교수(1934~ 2022)

하나님,

나는 당신의 제단에 꽃 한 송촛불 하나도 올린 적이 없으니

날 기억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 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기도 합니다.

사람은을 볼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별 사탕이나 혹은 풍선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렇게 높이 날아갈 수 없습니다.

너무 얇아서 작은 바람에도 찢기고 마는 까닭입니다.

바람개비를 만들 수는 있어도 바람이 불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습니다.

보셨지요. 하나님,

바람이 불 때를 기다리다가 풍선을 손에 든 채 잠든 유원지의 아이들 말입니다.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만드셨습니까?

하나님, 그리고 저 을 만드실 때,

처음 바다에 물고기들을 놓아 헤엄치게 하실 때

고통을 느끼시지는 않으셨는지요?

아! 나는 이 작은 한 줄의 詩를 쓰기 위해서 코피보다 진한 후회

발톱보다도 더 무감각한 망각 속에서 괴로워하는데

하나님은 어떻게 저 많은 들을 축복으로 만드실 수 있었는지요.

 

하나님, 당신의 제단에 지금 이렇게 경건한 마음으로

떨리는 몸짓으로 엎드려 기도하는 까닭은

을 볼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만들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용서하세요. 하나님

원컨대 아주 작고 작은 모래 알만한 하나만이라도 만들 수 있는을 주소서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감히 어떻게 하늘의 별을 만들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이 가슴 속 암흑의 하늘에 반딧불만한 작은 별 하나라도 만들 수 있는 을 주신다면

가장 향기로운 초원에 구름처럼 희고 탐스러운 새끼 양 한 마리를 길러

모든 사람이 잠든 틈에 내 가난한 제단을 꾸미겠나이다.

 

좀 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하나님, 당신의 발끝을 가린 聖스러운 옷자락

때 묻은으로 조금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아! 그리고 그 으로 저 무지한 사람들의 가슴속에서도

풍금소리를 울리게 하는 한 줄아름다운 詩를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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