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80초 명칼럼, '한석봉의 어머니가 아닙니다'

유소솔 2025. 8. 11. 00:00

 

 

                                                 이어령 교수(1934-2022)

 

방안에서

어머니을 들어 가래떡을 썰고

아들을 들고 글씨를 썼습니다.

어머니가 썬 은 어둠 속에서도 그 크기와 모양이 똑 같아

한 치도 어긋남이 없었지만

아들이 쓴 붓글씨삐뚤빼뚤 어지럽기만 했습니다.

 

아들아, 아직도 네 공부는 멀었다.

어미가 가래떡을 썰 듯이 매일 한시도 잊지 말고

글씨 쓰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아들

집을 나가서는 돌다리글씨를 쓰고

집에서는 질그릇이나 항아리에다 글씨 연습을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한석봉어머니와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어머니의 가르침으로 석봉은 조선 제일의 명필가

국가의 문서를 다루는 사자관이 되어 그 이름이 중국까지 떨쳤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방에서 을 썰 듯이

지금은 사람이 기계처럼 반복하는 노동의 시대가 아닙니다.

아무 뜻 없이 암기하고

규격에 맞춰 길들여진 숙련공보다

나만이 개성창조력을 길러야 합니다.

 

꺼진이 아닙니다.

대낮 햇빛이 쏟아지는 벌판

360도로 열린 광장에서 가르치세요.

삐뚤빼뚤 글씨를 써도 좋습니다.

 

큰 붓을 들고

네가 쓰고 싶은 글마음대로 대지 위에 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