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어령 교수(1934-2022)
옛 중국 제나라 사람이 시장에서
금덩이를 훔치다 잡혀왔어요.
재판하던 사또가 물었습니다.
“이놈아, 사람 많은 대낮에 어쩌자고 금덩이를 훔쳤느냐?”
그러자 도둑이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사또님. 사람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제 눈에는 오직 금덩이만 보였거든요.“
옛 한국인 두 형제가 길을 가다 금덩이를 주었지요.
사이좋은 형제는 금덩이를 반으로 나눈 후
집으로 가는 나룻배에 올랐습니다.
배가 강 가운데에 이르자 아우가 갑자기
두 금덩이를 물속에 던져버렸어요.
“뭐 하는 거야?”
형이 놀라 소리치자 아우가 말합니다.
“형님, 금덩이를 보자 제 마음이 달라졌어요.
‘형님이 없었더라면 나 혼자 다 차지했을 텐데’
그런 생각이 떠나지 않아 금덩이를 버렸어요.“
똑 같은 금덩이 이야기인데,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요.
사람과 금덩이를 놓고 택일하지 말아요,
사람은 사람, 금덩이는 금덩이,
그 두 개를 모두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만약 우리 이야기 속의 두 형제가 금덩이를 투자해
함께 ‘형제상회’를 만들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새로운 우리 이야기가
탄생되었을 것입니다.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80초 명칼럼, '검색이 아니라 사색이다' (16) | 2025.10.13 |
|---|---|
| 80초 명칼럼- '해는 어디서 뜨나' (7) | 2025.10.06 |
| "Why me?", "Why not?" (14) | 2025.09.27 |
| 80초 명칼럼- '길을 묻다' (20) | 2025.09.22 |
| 80초 명칼럼- ‘먼 미래’ (15) | 2025.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