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멍한 눈빛들

유소솔 2021. 3. 20. 15:21

                                                             

 

                                                       

 

20여 년 전에 가서 본

신의주 건너편 중국 단동 시

그리운 그 이름 압록강변에서

 

북한 주민 아사자餓死者 속출할 때

한국교회 성도들의 뜻 모아

중국에서 산 강냉이 가루 80톤을

찬송과 기도와 말씀으로 예배드리고

하루 한 번 신의주로 가는

화물열차 6칸에 가득 실어 보내고

 

우리 일행은 작은 유람선 빌려

중국인 선장 안내로 신의주 항구

한 바퀴 돌아볼 때 본 북한 주민들

할 일이 없어 종일 강둑에 앉은 3,40대들

사진 찍지말라는 선장 당부에 아쉬었으나

바라보는 그 멍한 눈빛들 영영 잊을 수 없다.

 

강에는 오가는 배들이 하나 보이지 않고

강변에는 시뻘건 녹슨 고깃배들이

수십 척 그냥 매어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의 고달픔과 처절한 삶이 엿보여                                                                   

문득 측은지심惻隱之心 일어나

일주를 중단하고 그냥 돌아오고 말았다.

 

귀국한지 보름 후에 날아 온

북한 적십자사에서의 전보

 

- 귀회에서 보낸 강냉이가루 80톤 접수하고

  평안북도, 양강도 주민 16만 4천5백 89명에게

  고루 나누어 주었음. 이상

 

인도적 입장에서 보낸 것이지만

‘감사’라는 단어 하나 없는게 섭섭했으나

압록강변에서 본 그들의 멍한 눈빛 때문에

4년 동안 14차례 다양한 곡물을 사서

인천, 부산, 군산, 속초에서 계속 실어 보냈다.

 

보낼 때마다 보내 온 전보들은

한결같이 ‘감사’란 단어 하나 없는

전혀 사무적이고 싸늘한 문구였으나

 

우리가 계속 보낸 것은 바로 그들의 눈빛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떠오르는

그 멍한 눈빛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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