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의자 - 이재창(1949~ ) 가을이 노랗게 떨어진 늙은 은행나무 아래는 휑하니 비어있는 의자 하나 낮은 몸 잔뜩 구부린 채 낯선 이를 기다리고 있다. 얼마나 기다린 것일까 녹슨 다리에 굽은 허리 색 바래 검버섯 피어있고 한쪽 귀퉁이는 이미 썩어 흉하게 내려앉아버렸다. 오랜 세월 동안 한 치의 움직임도 없이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오지도 않는 이를 기다리다 홀로 늙어버린 빈 의자 방황하는 젊은이라도 사랑에 지친 가장이라도 짝 잃어 외로운 노인이라도 누구든지 받아주고 싶은데 언제든지 받아줄 수 있는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더 늙어 보이는 빈 의자엔 가을 햇살만 노랗게 내려와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있다 기다란 그림자만 앉아있다. - 국민일보 신춘문예 대상(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