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지산마을의 삼총사

유소솔 2021. 1. 16. 17:21

우리나라의 국도 제1호는 언제나 많은 차들로 분빕니다.

무안읍에서 목포로 들어가는 길목에 지산재라는 언덕길이 있어요. 지금은 아스팔트길로 잘 닦여 있어서 차로 오르면 금방이지만, 차가 없던 옛날에는 꽤 높아서 행인들이 이 길을 오르다 한두 번쯤 언덕길에서 쉬어 갔다고 합니다.

 

그때 목포 쪽 언덕길을 급히 달려가는 1톤 트럭 하나가 있었어요. 트럭은 앞차를 이리저리 피하면서 교묘히 앞질러 쏜살같이 달렸지요. 무엇이 그리도 급한지, 제한속도는 아예 지킬 마음이 없는가 봅니다.

 트럭은 지산재 높은 언덕을 훌쩍 넘은 후 내리막길로 빠르게 내려갔어요. 그렇지만 1차선과 2차선에서 앞서가는 차 때문에 트럭이 잠깐 급정거를 했는데, 그때 “삐이익!”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차가 덜컹! 하고 한번 크게 흔들렸지요.

그 바람에 트럭 뒤 칸에 있던 돼지 한 마리가 아스팔트길로 굴러 떨어졌어요. 이 트럭은 새끼 돼지 20마리를 싣고 가던 길이었지요.  돼지 한 마리가 길에 떨어진 줄도 모르고 트럭 운전사는 재빠르게 1차선으로 들어가더니 어느새 쪼르르 저 멀리 달아나 버렸어요.  길에 떨어져 넘어진 돼지는 금방 일어나더니, 꿀꿀하며 길 오른쪽 비탈길로 천천히 내려갔어요.      

 몇 대의 차들이 새끼돼지를 보고 속도를 늦추며 어서 지나가기를 바라며 기다려주었어요.

참 고마운 사람들이었지요. 

돼지는 길가 잡초가 무성한 곳으로 천천히 내려가더니, 부드러운 풀꽃도 뜯어먹고 흐르는 시냇

물도 마셨어요. 그리고 천천히 마을쪽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갔지요,

 

지산마을 아이들 셋이 시냇가로 놀러 왔어요. 그들은 동네에서 친하기로 소문난 삼총사였어요.

가끔은 다투기도 하지만 그들은 학교에 가거나 집으로 올 때도 함께 하고, 놀 때도 언제나 같이 붙어 다녔지요.  만일 누구 하나가 누구와 싸우게 되면 셋이 힘을 합쳐 싸우기 때문에 이들을 당할 아이들은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지산마을의 삼총사입니다. 이들 때문에 지산마을이 좀 유명해졌고, 지산 마을의 어른들도 이들 삼총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야, 돼지다!”

뚱보 경식이가 먼저 발견하고 달려와 돼지를 끌어안으며 소리쳤어요.

“내가 잡았으니, 이 돼지는 내꺼-다!”

이 말에 키다리 칠수가 웃으면서 말했지요.

“임마. 이 돼지는 임자가 있는 몸이란 말이다.”.

“임자가 누군데?”

“누군 누구야? 돼지를 키우는 복순 네지.”

그 때 세모돌이 현기가 그 말에 고개를 흔들었어요.

“아니야. 복순 네 돼지는 모두 털이 까만데, 이놈은 회색빛이야.”

“그럼. 이 돼지가 어디서 온 거지?”

“글쎄다. 하늘에서 툭 떨어졌나?”하면서, 현기는 하늘을 쳐다보았어요.

“하여튼 이놈은 내가 잡았으니, 내~꺼다. 알았지?”

경식이는 돼지 힘에 끌려가면서, 소리쳤어요. 그 말에 현기가 맞받아 소리쳤지요.

“임마. 우린 삼총사야. 무엇이든지 서로 나눠가져야 하는 것 아냐?”습니맞아. 그래야 삼총사지.”하고, 칠수도 거들었지만 경식이는 들은 체 만 체였습니다.

 

그 때 현기는 큰 사실을 발견이나 한 듯 큰소리로 외쳤어요.

“경식아, 무슨 물건이든지 주웠으면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야!”

그 말에 칠수도 거들었지요.

“맞아. 너 경찰에 신고하지 않으면 쇠고랑을 찬다. 알았어?”

“쇠고랑? -- 그래도 난 이 돼지, 절대로 양보할 수 없어.”

경식이는 돼지의 힘에 끌려가면서 계속 소리를 질렀어요.

“야, 욕심쟁이 뚱보새끼!”

현기가 참을 수 없어서 고함을 질렀지요.

“뭐, 뚱보새끼?”

화가 난 경식이가 눈을 부라리며 뒤돌아보다 그만 돼지를 놓치고 돌밭에 굴렀어요. 경식이는 커다란 돌에 무릎을 다쳤는데, 돼지는 쪼르르 콩밭으로 사라졌습니다.

“키다리 자식아. 너 때문에 내 돼지를 잃어 버렸쟎아. 빨리 찾아와, 찾아오지 못해?”

화가 난 경식이의 말에 칠수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어요.

“찾아오긴? 돼지는 잡은 놈이 임자라면서?”

“맞아. 주인 없는 물건은 찾은 사람이 임자지.”하고, 현기가 맞장구쳤지요.

“현기야, 이제 같이 우리 돼지를 잡으러 가자.”

“그래, 가자.”

칠수와 현기는 무릎을 다쳐 쩔쩔매고 있는 경식이를 못 본체하며 함께 돼지가 사라진 콩밭으로 들어갔습니다.

 

콩밭이 너무 넓어서, 돼지가 숨은 곳을 알 수가 없자, 현기가 제안을 했어요.

“칠수야. 너 나하고 약속 하나 하자.”

“무슨 약속?”

“우리 중에 누가 먼저 돼지를 잡더라도 같이 잡은 걸로 하자, 이거야. 어때?”

“좋아. 그럼, 똑 같이 나눠 갖는 거야?”

둘이는 악수를 한 후 칠수는 왼쪽으로, 현기는 오른쪽 길로 들어갔지요.

현기가 콩밭을 이리저리 둘러보았을 때 한쪽 콩잎들이 몹시 움직였어요. 조심조심 다가가보니, 돼지가 콩깍지를 따먹고 있었지요. 현기는 돼지를 덥석 덮쳤습니다.

“꿀꿀, 꿀꿀---”

“칠수야! 내가 돼지 잡았다!”

현기가 소리치자, 칠수가 저쪽 밭에서 뛰어나왔어요.                                       

“현기야. 아까 약속 잊지 않았겠지?”

“무슨 약속?”

“시치미 떼지 마, 누가 돼지를 잡더라도 같이 잡은 걸로 하자고, 네가 말했잖아?”

“그런 일 있었던가? 내가 미쳤지, 괜히 그런 헛소리를 했어.”

“그럼, 후회한단 말이야?”

“이 놈을 내가 독차지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데, 어쩐다지?”

“그럼, 안되지.”

“안 되는 거지? 그래. 약속은 약속인데, 뭘?”

“그렇지? 역시 넌, 내 친구야.”

칠수는 현기를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그들은 돼지의 앞다리와 뒷다리를 나눠 잡고 콩밭을 빠져나왔어요.

마을길에 이르자, 경식이가 절뚝거리며 기다리다가 소리쳤습니다.

“너희들 내 돼지 잡느라 수고했다.”

“내 돼지 좋아하네? 이놈은 우리 둘이서 잡았으니 우리 두 사람 것이다!”

“뭐라구? 그 돼지는 내가 처음에 잡은 것이란 말이야.”

“천만의 말씀. 네가 놓친 것을 우리 둘이서 다시 잡았으니, 이젠 우리 것이란 말이다.”

칠수와 현기는 사이좋게 돼지를 붙잡고, 마을길로 바삐 걸어갔습니다.

“야, 이 도둑놈들아!”

경식이가 절뚝거리며 따라오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어요.

그리고 분에 못 이겨 집에 도착하자마자, 112로 도난신고를 했지요.                     

 

한 시간 후, 지산 마을로 경찰차 한대가 들어오더니 마을회관 앞에 섰습니다.

조금 있자, 마을 이장님의 목소리가 방송으로 온 마을의 집마다 들려왔어요.

“알려드립니다. 경식이, 칠수, 현기 삼총사 어린이는 속히 마을회관으로 와 주기 바란다.

112신고로 지금 경찰 아저씨들이 와계시니, 칠수와 현기는 주은 돼지를 가지고 빨리 마을

회관으로 오고, 경식이도 빨리 오기 바란다.”

 방송 소리에 경식이는 야릇한 미소를 지었어요. 칠수와 현기는 경식이가 신고한 줄 알고, 콩밭에서 잡은 돼지를 둘이서 붙잡고 나타났지요. 방송을 듣고, 마을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하여 모여들었습니다. 그 중에는 복순이도 있었어요.

 경찰관 아저씨 두 사람 중 한 분은 여순경이었어요.  여순경이 삼총사 아이들에게 그 동안에 되어진 일을 자세히 물었지요. 경식이는 경식이대로, 그리고 칠수와 현기는 그들대로 서로 자기들의 돼지라고 우겼어요. 그 때 복순이가 나서서, 이 마을에서 돼지 키우는 집은 자기네 밖에 없다면서, 자기네 돼지라고 우겼지요.

 그러자 이장님이 “복순이네 돼지는 까만 털인데, 이놈은 회색 털이므로 복순이네 돼지는 아닌 것 같다.”하고, 판정을 했습니다. 모여든 사람들 중에 경식이 편과 칠수, 현기네 편으로 의견이 둘로 갈라졌어요. 그런데도 경식이 아빠는 경식이 편을 들지 않았고, 그 대신 경식이네와 친한 이웃집 두 사람이 경식이 편을 들었어요.

 경식이 아빠는 지산마을의 이장님이었어요. 아빠의 입장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식이는 자기편이 돼주지 못한 아빠 불만스러웠지요.

 사람들 중에 복순이 편을 드는 사람이 하나도 없자, 복순이는 그만 울음을 터뜨렸어요. 새끼돼지 한 마리가 온 마을의 평화를 깨뜨리는 순간이었지요.

경찰관 두 사람은 잠시 상의를 하더니, 남자 순경이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조용히 하십시오. 법적으로 말하자면, 이 돼지는 잃어버린 물건입니다. 잃어버린 물건은 누가 먼저 주웠다고 해서 주인이 되는 것 아닙니다.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원칙입니다. 따라서 이 새끼돼지는 짐작하건대 저 국도에서 싣고 가다 떨어진 돼지로 생각됩니다. 전에도 가끔 이런 일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 돼지는 일단 주인을 찾을 때까지 지서에서 책임지고 보관하겠습니다. 그리고 즉시 경찰서 인터넷으로 습득 물건 공고를 하겠습니다. 만약 한 달 기간 동안 주인이 안 나타나면 법에 따라 이 돼지를 잡은 삼총사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그 때도 삼총사가 서로 자기의 것이라고 우길 때에는 이 마을에 기증할 터이니, 그 때 이장님께서 잘 해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고 난 경찰관 두 사람은 마을 사람들에게 경례를 한 후, 새끼돼지를 경찰차에 싣고 떠나버렸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경식이는 현기와 칠수를 못 본 체 했어요. 삼총사들에게 이런 일은 처음이었는데, 다 경식이의 욕심 때문었지요. 그것을 모른 경식이는 어떤 희망을 가졌는데, 한 달 후에 주인 없는 새끼돼지를 돌려받게 되면, 이장인 아버지의 도움으로 틀림없이 자기 차지가 되리라고 경식이는 믿었지요. 그래서 그는 슬그머니 웃었어요.

 그러나 칠수와 현기는 낙심했어요. 경식이 아빠가 이장님이므로, 한 달 후에는 돼지가 틀림없이 경식이 차지가 될 것으로 믿었지요. 그래서 두 사람은 기분이 아주 언짢았어요.

 하지만 경식이 아빠의 생각은 달랐지요. 평소 단짝이던 삼총사가 돼지 한 마리 때문에 서로 다투게 되자, 이장님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어요.

“이까짓 새끼돼지 한 마리 때문에 삼총사의 우정이 깨어져서는 안 되지. 암, 안 되고말고.”

 그 날 밤, 경식이 아빠는 칠수와 현기의 아빠를 만났어요. 그들은 돼지 한 마리 때문에 세 아이의 우정에 금이 가는 것을 함께 안타까워한 후,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서로 자기 아이의 편을 들지 않기로 했지요. 그리고 만일 한 달 후 돼지가 마을로 돌려질 때를 생각하고 의견을 나눴어요. 그것은 새끼돼지를 복순이네 집에 맡겨 큰 돼지가 된 후, 마을 어린이들 잔치를 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에 지산마을의 이장님은 지서 경찰관으로부터 온 전화를 받았어요. 사연은, 새끼돼지 주인이 나타나서 확인하고 돌려주었다는 통지였어요. 이장님은 마을 잔치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을 알고, 조금은 섭섭했지요.

“그럼. 마을 어린이들을 사이좋게 하는 무슨 방법이 없을까?”

이장님은 이 마을교회에 잘 다니시는 분이었어요. 그래서 그는 그 길로 기도하기 위해서 교회로 갔지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하는 이장님의 습관이었어요.

 

그날 오후였습니다. 작은 트럭 한대가 지산마을로 들어서더니, 마을회관 앞에 멈춰 섰어요. 트럭 주인은 무안읍에서 크게 양돈장을 하는 김 사장이었지요.

 김 사장은 일주일 전에 목포양돈장에서 주문받은 돼지 20마리를 실어 보냈었는데, 운전기사가 한 마리를 잃어버려 19마리 값만 받아왔어요. 그런데 일주일이 지난 오늘 오전에, 경찰서 인터넷 사이트를 본 목포양돈장 주인이 연락을 해서, 지서에 가서 잃어버린 새끼돼지 한 마리를 찾았지요.

 김 사장은 경찰관을 통해서 지산마을 삼총사의 돼지에 얽힌 사연을 들었어요.             

그는 집으로 가면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집에 가서 제법 큰 돼지 한 마리와 바꿔 트럭에 싣고

지산마을에 달려 온 것입니다.

 그는 지산마을 이장을 만나 자기의 명함을 주었어요. 그리고 트럭에서 큰 돼지 한 마리를 힘들게 내렸지요.

“이장님. 이 마을에 삼총사가 있다지요? 요즘 좀처럼 보기 드문 아이들 우정입니다. 그런데 새끼돼지 한 마리 때문에 삼총사 아이들 우정이 깨뜨려졌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러면 안 되지요. 요즘엔 어른들뿐 아니라 아이들까지 모두 이기적이 되어가서 큰일인데, 이 마을에 삼총사 어린이가 있다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새끼 돼지는 안 되겠고, 그 대신 큰 돼지 한 마리를 제가 이 마을에 기증하려고 이렇게 찾아왔어요. 이 돼지로 마을 잔치를 하셔서, 삼총사의 우정 회복은 물론 이 마을 모든 아이들이 사이좋게 자라기를 바랍니다.”

 뜻밖의 선물에 이장님은 놀라면서, 김 사장님에게 인사를 했어요.

“참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마을아이들의 우정을 위해 무엇을 할까 염려했는데, 하나님이 우리 마을에 천사를 보내주셨군요.”하고, 두 사람은 굳게 악수를 했습니다.

 

김 사장이 돼지를 이장에게 드리고 나서 떠나자, 이장은 돼지를 몰고 복순네 집으로 갔습니다. 

“복순이 아버지. 이 돼지를 한 보름동안만 키워주시게. 이 돼지는 우리 마을 아이들의 돼지일세. 보름 후면 어린이날일세. 그때 이놈을 잡아서 우리 마을 아이들 잔치를 하려고 하네.”

그러자 복순이 아버지가 말했어요.

“그때 우리 복순이도 이 잔치의 주인공이 되는가?”

“그야, 물론이지.”

“그럼, 염려 말게. 우리 마을 삼총사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 즐거운 잔치가 되도록 좋은 사료로 잘 먹여 잘 키우겠네.”

 복순이 아버지가 시원스럽게 말했지요.

 어느새 해가 산마루로 꼴깍 넘어가려고 했어요. 이장님은 즐겨하는 찬송가를 휘파람을 휘~ 휘~ 불며 집으로 걸어갔어요. 이장님의 얼굴에 노을빛으로 환하게 비춰 달덩이처럼 밝았습니다.

 

                                                                                    - 계간 아동문학가(월간문학사) 게재(2005.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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