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어령 교수(1934- 2022)
유명한 화가 반 고흐는
구두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비평가들은 그 구두를 놓고
이런저런 해석을 늘어놓았지만
그 구두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는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습니다.
반 고흐의 그림을 좋아해서
그것을 동양의 화풍으로 비슷하게 그린
‘풍자개’라는 중국의 화가가 있었지요.
하지만 그 화가가 그린 구두는
반 고흐의 그것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단단한 구두창이
길 위의 버러지 한 마리를 밟아 죽이려는
순간을 그린 것이었지요.
얼마나 많은 가죽 구두가
신고 다니는 주인도 모르게
얼마나 많은 벌레 밟아 죽였는지
아마 반 고흐도 몰랐을 것입니다.
알을 깨고 애벌레가 나오는
초여름이 되면
한국의 농부들은
느슨하게 조인 짚신을 삼아 신고 다녔지요.
그것을 오합혜(五合鞋)라고 불렀습니다.
반 고흐의 구두도 짚신도
이제는 옛날 이야기가 됐지만
우리는 지금도
그 옛날 농부들처럼 오합혜를 신고
여름이 오는 저 들판으로 함께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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