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어령 교수(1934- 2022)
흰 수염이 신선처럼 앞가슴을 가린 할아버지가
길에서 아이를 만났습니다.
“할아버지, 수염이 그렇게 긴데
주무실 때는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주무세요?
밖에 빼놓고 주무세요?“
“하하하! 고 녀석 누울 때는 말이다,”
막상 대답을 하려고 했지만 할아버지는 정말
자기가 수염을 어떻게 하고 자는지 알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어요.
“글쎄다, 오늘 밤 자고 내일 가르쳐주마.”
그리고 얼른 집으로 와서 이부자리를 펴고 누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문제가 생겼습니다.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나니 갑갑했고
수염을 이불 밖으로 내 놓으면 허전해서
할아버지는 밤새도록
수염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그래요.
누구나 자기 가슴속에 묻고 사는
수염 하나씩 있습니다.
좀 헷갈리고 꼬인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모른 채 살아 온 나날들을
새파랗게 눈을 뜨고 지켜보세요.
일거수일투족 숨어 있는 수염을
의식 위로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묻는 자에게 답을 하세요.
“이것이 나의 삶, 나의 모습”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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