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윤하의 동화책

유소솔 2021. 2. 25. 18:28

 

                                                                                                 

 

 

말썽꾸러기 반’

윤하네 반은 학교 안에서 이렇게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윤하네가 이 동네로 이사 와서, 이 학교에 다니게 된 지도 어느새 두 달이 지났습니다.

반 아이들은 40명이 넘었고, 그래서 그런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습니다.

5학년이면 제법 높은 학년이므로 철이 들만도 하는데 웬일인지 윤하네 반 아이들은 걸핏하면 다투고 싸움질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성질이 급한 남자 선생님이 맡으셨다가 말썽꾸러기들의 등쌀에 못 이겨 아이들의 손바닥에 매질을 한 것이 말썽이 되어 다른 학교로 가셨습니다, 그래서 새 선생님이 오셔야 하는데 말썽꾸러기 반이어서 선생님들은 아무도 맡지 않으려고 하였답니다.

 

그런데 한 달 전에 박 선생님이 이 말썽꾸러기 반을 스스로 맡아 오셨습니다. 박 선생님은 퍽 상냥하시고 얼굴도 예쁘신 여선생님이신데, 다른 선생님보다 다른 점이 많으셨습니다.

 아이들이 몹시 떠들거나 말썽을 부리면, 공부를 가르치시다가도 조용히 하라는 말씀 한마디 없습니다. 그 대신 교탁 의자에 앉아 호수처럼 크고 맑은 눈을 스르르 감아버리십니다. 그리고 두 손을 가만히 붙잡고 계십니다. 그것이 꼭 기도드리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느 때는 그 눈에서 눈물까지 흐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어느새 극성을 피우던 아이들은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 찬물을 끼얹듯 그만 조용해지고 맙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맑은 눈을 가만히 여시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구슬이 굴러가는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재미난 이야기들을 짧게 해주십니다.

 

그동안 박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재미난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이솝의 우화들도 재미가 있었지만, 꼬마 장군 다윗의 얘기는 아이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 또 사나운 사자들이 사는 곳에 던져진 다니엘의 얘기나, 뜨거운 불 속으로 던져진 다니엘의 세 친구의 얘기는 아이들의 마음이 조마조마 하였다가 살아나자 좋아서 큰 박수를 쳤습니다.

 특히 요셉 소년의 얘기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갖게 했으며, 이삭과 야곱이라는 쌍둥이 형제가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 뱃속에서 서로 먼저 나오려고 싸우던 얘기는 아이들의 배꼽을 움켜쥐고 깔깔깔 웃느라고 시간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윤하는 말썽꾸러기 아이들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아 언젠가 아버지께 말해 반을 다른 반으로 옮기려고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런데 박 선생님이 오시고부터는 그렇게 선생님이 좋을 수가 없어 반을 옮길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어느새 아이들의 마음도 윤하와 같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공부 시작하기 전에 선생님이 잠깐 기도드리고, 가끔 재미난 얘기들을 들려주시면 아이들은 좋아서 선생님의 말씀을 모두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 새 윤하네 반은 착하고 공부 잘 하는 반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월요일 날 아침에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번 주간은 우리나라에서 지키는 독서주간입니다. 독서는 ‘글 읽기’란 말인데, 그래서 이번 주간에는 전에 보다 더욱 독서에 힘쓰도록 해야 합니다. 책 속에 길이 있어요. 좋은 책은 우리에게 좋은 길로 인도하지만, 나쁜 책은 우리를 나쁜 길로 인도해요. 그러기에 좋은 책을 골라서 많이 읽어야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미국의 링컨 대통령 알지요? (아이들 모두 예) 미국 대통령 48명 중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손꼽히는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있어요. 그런데 놀라운 일은 어렸을 때 너무 가난해서 초등학교도 돈이 없어 2학년도 다 마치지 못했어요”

 그때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더니 말했어요.

“선생님, 우리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까지 돈 내지 않고 공부하고 졸업할 수 있는데, 부자 나라 미국이 그랬다니, 이해할 수 없어요."

그 말에 선생님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말씀하셨습니다.

“아, 지금은 우리도 미국도 잘 살기 때문에 그런 일이 없지만, 어린 링컨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지금부터 약 2백년 전이었어요. 그때는 우리나라도 조선시대 말기여서 가난한 집에서는 돈이 없어 공부도 못했어요. 또 미국도 가난할 때였으므로 학생들은 학기 때마다 학교에 정해진 돈을 납부해야 했거든요. 옛날에는 나라마다 그런 형편이었음을 알겠지요?”

선생님의 말씀에 아이들이 “예”하고 큰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렇지만 아주 영리한 링컨은 ‘책을 읽을 줄도 모르니 바보가 되겠구나‘ 생각하고, 마음에 굳게 다짐하고 일하는 틈틈이 책을 읽으려고 했으나 집에 읽을 책 하나 없었어요. 그런데 링컨은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주신 성경책이 생각나 샅샅이 찾아서 성경책 읽기 시작했어요. 다른 책이 없으니 성경을 읽고 또 읽었더니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셨다는 것과 예수님이 사람들 죄 때문에 대신 죽으셨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그는 평생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고 섬기기로 굳게 결심하고 기도했어요.

 점점 자라면서 남의 책을 열심히 빌려다 읽었고, 청년이 되어서도 많은 책을 읽고 또 읽어서 많이 배우고 깨달았어요. 그래서 대학을 졸업한 사람처럼 지식과 교양이 풍부해서 나중에는 어려운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고, 국회의원도 되고 마침내 미국 대통령까지 되었어요. 우리도 좋은 책을 열심히 읽으면 링컨처럼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야 해요. 그럼 내일부터 한 주간 동안 날마다 독서 시간을 한 시간 마련할 테니 우선 좋은 동화책을 각자 한 권씩 가져 오기 바랍니다.”

공부시간이 끝났다는 벨소리를 듣고 선생님이 나가시자, 아이들이 서로 얘기합니다.

 

“우리 집엔 안델센 동화집이 있다. 안델센 동화집이 제일이래.”하고 명호가 자랑스럽게 말하자,

영수가 “우리 집엔 '톨스토이 동화집'이 있어. 톨스토이가 더 유명한 사람이래.” 했습니다.

“우리 집엔 한국전래동화집이 있는데, 아주 재미있다. 한국 사람은 한국동화책을 읽어야 하는 거야.”하고 태철이가 우쭐했습니다. 그 말에 뚱보 진우가 일어나 손을 저었습니다.

“야, 모두 그만 둬. 우리 집엔 말이야, 세계 어린이 명작문고가 있는데 모두 백권이야, 백권. 이 백권 속에 너희가 말한 안델센, 톨스토이, 한국동화가 다 들어 있거든.”했습니다.

그때 명호가 일어나 말합니다.

“그럼, 우리 선생님이 들려준 얘기도 그 안에 들어 있어?”하는 말에 진우는 머리를 이리저리 흔듭니다.

“글쎄 말이야, 선생님 얘기 들을 때마다 좋아서 집에 가서 찾아보았지만 아직 찾지 못 했어.”

진우는 아까보다 풀이 죽어 있습니다. 진우의 말에 아이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봅니다.

“그럼, 선생님의 이야기는 어디서 나왔지?”

“어쩌면 선생님이 지어서 하셨는지도 몰라.”

“아니야. 우리가 모르는 동화가 아직도 세상에는 아주 많을 거야.”

아이들이 서로 자기네 동화책을 자랑하는 것을 들으면서 윤하는 그들이 부러웠습니다. 윤하네는 너무 가난해서 학교 교과서를 빼 놓고는 윤하가 읽을 만한 책은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날 저녁 때입니다. 숙제를 마친 윤하는 문득 선생님 말씀이 생각나 책꽂이를 바라봅니다. 아빠와 함께 쓰는 책상의 책꽂이는 너무나 초라합니다. 어려운 아빠의 책 몇 권과 까만 표지로 된 성경이 있고, 그 옆에는 윤하의 공부 책이 꽂혀 있을 뿐입니다.

얼마 전부터 아빠는 친구 따라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친구 되신 분이 성경책을 사서 아빠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빠는 가끔 성경책을 읽으십니다. 그러다 찬송도 부르시면서 눈물도 흘렸습니다. 또 윤하도 모르게 조용하면 기도도 하십니다. 윤하가 밖에서 조용히 방에 들어올 때에도 작은 목소리로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또 며칠 전에 아빠는 윤하더러 어린이교회에 다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윤하는 낯선 곳이나 낯선 사람을 어려워하는 성격 때문에 아직도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모님 말에 순종하는 것이 착하다는 것을 알기에 언젠가는 아버지를 따라 교회에 갈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급한 것은 내일 학교에 가져 갈 동화책입니다.

‘동화책 한 권이라도 사달라고 아빠한테 졸라볼까?’

하지만 집안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윤하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윤하는 그날 밤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오늘부터 한 주간은 책읽기 주간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책 속에는 길이 있다고 하셨다. 나도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좋은 길로 가고 싶지만, 가엽게도 나는 읽을 만한 동화책 하나도 없다. 우리 집이 이렇게 가난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누가 나에게 좋은 동화책 하나 선물했으면 참 좋겠다.

 

이튿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 따라 늦잠을 잔 윤하는 학교에 늦을 세라, 엄마와 아빠가 함께 일찍 일터로 가시며 차려 놓은 아침밥도 먹는 둥 마는 둥 급히 책들을 가방에 챙겨 넣고 학교로 줄달음쳤습니다.

 첫 시간에 공부할 책을 가방에서 꺼내다가 윤하는 그만 놀랐습니다. 아빠의 성경책이 가방 속에 들어있지 않겠어요? 학교 가는 시간이 늦어 서두르다가 그만 아빠의 성경책이 공부 책에 딸려온 모양입니다. 어쩐지 오늘따라 가방이 좀 무겁다는 느낌이 생각납니다.

 셋째 시간은 책 읽기 시간입니다. 아이들은 자랑이나 하듯 가져 온 동화책을 각기 꺼내 놓습니다. 윤하의 짝인 성구는 ‘톰 소야의 모험’이라는 책을 가져왔고, 길 건너 명호는 자랑하던 안델센 동화집 한 권을 가져왔습니다. 윤하는 한 동안 망설이다가 성경책을 책상 위에 슬며시 올려놓았습니다. 이것을 본 성구가 소리쳤습니다.

“선생님. 이윤하는 동화책이 아닌 성경책을 가져왔어요.”하는 말에 아이들이 윤하를 보면서 수군거렸습니다. 윤하는 그만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모두 조용히 하세요. 선생님이 지금 동화책들을 차례로 살펴볼 테니까요.”

 선생님은 맨 앞자리에서부터 아이들이 가져 온 동화책을 이리저리 살펴보시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더니, 마침내 윤하 옆에 섰습니다. 그리고 책상 위에 있는 두터운 성경책을 만져보시더니, 살짝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이윤하, 참 좋은 동화책을 가져 왔어요.”하시더니, 다른 아이들의 책들을 모두 모두 둘러보시고 난 뒤에 단 위로 올라가셨습니다.

“여러분이 가져 온 책들은 모두 좋은 동화책들입니다. 이윤하만 성경책을 가져왔는데 이 책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으로 가장 훌륭하고 재미있는 얘기가 가득한 책입니다.”

선생님은 말씀 하신 후, 윤하를 보며 살짝 웃으셨습니다. 윤하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습니다.

“여러분, 이제 책을 펴서 각자 조용히 읽으세요. 옆 사람에게 방해되지 않게 눈으로만 읽으면서 책이 주는 뜻을 마음에 새기면서 읽어야 합니다. 우선 30분 동안 읽은 후에는 읽은 소감쓰기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자 이제부터 읽기 시작!”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모두 조용히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조용한 가운데 가끔 책장을 넘기는 작은 소리만 들려옵니다.

 윤하는 성경책을 처음부터 폈지만 무슨 말인지 어려워서 여기 조금, 저기 조금 읽으면서 책장만 넘기며 답답해 할 때 선생님이 다가오셔서 성경책을 만지더니 한 곳을 펴 주셨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킨 후 단으로 올라가시자, 윤하는 그곳을 읽었습니다.

 

 다윗이라는 소년이 키가 크고 힘이 센 장수를 물멧돌을 힘차게 던져 이마를 맞춰 쓰러지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얼마 전에 들려주셨던 이야기였습니다.                               

아, 그럼 선생님도 성경책에서 이 이야기를 읽으셨나봐’

그러고 보니 그동안 선생님이 들려주신 재미있는 이야기가 모두 이 성경에 숨어 있는 듯 했습니다.

보물찾기처럼 선생님은 성경 속에서 몇 개를 찾아서 들려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집에도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고 훌륭한 동화책이 있구나! 이제 나도 열심히 읽어 숨어 있는 동화를 보물처럼 찾아서 읽어야겠다!’하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윤하는 신기한 보물광산을 발견한 듯 몹시 기뻤습니다. 그래서 눈을 들어 선생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교단 위 의자에 앉아서 무슨 책을 열심히 읽고 계시던 선생님은 아이들을 둘러보시다 윤하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선생님은 윤하의 맑은 눈동자에서 한 없이 솟구치는 희망과 기쁨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윤하가 방금 읽은 다윗 소년의 희망과 기쁨과 용기였는지 모릅니다.

오늘 따라 선생님의 눈동자는 한없이 맑고 희망에 넘쳤습니다. 그것은 선생님도 윤하가 읽고 있는 똑같은 책을 읽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교실 창밖으로 시월의 가을 하늘이 유난히 높고 푸르고 맑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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