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기도

유소솔 2022. 9. 8. 00:06

 

 

                                                     - 김현승(1913-1975)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기름진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1956년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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