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223

사진기 하나 있다면

사진기 하나 있다면 봄 뜰에 함박 웃는 개나리꽃 찰칵 찍어두었다가 엄마한테 야단맞고 우는 아이에게 개나리꽃 환한 웃음 보여주고 싶다. 바구니 하나 있다면 봄 언덕에 곱게 핀 진달래꽃 곱게 접어두었다가 겨우내 추워 떠는 아이들에게 진달래꽃 예쁜 옷 지어주고 싶다. 녹음기 하나 있다면 봄 하늘에 지저귀는 종달새 노래 몰래 담아두었다가 몸이 성치 못한 아이들에게 종달새 희망찬 노래 들려주고 싶다. - 동아일보신춘문예(1966) 최종심 4편 중에 오른 시 - 월간문학공간 당선 동시(1990)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시평) 이 시는 모두 세 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 연에서는 사진기로 개나리를 찍어두었다가 우는 아이에게 개나리 환한 웃음을 선사하고 싶..

동시 2020.11.20

겨울 우체통

흰 눈이 쌓인다 빨강 우체통 위에 흰 사연이 쌓인다 우체통 안으로 갈 곳이 서로 다르고 받는 사람이 서로 달라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 비가 내리고 눈보라가 휘날려도 편지는 언제나 옷깃에 날개를 단다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기쁨에. - 월간문학(2005)에 게재 - 소솔 제3동시집 수록(2018) --------------------------------------------------- (시평) 맑고 포근한 겨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네요. 흰 눈이 소복소복 쌓이는 빨강우체통, 그 안으로 흰 사연이 쌓이는 정경이 눈송이처럼 따스합니다. 기다리는 사람에,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기쁨이 있어 빨강 우체통은 그렇게 추운 겨울도 아랑곳 않고 길가에 서 있다는 생각에 우리 맘이 왠지 폭신해 집니다. 이 시를 읽으..

동시 2020.11.20

미술시간

하얀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린다 하늘엔 파란색 칠하고 바다엔 푸른색 칠하고 이를 어쩌나 하늘과 바다가 붙어버렸다. 노란 돛단배는 어디에다 그리지? - 소솔 제3동시집 수록(2018) ------------------------------------------------------------------------------ 도화지에 그려진 바다와 하늘의 맞닿음, 갈라지고 떨어지기보다는 하나 되는 삶의 이치, 그곳엔 누구도 들어갈 수 없을 만치 빈 공간이 허용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이게 속맛입니다. 돛단배 하나 그릴 자리가 없더라도 바다와 하늘이 맞닿으니 어쩐지 든든하고 넉넉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따뜻한 게 아닐까요? (김완기 원로 아동문학가)

동시 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