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경직 목사(1902-2000)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에 나는 신의주 제2교회를 봉사하였다.
우연히 어느 불쌍한 여자 아이를 알게 되었는데, 그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는 행방불명이 된 고아였다. 그래서 교회에서 그 아이를 돕도록 했다.
알고 보니, 당시 신의주에서 이런 고아들이 많이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을 불쌍히 여겨 교회에서 집을 마련하여 고아원이 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당시 신의주제일교회 안승선 장로가 자진하여 도우려 왔다.
그분은 신의주에서 첫 고아원을 교회에서 설립했다는 소식에 감동 받아 무보수로
모금과 총무의 일을 맡아 열심히 수고하여 많은 고아들이 큰 혜택을 받았다.
그가 신의주로 오기 전 농촌에서 살 때의 일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자기 옥수수 밭을 지나가는데 밭 속에서 사람 소리가 났다.
이상해서 옥수수 밭을 헤치고 들어가니 한 여인이 열 두어 살 난 아들과 같이 옥수
수를 따서 광주리에 담더라고 한다.
그는 그들의 가난함을 알고 불상한 마음으로 자기가 주인임을 알린 후, 오히려
앞장서서 굵은 옥수수만을 따서 그들의 광주리에 가득히 넣어 보내면서, 그 아들에게
“잘 먹고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부탁까지 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나 안 장로가 신의주로 이사 와서 살게 되었다.
그의 아들이 ‘안국상회‘라는 작은 전기부품 장사를 했는데, 겨우 먹고 살 정도였다.
그런데 그때 압록강을 막아 수풍 땜을 만드는 큰 회사에서 필요한 전기제품을 그의 상
점에서 단골로 사서 가져가는 바람에 사업이 날로 커지고 잘 되었다.
그 후 알고 보니, 그 회사 구매책임자가 한국인인데, 오래 전 그의 아버지의 밭에서 옥
수수를 따던 소년이 바르게 성장하여 은혜를 보답한 것이었다고 한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