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력을 넘기다 보면, 어느 순간 한 해의 한복판에 서 있음을 발견합니다.
다음 주일은 맥추감사주일로, 우리를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하는 날입니다.
이 자리까지 우리를 이끌어 오신 손길을 조용히 돌아보는 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정착한 가나안에서 첫 이삭을 거두어 하나님께 올려 드렸는데, 이는 풍요로운 수확에 대한 단순한 기쁨의 표현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결실의 뿌리가 자신들에게 있지 않다는 겸허한 고백이었습니다.
감사는 언제나 그런 고백에서 시작되며, 내가 이루었다는 자랑보다는 내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인식에서 감사는 피어납니다.
지난 반년을 돌아보면, 기쁨의 결실과 함께 아무것도 없는 밭도 있었지요.
일이 뜻대로 이루어진 때도 있었지만, 기도에도 응답이 없던 날들도 있었지요.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손에 잡히지 않아 마음 아팠던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삶은 늘 우리가 그린 지도대로 펼쳐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감사는 모든 일이 잘 되었다고 말하는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감사는 이해되지 않는 순간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믿는 신앙입니다.
철학자 폴 리쾨르는 ‘인간의 삶을 이야기’로 보았는데, 한 장면만으로는 전체이야기를 알 수 없고, 고통스러운 단락도 긴 서사 안에서는 의미를 얻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넘어지지 않은 것은 우리가 강해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붙들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지친 날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알아채지 못한 은혜가 이미 우리를 감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한 해의 후반기를 바라봅니다.
어떤 일을 만나게 될지, 우리의 계획이 어떻게 될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를 아는 지식이 아니라, 미래를 붙들고 계신 분을 아는 믿음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맥추감사주일은 한 해의 한 복판에 놓인 쉼표 같은 날입니다.
지나온 전반기를 감사로 하나님께 드리고, 후반기를 맡겨 드리는 날입니다.
이루어진 것에 감사하고,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믿음으로 감사와 소망으로 맞는 맥추감사주일이 되시기 바랍니다. (임채영 목사. 서부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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