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의 감동 이야기

박목월 시인이 신앙인이 된 사연

유소솔 2026. 7. 17. 00:00

 

 

 

 

 

1953년 6. 25 전쟁이 끝나갈 무렵 박목월 시인이 중년이었을 때였다.

그는 어쩌다 제자 여대생과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을 버리고 종적을 감추었다.

그는 가정 명예,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라는 자리도 버리고 빈손으로 홀연히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자취를 감췄는데, 마 간의 시간이 지난 가을에 목월 아내는 그가 제주도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인은 남편을 찾아 제주도주소를 따라 묻고 또 물으며 무척 고생하면서 만났다.

늦가을인데도 두 사람은 허름한 방에서 여름옷들을 입고 있었다.

부인은 그들의 살아가는 궁핍한 모습을 본 후, 두 사람에게 힘들고 어렵지 않으냐며 돈 봉와 함께 미리 서울에서 각각 산 겨울 옷을 내밀고 아내는 서울로 올라갔다.

 

목월과 그 여인은 부인의 한마디 질책 없는 사랑에 너무 놀랐고 감동하며, 동시에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그들은 사랑을 끝내고 헤어지기로 결심하였다.

목월은 서울로 떠나기 전날 밤를 지어 사랑하는 여인에게 이별의 선물로 주었다.

그  가 바로 유명한 가곡 “이별의 노래”인데, 서울대 김성태 교수가 작곡했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 ~ 아 ~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 낮이 끝나면 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 ~ 아 ~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 두고 홀로 울리라  아 ~ 아 ~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두 사람이 헤어진 후 귀가박 시인은 아내에게 진심으로 말했다.

‘나 이제부터 당신을 따라 교회에 나가 새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하고, 주일교회에 나가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몇 년 후 장로로 추대되었는데 1년 만에 으로 소천하여 교회의 장례로 정중하게 치뤘다.

교회에서는 사랑용서로 남편을 감화시켜 신앙인장로가 되게 한 공로로 부인 류익순 권사를 남편 대신 서울초동교회 장로가 되게 하여 교회를 잘 섬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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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박목월 시인의 장남 박동규 교수(서울대 명예/ 교회장로)가 밝힌 사실로.

그가 잊을 수 없는 신앙 어머니(류익순 장로)회고하면서 쓴 글의 하나였음을 여기 밝힌다(소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