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동주(1917-1945)
순이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인다.
방 안을 돌아다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정이 하얗다.
방 안에까지 눈이 나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훌훌히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줄 말이 있던 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쪼고만 발자욱을 눈이 자꾸 내려 덮어 따라 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국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욱을 찾아 나서면
일 년 열두 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 1941년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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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시에 가끔 등장하는 순이(順伊)라는 여성은 시에서 엿보인 것처럼
마음속에만 그리는 사랑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정처없이 떠나므로 헤어진
슬픔을 내리는 눈으로 표현해 눈물겹다. 1941년 그의 나이 24세 때였다.(소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