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아침의 단상

희망을 버리는 것은 불신앙이다

유소솔 2022. 6. 19. 00:06

 

누군가 말하기를 “희망희망을 갖는 사람에게만 존재한다."고 했다.

"희망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실제로 희망은 없다는 것이.

 

중국 근대 문학의 개척자인 작가 루쉰(1881-1936)도 이렇게 말했다.

희망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고 했다.

희망의 길은 주어지는 것이기보다 만들어 가는 것이다. '희망의 길'은 보이지 않는 길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믿음의 길이다.

 

미래를 의미하는 라틴어에 두 가지 단어가 있다푸투룸(futurum)아드벤투스(adventus)이다.

‘푸투룸은 현재의 원인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미래로서,  현재가 품고 있고 현재가 낳을 ‘예측 가능한 미래’이다.

반면 아드벤투스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로서 시공 밖에서 오는 ‘뜻밖의 미래’이다.

 

이 시대 최고의 신학자로 평가받는 위르겐 몰트만(J. Moltmann)은   <희망의 신학>에서 ‘낙관’과 ‘희망’을 구분한다.

모두 긍정적인 개념이지만 이 둘은 서로 다르다. ‘낙관은 과거나 현재에 잠재되어 있다가 미래에 나타나는 좋은 것이다.

낙관과 연결되어 있는 미래몰트만푸투룸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를 살펴 미래에 나타날 가능성을 추정하여 긍정적인 전망을 갖게 될 때 낙관적이 된다. 낙관은 예측 가능한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다.

 

반면,희망”은 외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는 좋은 것과 연관된다.

이것을 몰트만아드벤투스라고 부른다. 이는 새로운 것을 선물로 받는다는 의미가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선한 것을 받으리라는 기대, 그것이 희망이다. 희망은 뜻밖의 미래를 응시하는 것이다.

 

지금의 고통이 언젠가는 사라지리라는 희망, 누군가 어두움 속에서 내게 손을 뻗어 주리라는 희망,

내일도 내게생명이 주어지리라는 희망, 이런 희망이 있어야 사람은 고단한 삶을 감당해 낼 수 있다.

그런 희망을 가지지 않는 것은 이다. 빛을 보고도 눈을 감아 버리는 것은 자신을 어둠의 감옥 속에 가두어 버리는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희망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뜻밖의 미래이다. 보이지 않는 희망을 보는 것이 신앙이다. 희망을 버리는 것은 죄악이요 불신앙이다. (차준희 목사. 한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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