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토끼 경제, 거북이 정치

유소솔 2021. 2. 3. 23:05

며칠 전, 전북 전주의 K목사에게 손님이 찾아 왔다. 그는 소년시절 고향에서 주일학교를 잘 다녔다고 하면서, 이번 총선에 이 지역에서 출마했으니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며, 흰봉투를 내 놓았다. 겉봉에는 감사헌금이라 써 있었고, 뒷면에는 자기 이름이 써 있었다고 한다.

  K목사는 이 돈은 감사헌금이 아니기에 받을 수 없다며 돌려주려고 하자, 그는 감사헌금을 왜 아니라고 하는가? 목사를 이상하게 여겼다. K목사가 이것은 청탁이지 감사헌금이 될 수 없다고 하자, 그는 인정을 무시한다고 말하고, 자기를 기억해 달라며 봉투를 두고 그냥 달아났다.

 

  K목사는 그 돈을 선거관리위원회로 가져갔다. 선거철만 되면 이런 일을 한 두 번 겪은 일이기에 그 때마다 봉투를 돌려보내거나, 놓고 달아나면 선거관리위원회로 가져가 주었으므로 이번에도 그렇게 했는데, 일주일 후 선거관리위원회에서 포상금을 받으러 오라고 연락이 왔단다. 무슨 포상금이냐고 물으니, 부정선거를 신고하면 금액의 50배를 신고자에게 포상한다는 것이란다. 전에는 그런 제도가 없었는데 이제 바뀐 모양이다. 그는 이런 포상을 바라고 신고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좀 면구스러웠으나 일단 가서 받아보니 일금 5백만 원으로 큰돈이었다. K목사는 그 돈을 즉시 장애인의 집 에 기증했다면서 국민들 의식이 변하지 않는 한 정치 선진화는 요원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요즘은 4. 15 총선의 계절이다. 우리는 그동안 15번 총선을 치루는 동안 수많은 부정과 돈 선거로 얼룩진 오염된 민주주의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출마 한번으로 가산이 탕진되거나, 그로 인해 파탄된 많은 가정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아무리 경륜 있고, 애국애족심이 불타는 인사라 할지라도 돈이 없으면 총선 출마를 꿈도 못 꾸는 현실이다. 또 많은 돈을 투자하여 금배지를 단 다음에는 투자한 본전 이상을 찾기 위해 각종 경제비리에 연루되어, 의원직을 잃거나 수감생활을 하는 선량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우리나라는 70년 이후 계속 경제가 성장이 되어 세계 14대 무역국가가 되었고, GNP가 2만불을 넘고, 3만 불을 향해 가고 있다. 마치 토끼가 뛰어가듯 우리 경제는 토끼걸음이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수준은 마치 거북이가 기어가듯 거북이걸음이다. 정권이 아무리 바뀌어도 사람 얼굴만 다르지, 정치지도자들의 행보는 엇비슷하다. 정치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오직 승리에만 있고, 또  정권의 획득에 만 있는 것인가. 정치와 경제의 불균형과 부조화야말로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최대의 장애물이 아니고 무엇이랴.

 

선진국이란 타이틀은 경제만으로 되지 않고, 정치가 경제수준과 병행하면서 그만큼 윤리수준도 높아야 한다. 국민들이 흘린 땀방울을 통해 경제가 성장되면, 이 성장의 열매가 국민들에게 고르게 분배될 수 있도록 정치가 공정화 되어야 한다. 그러나 외국의 언론이 본 우리의 현실은 경제는 선진국형인데, 정치는 아직도 후진국형이라는 지적이다. 우리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총선은 그 어느 때보다 선관위의 칼날이 시퍼렇다. 그래서 전보다 부정선거 사범이 많이 줄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아직도 은밀히 돈이 건네지고, 음식 접대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과 대접받는 것을 당연시하고, 또 받았으니 찍어줘야 한다는 인정(?)이 살아있는 한 우리 민주주의의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전주의 K목사처럼, 이제 우리 모두 선거에는 인정을 접고, 평소에 사랑을 베풀면서 공의를 실천하는 민주주의의 시민이 걷는 대도大道로 힘차게 당당하게 걸어가야만 한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날이 언제쯤일까?  

                                                                             - 주간 크리스천한국신문(200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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