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자율신경마비와 한국교회

유소솔 2021. 2. 10. 21:40

몇 달 전, 전남 광주의 어느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

10여 년이 지나는 동안 개척자의 기도와 노력 끝에 땅을 사서 교회당도 아담하게 건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10여 명만이 모여 예배드릴 정도로 부흥이 되지 않은 현실에 그 이유를 여러 가지로 살펴보았다.

 평소 사명감이 높아 철야기도도 하고 방문전도도 끊임없이 해서 한 때는 80여명까지 모였다고 한다. 그러자 몇 년 전부터 건너편에 있는 장로교회의 목사가 ‘감리교회와 성결교회는 이단이다’고 신자들에게 광고해서, 그때부터 전도도 안 되고, 전도한 신자들 상당수를 자기 교회로 빼가거나 낙심시켜 주저앉혔다며 분노하는 담임목사는 퍽 지쳐 있었다. 필자가 기가 막혀 따지러 장로교회에 찾아갔더니 모든 문이 잠겨져 있어 돌아서야만 했다. 

 

 알고 보니 그 교회의 목사는 칼빈의 절대예정설을 신봉하여 인간의 자유의지를 말하는 감리교회와 성결교회를 이단으로 정죄한다는 것이다. 예정론과 자유의지는 미국에서 100여년 전 세계 최고의 양측 신학자들이 쟁쟁한 토론을 거친 후, 그 차이는 머리털 하나 정도라고 확인하고, 서로 인정하자고 합의했음을 왜 모르는 걸까? 

 필자는 이를 통해 요즘 잘못된 이단정죄로 한국교회가 몸살을 앓고 있는 현실을 실감하면서, 목사의 신학과 인격적 미성숙함이 신자들의 바른 성장을 막고 상처를 입히며 교회성장을 저해하고 있음을 통감한 적이 있다.

 

지금 한국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자율신경이 마비된 것 같다.

장로교회 간판을 붙인 교단이 250여 개를 비롯하여 20년 간 보수교단의 연합체로 성장한 한기총이 두 쪽이 나 서로 사법부에 고발하고 이단으로 정죄하는 사태는 더욱 그렇다. 자기의 주장과 다르면 자기 이익을 위해 상대를 이단으로 정죄하는 태도는 교회의 자율신경의 마비로 중환자의 모습이다.

 초대교회 때부터 성도들을 유혹한 영지주의(Gnosticism)를 사도들과 교부들에 의해 적절히 차단함으로 참 복음은 거대한 구원의 강물을 따라 세계로 흘러갔다. 그러나 중세교회가 교황권과 마리아 숭배론 등 비 성경적 각종 제도와 교리를 만들어 강행하자, 마르틴 루터를 비롯한 개혁가들이 중세교회의 타락과 자율신경의 마비를 비난했다. 그러자 교황의 이름으로 개혁자들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박해하므로 개혁자들은 프로테스단트(개신교)로 분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로마카토릭교회는 현대에 이르러 과거 자기들의 독선을 뉘우치고, 오랫동안 이단으로 매도한 개신교를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헤어진 형제들‘로 규정하고 루터를 사면한 후, 개신교와 대화를 시도했다. 그리고 지난 1999년 루터교회와 우선적으로 교리적인 ’칭의론‘에 합의했다. 즉 구원은 선행을 통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은총과 믿음에 의해 죄에서 해방되고 의롭게 되지만, 성령의 능력에 의해 선행의 열매가 맺힌다고 했다. 이는 카토릭의 항복이나 다름아니다.

 또한 카토릭은 지난 2006년 서울에서 개최된 제19차 세계감리교회 대회에서 로마교황청 사절단이 찾아와 칭의론에 대한 감리교에 대해 루터교와 같은 내용의 교리적 합의를 도출했다. 그리하여 감리교회는 개신교회는 물론 로마카토릭까지 인정하는 교회가 되었다.

 

감리교회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J. Wesley)는 믿음으로 인한 구원과 신앙적 실천을 선행은총(Prevenient Grace)이라고 해석했다. 즉 인간은 의인화(Justification)로 말미암아 죄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의해 비로소 회복되며, 성화(Sanctification)로 말미암아 죄의 뿌리와 힘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칼빈의 예정론과 웨슬리의 선행은총론은 구원론에 큰 차이가 없으며, 서로 보완하므로 개신교의 구원론을 더욱 완전하고 확증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예정론을 절대시하는 몇 몇 군소 장로교회가 자기의 교리적 울타리에 스스로 갇혀 자기와 다른 감리교회나 웨슬리의 신학적 유산을 받은 성결교회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신자들에게 교제의 단절을 강요하는 목사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개탄스럽다. 일제강점기에서도 한국교회는 장,감,성의 트리오 구도로 민족복음화를 위해 서로 돕고 힘쓰다가 큰 박해를 당하지 않았던가.

                                                                                                                                                        한국교회의 최대의 문제는 계속되는 분열상이다.                                                       

물론 개신교의 특징은 성경의 자유해석이므로 경우에 따라 분리 될 수도 있지만, 그 명분은 교리의 해석적 문제에 국한되어야 한다. 그러나 해방 직후 분열된 몇 교단만 제외하면, 대개가 감투나 이권에 의한 것이었으며, 자기와 다른 상대에 대한 이단정죄의 남발도 분열에 한 몫을 한 것이어서 수치스럽기가 한이 없다.

 교회는 복음의 순수성과 정통성을 보전하기 위해 이단은 반드시 경계하고 단절해야 한다. 그러나 그 규정은 기독교 본연교리의 틀을 벗어난 것에 국한돼야 한다. 즉 삼위일체의 부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인, 자기를 예수로 자처하거나 예수 재림의 날짜까지 선포하는 등 전통적 교회의 교리를 부인하고 새로운 교리 주장은 2천년 기독교 역사 속에 나타난 숱한 이단자들의 모습이었으며, 그들은 이미 역사 속에서 소멸 되고 말았다.

 

 2천년 전 그리스도에게 가장 반대하고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집단은 누구일까? 그들은 가장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자부한 유대교 바리새인들이었다. 주님이 그들을 볼 때 겉은 양 같으나 속은 이리와 같아 그들에게 추상 같은 회개를 촉구했던 것이다.

 무분별한 이단정죄로 현대판 바리새인이 된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이여!

속히 회개하므로 자율신경의 마비에서 성령의 치유 받아 서로 돕고 힘을 모아 민족의 섬김과 구원과 세계의 선교를 향해 총진군하기를 바란다. 지금 사회는 교회가 교회답지 않아 멸시하려는 현상인데, 언제까지 그런 정신 빠진 짓만 하려고 하는가?

                                                                                                               -한국크리스천신문(20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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