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 값과 인간의 가치

유소솔 2021. 2. 13. 23:16

 

 

옛날 어떤 농사꾼이 여름에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땀을 흘리며 일을 했다. 농사꾼만 아니라 그의 아내와 아이들까지 조금도 쉬지 못하고 하루 종일 일을 해야만 겨우 먹고 살 수 있었다. 고달프고 고된 삶이었지만 별 수 없었다.

그런데 그의 집에서 키우는 개는 배고프면 밥을 먹고, 하루 종일 마당에 있는 나무그늘을 찾아 입을 헤 벌리고 낮잠을 잤다. 짐을 잔뜩 지고 땀을 뻘뻘 흘리며 집에 들어선 농사꾼은 잠을 자는 개의 모습을 보고, 이렇게 내 뱉었다. “개 팔자가 나보다 낫다. 상팔자로구나.”

 

지난 추석은 여느 때와는 달리 연휴가 5일간 계속 되었다. 연휴가 길면, 대개의 상인들은 장사를 하지 못해서 울상이지만, 오히려 연휴가 길어 크게 돈을 버는 장사도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소위 ‘애견 호텔‘이다. 연휴 기간에 온 가족이 고향이나 여행을 가느라 집을 비우는 사이, 누가 돌봐줄 손길이 없어 돈을 주어 개나 고양이를 ’애견 호텔‘에 투숙시켜 잘 보살피게 한다는 것이다.

 2층으로 된 ‘애견 호텔’에 투숙한 견공(犬公)들은 아침과 저녁으로 식사는 물론 간식까지 제공받고, 그네나 미끄럼틀, 헬스기구 등이 완비된 놀이방에서 전문 도그씨터(Dog-Sitter)의 보살핌을 받는다고 하니. 웬만한 사람들보다 훨씬 낫다.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개의 건강에 이상이 오면, 대기하고 있는 수의사의 진료까지 받는 등 하루 3만원의 투숙료로 호강스러운 휴가를 보낸다. 인간의 호텔에 VIP 룸이 있듯이 `애견 호텔‘에도 VIP 룸이 있어 하루 5만원의 투숙료로 특별 서비스가 다양하게 제공된다고 한다.

 

경제적 여유가 있고 애견의 취미가 있어 자기의 개를 호화스럽게 치장을 하고, 비싼 비용으로 미장원에 가고 목욕을 시키다가, 또 애견호텔에 투숙을 시키는 것은 그의 자유이기에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도가 지나치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국민들 대다수의 상식이다.

 오늘의 세상에서 하루 한 끼마저 먹지 못해 굶어죽어 가는 아이들이 하루에도 수십만 명이라는 아프리카 난민들의 보도를 자주 본다. 한반도 북녘의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처참히 죽어가는 모습의 사진들, 아니 점심시간이면 수도꼭지의 물로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결식아동들이 우리나라에도 3십만 명이나 된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견주의자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어쩌면 저렇게 태연할 수 있을까, 싶다.

 

도대체 인간의 존엄성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유일한 영성을 지닌 인간의 가치가 개의 가치만도 못하게 취급되는 오늘의 세태는 분명 잘못되고도 한참이나 잘못 되어 있다고 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한술 더 떠서, 요즘의 애견주의자들은 자기가 기르는 개를 잘 보호한다는 애완동물의 차원을 넘어 평생을 함께 한다는 반려 차원으로 격상시키고 있음을 본다. 그래서 아예 ‘반려동물’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반려’는 배필(에제르)라는 히브리어로, 하나님께서 오직 인간의 부부에게만 허락하신 숭고한 단어인데, 이런 단어를 한낱 동물에게 붙인다는 것 자체가 인간성의 추락과 개라는 동물성이 한 단계 상승하여 인간과 동급에 처한 다면 이는 인간 타락의 한 모습일 수 있다.

 

개를 학대하는 것은 나쁘다. 모든 생물의 생명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기에 함부로 학대하거나 죽이는 것은 죄가 될 수 있다. 그것이 생명윤리의식이다. 그렇지만 어떤 동물이라도 인간의 존엄성과 비교할 수는 없다. 모든 생명체 중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동물과 달리 독특한 창조성과 윤리성, 정치성과 종교성이 있어, 문화와 문명을 나날이 발전시켜 오늘에까지 왔다. 

 

 사람마다 각기 취미생활은 권장할만하다, 외로운 분들은 개를 통해 위로 받는다고 한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개를 인간 이상으로 사랑하는 모습은 바람직한 일이 아닌 중독현상이 아닐까 싶다. 개처럼 살갑게 굴지는 않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지닌 같은 인간으로서, 인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개처럼 이웃에게 베푼다면 얼마나 좋을까.

 애견주의자들은 말한다. ‘사람은 배신해도 개는 배신하지 않는다’고. 그런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자기 이해(利害)를 따른 극단적 이기주의자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진정한 이웃 사랑을 통해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뜻이며, 우리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피차 유지하고 상승시킬 수 있는 최고의 자존심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 주간 크리스천한국신문(2004.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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