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에펠탑과 십자가

유소솔 2021. 4. 8. 12:32

 

                                             

 

흉물이던 에펠탑이 프랑스의 상징이 된 것처럼 십자가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아니다. 어쩌면 에펠탑의 과정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많이 닮은 것 같다.

십자가는 고대 로마제국의 사형수를 매달아 죽이는 잔인한 흉물이었다.

서기 30년 경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 죽으셨는데. 그는 빌라도 재판관이 선언한 죄 없는 죄인이었다.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하나님의 어린양’이었다.

 

사람들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흉물처럼 싫어했으나 주님의 예언처럼

죽은지 사흘 새벽에 무덤을 박차고 부활하셔서 13번이나 제자들을 만나주셨고, 40일만에 승천하시므로

직접 보거니 만난 자들이 예수는 메시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확인되어 부활의 소문이 퍼져갔다.

그러나 진리보다 자기들의 율법적 기득권을 목숨처럼 여긴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당황해 사람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예수의 시신을 제자들이 도둑질했다‘는 거짓말을 퍼뜨리면서  도리어 성도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박해를 피해 흩어진 성도들이 가는 곳마다 박해 속에서 전도하고 교회를 세워 초대교회의 시대를 열었다.

 

처음 에펠탑의 흉물을 싫어하던 파리의 시민들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세운 교회는 많은 박해와 고난, 그리고 순교자들이 속출했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유대교가 기독교를 이단으로 선언하였기에 유대인의 박해는 당연했다.

첫 순교자 스테반은 돌로, 첫 제자 야고보는 참수斬首를 당해 신자들은 각기 흩어져야만 했다.

또 하나는, 당시 유대와 유럽을 지배한 로마제국이 믿는 신神이 달랐기 때문이다. 12사도들도 각기 흩어져 이방지역에 가서 전도하다 순교했고, 사도 바울도 로마에서 참수 당했으며,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형을 자청하므로, 모두 순교자의 반열에 섰다. 사도들의 후계자 교부들도 거의 순교했다.  2백여 년 간 고난과 순교자의 피가 계속 강물처럼 흘렀다.

 

로마의 지하묘지의 굴에서 숨어 예배드리다 체포된 성도들은 로마의 대형 경기장에서 관중들의 잔인한 놀잇감으로 선택된다. 시간이 되면 경기장 밑 감옥 문이 열리며 백 여 명, 또는 2백여 명의 성도들이 경건한 찬송을 부르며 나타난다.

그들이 경기장 한 복판에 서면, 황제가 예수에 대한 배신을 마지막으로 권유하지만 누구하나 응답이 없자,

황제가 오른 손을 번쩍 드는 순간 반대쪽 철창문이 열리며 굶주린 사자 떼가 나타난다.

이 극적인 상황을 본 관중들이 먼저 흥분하여 마구 소리 지르며 온통 난리 법석을 떨며 경기장이 이수라장이 되었으나

그럴수록 성도들은 서로 손을 붙잡고, 더욱 마음을 합해 큰 소리로 주님께 찬양하는 음성이 높아진다.

믿음의 용기. 구원의 확신, 십자가의 영성에 사로 잡혀 급하게 달려오는 죽음도 무섭지 않았다.

왜 예수의 신자들은 이런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야만 했을까, 하나님의 뜻인가?

 

그 모습을 본 경박한 로마관중들은 흥분된 놀잇감으로 즐기는 잔인성을 보였다. 스릴이 있는 최고의 볼거리였다.

그러나 의식 있는 관중들은 달랐다. 크게 놀랐다. 죽음 앞에서도 당당한 성도들의 생명신앙을 보고 경의를 표했다.

마침내 의식 있는 시민들은 마음에 생명의 주를 영접하고, 비밀 안내자를 따라 죽음을 무릅쓰고 지하동굴(카타콤)에서 예배하는 성도들의 모임에 합류한다. 그러다 체포된 로마시민들도, 학자나, 고관이나 군인들도 관중들의 잔인한 놀잇감이 되어 순교자가 되었다. 이런 형태가 거의 250년 간 계속 되면서 로마에는 순교자들 시체가 산처럼 쌓여갔다.

 

마침내 313년에 로마의 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 칙령’이 발표된다. 내용은 기독교 박해를 중지하라는 것. 

그래서 지하의 교회가 지상으로 올라온다. 콘스탄티누스는 진실한 신앙의 어머니 헤레나의 기도로 키운 아들이었다.

그로부터 70년 후, 기독교를 국교로 선언하는 획기적 새 역사가 선포되어, 로마제국 시민은 물론 모든 식민지 백성들도 의무적으로 기독교 신자가 돼야 했다. 이것이 역사에서 보여준 십자가 부활신앙의 한 모습이었다.

에펠탑처럼 흉물이던 십자가가 보석처럼 빛나는 면류관이 된 것이다

 

그럼 십자가의 영성靈性은 무엇일까?

우리가 주와 함께 죽을 때 주와 함께 부활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십자가를 볼 때마다 주를 위해 죽고, 주와 함께 살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한다.

성도의 삶은 더 낮아져야 한다. 더 정직해야 한다. 더 감사해야 한다. 더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더욱 섬겨야 한다. 주를 섬기듯 남을 섬겨야 한다.

오해를 받고, 박해를 받아도, 그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해야 한다.

죽어서야 비로소 생명이 싹 트고 많은 열매 맺는 밀알처럼,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비로소 찾아 온 부활의 생명! 이 십자가의 영성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 십자가의 영성은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최고의 신비이고 생명이고 축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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