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어느 골게터의 휴먼 드라머

유소솔 2021. 2. 26. 22:58

 

지난 6월은 2002 한일월드컵 때문에 우리나라는 온 국민의 환호와 열광 속에서 한없이 들뜬 한마당의 시간이었다.

태극전사들이 출전할 때마다 전국의 운동장은 물론 광장이나 넓은 거리는 온통 붉은 유니폼의 물결로 뒤덮였고,

사람들마다 기쁨과 감격, 그리고 민족적 자존감으로 가득 찼다. 역사적으로 8. 15 광복 이후, 이런 환호와 감격이 없었으므로 당연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번 월드컵 경기에서 세계 랭킹 40위에 불과한 한국팀이 상위에 랭크된 축구 강대국들을 물리치고 4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룩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우승후보인 폴란드와 포르트갈을 물리치고 2승 1무 무패의 성적으로 조 1위로 대망의 16강에 진출했을 뿐 아니라 강호 이탈리아와 스페인마저 물리쳐 4강에 오르는 신화를 이뤄, 아시아 축구 역사상 신기원을 달성했다.

 

이번 한국의 4강 진출은 월드컵 사상 최대의 이변으로 세계의 언론들이 앞 다투어 대서특필을 했다. 그래서 선수와 국민들이 너무 들뜬 탓이었을까. 태극전사는 결승 진출을 위한 독일 전에서 ㅇ: 1으로 분패했고, 터키와의 3, 4위전마저 1점차로 패해 4위에 그쳐 상승행진이 그치고 말았지만, 한국은 종합적으로 기대이상의 목표를 달성하여 온 국민을 크게 고무시켰고 우리도 할 수있다는 자신감을 주었으니, 그 얼마나 흐뭇한 일인가?

 

이번 한국의 축구전은 한편의 드라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와 초조함, 그리고 역전승의 묘미가 가득 차 있었다. 각 가지 사연도 풍성했다. 그 중에서도 관중의 들뜬 마음을 가라않칠 수 있는 사건, 국민들의 심금을 아직도 울리는 한편의 감동적인 아름다운 휴먼 드라마를 국민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의 16강전의 분수령인 대 포르트갈 전 때였다. 포르트갈은 세계 랭킹 5위로, 당대 백억 대의 몸값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즐비한 우승 후보였다. 하지만 한국선수들의 전력으로 볼 때 그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칠 수 있고, 승부가 난다면 1점차 정도로 보는 전문가가 많았다. 예상대로 경기는 전반전을 무승부로 마치고 후반전이 시작됐다.

 양 팀이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중 한국 팀에게 절호의 찬스가 왔다. 미드필더인 박지성 선수가 상대문 전 오른쪽 6미터 전방에서 이영표 선수가 센터링해 준 볼을 오른 발로 받아서 왼쪽 발로 옮김과 동시에 강하게 찼는데, 그 볼이 상대 수비수를 비껴 골키퍼의 가랑이 사이로 빠져나가 그물을 흔들었다. 소위 알까기였다. 이 절묘한 기술에 4만의 관중과 40억의 세계 시청자들이 환호성을 내질렀고, 이를 중계하던 아나운서들은 감격한 목소리로 “박지성! 박지성!”을 계속 외쳤다.

 

단연 박지성 선수는 16강 진출의 영웅이었다. 게임마다 골을 넣은 선수는 그 기쁨을 골 세레모니로 연출한다. 대개는 자신이나 동료와 함께 즐기기도 하지만, 안정환 선수는 결혼반지에 입을 맟춰 아내에게 기쁨을, 최태욱 선수는 경기장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하므로 천하에 그의 신앙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지성 선수는 특이했다. 손가락 하나를 입술에 수직으로 대고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침묵을 하라면서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 것일까. 그는 영광을 누구와 함께 나누려는 것일까.  동료선수들이 달려와 그를 껴안으려 하자, 그는 그들마저 뿌리치고 또 질주했다.

 그는 한국팀의 감독 히딩크를 향하고 있었다. 나중에야 히딩크가 이를 알아차리고 팔을 벌리고 마주 달려왔다. 마침내 박 선수는 히딩크 감독의 품에 안겼다. 서로 하나가 되어 뜨겁게 포옹했다. 이를 본 관중들과 시청자들이 그들을 향해 아낌없이 박수와 찬사를 보냈고, 여성들은 눈물도 보였다.

 

박 선수가 승리의 영광을 왜 히딩크 감독에게 바친 것일까.

월드컵이 열리기 전까지 박지성 선수는 아직 20살짜리 풋내기 무명선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히딩크가 그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주위의 우려를 제치고 과감히 대표선수로 발탁했고, 계속 훈련시킨 결과 오늘의 멋진 영광을 가져 온 것이다. 좋은 스승 밑에 좋은 선수가 있었다.

 

박 선수는 풋내기를 일약 국가대표선수로 발탁해 주신 히딩크의 고마움을 언제나 잊지 않고 있었다. 그 고마움을 승리로 보답하려는 꿈으로 살았는데, 마침내 그 꿈을 스승 히딩크에게 자기의 영광을 바친 것이다. 이는 단지 축구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분명 하나의 휴먼 드라마요, 인간승리였다.

그후 그의 인간 승리의 기록에 감동한 유럽의 유명 프로축구 독일과 영국 프로축구팀에서 20여 년간 활약하여 개인 트로피 19개나 받는 등 세계적인 선수로 이름을 날리다 귀국한 우리 민족의 영웅이기도 했다. 한 개인의 사건을 통해 우리 국민들에게는 물론, 모든 크리스천에게도 자신의 삶과 인격, 그리고 신앙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한국크리스천신문(2002. 7)

(이 글을 올린 동기) 코로나도, 우리 정치도 모두 국민들을 우울하게 하는 것들이어서, 무슨 신나는 일이 없을까? 생각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의 신화를 기록하여 온 국민들에게 기쁨과 감격을 안겨주었던 그 때의 사건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당시 그에 대한 감회를 칼럼으로 발표한 것이 있어, 그때의 감동과 감격을 다시금 되새겨봄으로 온 국민들이 힘과 용기를 지녔으면 합니다.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도 분쟁과 인내의 전략  (0) 2021.04.20
에펠탑과 십자가  (0) 2021.04.08
개 값과 인간의 가치  (0) 2021.02.13
양심의 자유와 국가의 안보  (0) 2021.02.13
자율신경마비와 한국교회  (0) 2021.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