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아침의 단상

강물처럼 세상 향해 흘러가는 교회

유소솔 2021. 6. 13. 00:50

 

최근 한 기독교 신문의 보도입니다.

한국 교회의 마이너스 성장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면서, 

한국교회가 ‘시대와 소통할 때 위기를 벗어나게 될 것’이라는 진단을 내 놓았습니다

 

특히 "한국교회가 지난 120년간의 역사 동안 꾸준한 성장을 해왔지만, 교회의 성장배경에는교회와 사회가 만들어낸 소통과정에 있었다" 고 하면서, "현재 한국교회가 당면한 어려움에는 이 사회와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했습니다.  로버트 존스톤(Robert Johnston)교수의 지적에 교회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현재 교회는 밖으로는 현실 외면의 위험과 안으로는 자기만족의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상자 속에 가둬 버렸으며 그로 인해 참담한 결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새롭게 보기 위해서는 새로운 눈이 필요합니다. 교회 밖에서는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매우 진지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교회는 상자 속에 갇혀 현실을 외면하면서 현실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교회에게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교회가 눈을 막고 귀를 막고 있어서 혹은 너무 일방적인 규범이나 전통에 집착하기 때문에 교회와 사회의 의사소통(communication)이 단절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교회를 ‘세상 밖’이 아닌 ‘세상 속’에 세우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교회를 우리는 ‘세상 속에 있는 교회’라 부릅니다. 따라서 최적의 교회 설립 장소는 절간처럼 인적이 드문 첩첩 산중이 아니라, 온갖 종류의 인간 군상들로 가득한 세상 한복판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세상 밖에 있지 않고 세상 속에 세워져야 합니다. 즉 세상과 더불어 한 공간에서 호흡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가 살아가야 할 장소가 세상이라면언제나 교회는 반드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리스도께서 죄인인 우리를 위해 기꺼이 짊어지신 십자가의 도입니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신 그리스도처럼 우리 역시 그들의 구원을 위해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을 대하는 지금 우리의 자세는 어쩌면 더 낮아져야하는 것이 아닐까요? 

 

생명의 복음은 강요나 협박이나 엄포가 아닌 진실한 겸손의 자세여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을 대적하고 배제하기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방주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위해 교회는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세상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 각오는 교회만 이해할 수 있는 배타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분명 세상이 보기에는 낯선 방식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감동적인 방식이어야 합니다. 

 

소통하기 위하여 우리는 자세를 낮추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낮추신 것처럼 교회도 하나님께로 가는 구원의 문을모든 사람에게 개방하고 누구든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높은 곳을 지향하는 분수가 아니라, 낮은 곳을 향하여 힘차게 흘러가는, 그래서 이르는 곳마다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내는 강물처럼 세상을 향하여 흘러가는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꿈꾸어 봅니다.(임채영 목사. 서부성결겨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