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생일파티

유소솔 2020. 11. 17. 23:16

- 찌르르릉, 찌르르릉

이른 아침부터 핸드폰 소리가 울렸습니다.                                                     

한별이가 화장실에서 세수하다 말고 제 방으로 뛰어갔습니다.

, 한별인데, 누구세요?”

, 지영이야, 박지영. 한별이 넌 생일 없는 거니? 소식이 없게.”

, 내 생일?”

“12 25일이 네 생일이잖아, 아니야?”

그래, 맞아. 내 생일 어떻게 알았지?”

다 아는 수가 있다? 우리 학급수첩에 적혀 있던 걸

그렇구나. 내 생일은 예수님 생일과 같은 날이야.”

그런데 왜 아직 소식이 없니? 파티 말이야.”

, 그건 내일 모래니까 아직 시간 있잖아? 내일쯤 연락 하려고 했지.”

쟤도 참. 파티가 있으면 며칠 전부터 연락을 해야지. 우리도 스케줄이 있단 말이야.”

화가 났는지, 지영이가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한별이는 언짢은 기분으로 다시 세수하러 갔습니다.

 

한별이네가 서울 강북에서 살다가 이곳 강남으로 이사 온 것은 아버지의 직장 때문이었는데, 어느 새 열 달이나 지났습니다. 같은 서울인데도 강남에는 강북보다 유별난 풍습이 많습니다. 그 중 한 가지가 어린이 생일파티입니다.

이곳 학교에 전학을 온지 일주일 만에 한별이는 한 반 지영이의 생일파티에 초청 받았습니다. 그것도 학교에서가 아니라, 사흘 전 이른 아침에 핸드폰으로 온 것입니다.

난생 처음 친구의 생일파티에 초청 받은 한별이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몰라 엄마에게 말씀 드렸더니, 엄마도 강남의 풍습을 몰라 아파트 옆집으로 물으러 가셨습니다.

그날 저녁, 한별이는 엄마가 백화점에서 사다주신 선물을 들고 지영이네 아파트를 찾았습니다. 초등학교를 둘러싸고 높고 낮은 같은 아파트단지여서 몇 동 몇 호만 알면 금방 찾을 수 있습니다.

지영이 집에는 낯이 익은 한 반 아이들 열 명 가량이 벌써 와서 긴 소파에 마주 보고 앉아서 즐겁게 떠들고 있었습니다.한 반 아이들이 30명이나 되고, 또 남자 아이들 수도 절반이나 되는데, 초청 받은 아이들은 이 여자 아이들 뿐이고, 또 남자는 한별이 뿐이었습니다.

지영이네는 한별이네 보다 집이 훨씬 크고 넓었습니다. 소파 뒤 테이블에는 빨강, 파랑, 노랑색 굵은 촛불이 켜 있었고, 그 앞에는 예쁘고 포장된 선물들이 두 줄로 차곡차곡 높이 쌓여 있었습니다.

소파에 빈자리가 없어 한별이가 폭신한 융단을 깐 거실 바닥에 앉자, 예쁘게 한복을 차려 입은 지영이가 나타났습니다.

이거, 한별이가 가져온 선물이니?”

지영이는 한별이가 들고 있는 선물을 가리켰습니다.                               

그래. 생일을 축하한다.”

한별이가 일어나 지영이에게 선물을 내밀었습니다.

탱큐!”

지영이가 선물을 받으며 한손을 내밀자, 한별이도 손을 내밀어 악수하였습니다.

, 네가 시골에서 왔기에 아직 이런 것을 모르는 줄 알았지, 뭐니?”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며 한별이가 말했습니다.

난 시골에서 온 게 아니야. 서울 00동에서 살다 왔다구!”

그러자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습니다. 한별이가 영문을 몰라 아이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누군가 한별이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말했습니다.

강북은 강남보다 시골이라구!” 하자, 다시 아이들이 까르르 웃고, 한별이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그때 거실로 오시던 지영이 엄마가 이 말을 듣고 아이들을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그건 오래 전 얘기야. 이젠 강북도 강남 못지않으니 촌이라고 하면 안 돼요. 알았죠?”

.”하고 아이들이 함께 소리 높여 대답하는 순간 지영이 아빠가 밖에서 들어오셨습니다.

한별이가 선채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소파에 앉은 채로 고개만 까딱하면서, 일제히 소리를 질렀습니다.

안녕 하세요?”

그래 그래. 모두들 우리 지영이 친구로구나. 이렇게 와 주어서 고맙다.”

지영이 아빠가 방으로 들어가셨다가 나오신 후, 파티가 시작되었습니다.

지영이 엄마의 말에 따라 지영이가 나와서 커다란 케이크에 키가 큰 촛불 하나와 작은 촛불 두 개를 켜 놓자, 거실의 불은 금방 꺼졌습니다. 촛불에 비친 지영이는 평소보다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엄마의 지시에 따라 모두 일어나 박수하면서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습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박지영,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가 끝나고 지영이가 앞으로 나와 촛불을 입으로 불어서 끄자, 모두 뜨거운 박수와 함께 거실의 불이 다시 환하게 밝았습니다.

이제 저의 소원을 말할 차례입니다.”

지영이의 말에 아이들은 호기심어린 눈을 반짝였습니다. 이 순간이 생일 파티에서 가장 기다려지는 순서입니다.

박지영이의 소망이 있다면, ... 몸매를 더욱 날씬하게 가꾸고 영어공부 열심히 해서 장차 미스 코리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를 누비며 한국인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겠습니다.”

지영의 말에 아이들이 와- 하고 웃으며 박수를 더 크게 쳤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영이는 친구들보다 더 키가 크고 더 날씬하였습니다.

그날 저녁. 아이들은 뷔페식으로 차린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고 떠들다가 헤어졌습니다.

그 후, 한별이가 여러 번 친구들의 생일 파티에 초청 받아 갔습니다. 그럴 때마다 친구들이 너무 사치스럽다고 생각되어, 생일 파티에 가지 말까? 하고 생각했지만, 걸핏하면 촌사람이라고 아이들이 놀려대니 안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튿날은 아침부터 싸락눈이 흩날렸습니다. 

오늘부터 시작된 방학이어서, 한별이는 집에서 오전 내내 핸드폰으로 아이들 번호를 찾아 전화했습니다.

현주니? , 한별이야. 너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알지? ... 그래 성탄절, 예수님의 생일이야. 그렇지만 내 생일도 된다구... , 그걸 몰랐구나. 내일 낮 12시에 우리 집으로 와서 생일 축하해 줘. 그 대신 선물은 안 받기로 했어, 알았지?”

한별이가 아이들 전화번호가 적힌 학급수첩을 보면서 반 친구들을 모두 초청하였습니다.

내일이 한별이 생일이지만, 전 세계 사람들이 축하하는 예수님 탄생일이기 때문에 한별이네 집에서는 그동안 생일을 식구들끼리 모여 조용하게 지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한별이가 친구네 생일 파티에 여러 번 초청 받아 갔었기 때문에 모처럼 맞은 생일을 그냥 모른 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아빠와 엄마가 의논한 끝에 한 반 아이들을 모두 초청하되 선물은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대신 남들처럼 호사스럽게 하지 않고 조촐한 생일 파티를 하기로 한 것입니다.

 

성탄절이 밝았습니다. 하얀 눈을 기다렸으나 눈은 오지 않았지만, 겨울날씨치고는 제법 따뜻하였습니다.

정오가 가까워오자 한별이네 집에는 친구들이 둘씩, 셋씩 떼를 지어 모여들었습니다. 아이들마다 손에는 화려한 백화점 선물꾸러기들이 들려있었습니다.

현관에서 한별이가 기다리고 있다가 친구들을 맞았습니다.

이거 뭐야? 내 그럴 줄 알고 선물 안 받기로 했다고 부탁했잖아? 그런데 왜 가져왔지? 난 안 받을 거야.”

한별이의 말에 성애가 생일 초청 받았는데 어떻게 맨손으로 올 수 있니?” 하자, 같이 오던 지영이가 나섰습니다.

초청을 받아 갈 땐 반드시 격에 어울리는 선물을 가져가는 것이 예의야. , 그것도 모르는 것 보니 아직도 촌티를 못 벗었구나.” 그 말에 아이들이 모두 웃었습니다.

소파를 치워버린 거실에는 30명의 아이들이 가득 끼어 앉았습니다. 벽에는 기도하시는 예수님 사진이 걸려 있고, 그 옆에는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하는 말씀이 단정한 붓글씨로 써 있어서 인지, 아이들은 함부로 떠들 수 없었습니다.

거실 한 복판에는 생일 케이크가 큰 것, 작은 것 두 개가 나란히 서 있었습니다. 큰 케이크에는 긴 양초가 셋, 작은 양초가 셋, 모두 6개가 빨간 불꽃으로 타고 있었고, 몸에는 축 예수님 탄생이라고 생크림으로 수놓아져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그걸 보면서 , 오늘이 예수님 성탄절이지.’하고, 나이를 세어보았습니다. 긴 양초가 셋이고, 짧은 것이 셋이면 33, 아 예수님이 33살에 돌아가셨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또 작은 케이크에는 긴 양초가 하나, 작은 양초 둘, 이렇게 3개가 역시 빨간 불꽃으로 타고 있었고, 몸에는 축 이한별 생일이라고 생크림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걸 보며 아이들은 , 한별이도 나와 같은 열 두 살이구나.’ 했습니다.

그러자 한별이 아빠와 엄마가 들어와 큰 케이크 앞에 서면서, 엄마가 말하셨습니다.

오늘은 우리 한별이 생일이지만, 더 기쁜 것은 세계 사람들이 축하하는 우리 예수님의 탄생일과 같아요. 한별이는 예수님 덕분에 세계 사람들의 축하를 덩다라 받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그래서 우리는 먼저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한 후에, 한별이 생일도 축하하겠어요. 우리는 해마다 한별이 생일에 이렇게 하기 때문에 여러분도 이해해 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모두 한별이 엄마의 선창에 따라 생일 축하노래를 불렀습니다.

탄생 축하합니다. 탄생 축하합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 탄생 축하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생신 케이크에 가까이 선 아이들이 다가가서 하나 둘 셋에 맞추어 훅! 하고 불었습니다. 아이들이 많았기에 불은 금방 꺼졌습니다.

그리고 한별이와 엄마가 작은 케이크로 가서 또 노래하자 모두 따라서 했습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이한별.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가 끝나자, 한별이가 작은 케이크에 다가가 훗! 훗! 하고 불기 두 번만에 불을 끄자,

또 아이들이 힘차게 박수하였습니다.

이제 한별이가 자기 소원을 말할 차례입니다. 한별이 목소리가 오늘 따라 우렁찼습니다.

여러분, 예수님 탄생일과 제 생일에 우리 반 아이들 모두 와 주어서 고맙습니다. 이제 제 소원을 말하겠습니다. ...제 생일에 선물을 가져오지 말라고 했는데 가져 온 저 많은 선물을 보면서, 저는 저 선물들을 그냥 돌려보낼까 생각했다가 음,,, 문득 우리보다 훨씬 어렵게 사는 어린이들이 생각났습니다. ...어제 밤 성탄절 방송에서, 장애자 어린이들이 모여 사는 산동네가 청계산 근처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건강하고 잘 사는 우리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스스로 살 수 없는 아이들입니다. ...그래서 제 소망은 우리 모두 자기가 가져온 이 선물을 가지고 가서 성탄절 선물로 주고 그들과 함께 놀아주고 왔으면 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 생일 파티는 조촐하지만 떡국과 찐 만두, ... 다과를 먹는 것으로 끝내고, 우리 모두 그곳에 가서 함께 예수님의 탄생 파티를 계속했으면 하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언제나 생일 맞은 사람이 소원을 말하면 모두 박수했는데, 웬일인지 오늘은 잠잠합니다.

그 때 한별이 아빠가 크게 손뼉을 치기 시작하자, 아이들도 따라서 박수하였습니다. 손뼉을 치면서 한별이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반짝였습니다. 한별이가 제법 어른스럽게 생각도, 말도 잘 하는 것이 아주 기뻤습니다.

한별이 엄마아빠 곁에서 이것을 지켜본 지영이가 오른 손을 들고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한별이의 어른스러운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합니다. 오늘 이 기쁜 날에 오늘 생일 주인공이신 예수님 정신과 또 한별이의 소원을 따라 우리도 평생 동안 잊을 수 없는 추억을 하나 만들었으면 합니다. ... 우리나라 속담에 쇠뿔은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시간 각자 주머니를 털어 그것을 모아 청계산에 산다는 장애어린이들을 찾아가 선물도 주고 한 시간만 함께 놀아주고 오면 어떻겠습니까? 예수님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찬성하시면 모두 한손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평소 웅변학원에 다니는 지영이의 말은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한별이 아빠 엄마가 먼저 손을 번쩍 들자, 아이들도 따라서 여기저기 들더니 결국 모두 찬성하였습니다.

그것을 본 한별이 엄마와 누나가 재빨리 커다란 대나무 접시 하나씩 가져와 두 편으로 돌렸습니다. 아이들은 파란색 만 원짜리 한 장씩 접시에 얹었고, 한별이와 지영이와 어떤 두 아이는 노란색 5만원 짜리 한 장씩을 서슴없이 내놓았습니다. 한별이 엄마와 아빠도 지갑을 열고 5만원 짜리 2장씩을 각각 바구니에 넣었습니다. 삽시간에 68만 원이 선뜻 모아졌습니다.

이것을 보고 있던 한별이 아빠가 감동했는지, 나머지 32만원과 쌀 80kg 짜리 두가마를 사서 보태겠다고 발표하자, 아이들은 와- 하면서 집이 떠나가도록 박수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떡국과 찐 만두를 맛있게 먹는 동안 한별이 아빠는 서제에 가서, 누구에게 바쁘게 전화를 했습니다. 모두가 점심을 먹고 나서 차와 과일을 먹고 있을 때였습니다.

, , 하는 크락숀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습니다. 아이들을 청계산 동네로 데리고 갈 교회버스가 도착한 것입니다. 저마다 옷을 챙겨 입고 버스를 타러 나서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그 어느 생일 파티 때보다 즐거운 웃음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오늘 따라 봄날처럼 따뜻하고 푸른 하늘이었습니다. .

                                                                                      - 소솔 제1창작동화집(1991) 수록

                                                                                      - 월간 창조문예 개작 수록(2019.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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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이라는 어린이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동화 스토리는 참 재미가 있다. 잘 짜여진 플로트, 풍부한 기독정신이 아쉬움 없이 빙판을 미끄러지는 스케이트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무리없이 다루어져 있는 아주 우수한 작품이다. 나는 이 작품에 A+를 서슴없이 주고 싶다.(원로아동문학가 유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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