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마침 학교에 가지 않은 토요일이어서, 은지는 용돈으로 어제 사다둔 카네이션 세 송이를 아침 식사하기 전에 할아버지와 엄마, 아빠의 가슴에 달아드렸어요. 빨간 카네이션 노란 천에는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세요.‘하는 글이 써 있었어요.
“할아버지, 그리고 엄마 아빠,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세요.”
“그래, 고맙다. 우리 은지가 갈수록 철이 들고, 더 예뻐져 가는구나.”
할아버지가 기뻐하시며 칭찬하셨습니다.
“이게 모두 하나님의 은혜지요.”하는 엄마의 말에, 은지가
“엄마. 소원이 무엇이에요? 오늘 어버이날 하루만이라도 소원을 들어 드릴게요.”
“그래? 내 소원은 ---- 음, 연지가 할아버지의 친구가 되어 오늘 함께 지냈으면 하는데.”
“할아버지요? ”
“그래. 할아버지는 아빠엄마의 아버지가 되시니까 말이다.”
“그럼, 할아버지 소원은요?”하고 연지가 할아버지께 묻자,
“내 소원? --- 음, 내 소원은 우리 식구 모두 나를 따라 어디를 갔으면 하는데.”
할아버지가 묵묵히 식사하는 아빠를 건너다 보셨습니다.
“아버지. 어디를 가시려 구요?”하는 아빠의 물음에, 할아버지는
“애비야. 작년에 보니 어버이날에 꽃을 가슴에 못단 노인네들이 더러 있더구나. 우리 가족이 꽃을 사다가 오늘 노인들에게 가서 이 꽃을 달아드렸으면 한다. 네 생각은 어떠니?”
“좋은 일이네요. 그럼, 오늘을 우리 가족 봉사의 날로 하지요. 어때, 당신은?”
“저도 괜찮아요. 은지는?”하고 엄마가 은지의 뜻을 묻자, 은지는
“저도 찬성이에요.”하며, 좋아서 박수를 짝짝짝 쳤습니다.
아침 식사 후 은지네 가족은 꽃집에 들려 빨간 카네이션 한 다발을 샀습니다. 돈은 아빠가 내셨습니다.
그리고 아빠의 승용차를 타고 종로 2가 탑골공원에 갔습니다.
공원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습니다.
우둑하니 서 있는 사람, 앉아서 얘기하는 사람, 혼자 큰소리로 떠드는 사람도 있었어요. 알고보니 그들은 모두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들이었습니다.
모자를 쓴 사람, 넥타이를 단정히 맨 양복 입은 사람, 허름한 잠버를 입은 사람, 검은 안경을 낀 사람 등 각가지였어요. 그들의 가슴에는 빨간 카네이션이 있었지만, 꽃을 달지 못한 할아버지도 더러 눈에 띄었습니다.
“할아버지. 왜 할아버지들이 모두 여기에 있어요?”하고 은지가 묻자
“언제부터인가 이 공원이 할아버지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었단다.”
“그럼, 할아버지 공원이네요?”
“그런 셈이지. 몸이 늙어서 일을 못하니까 여기에 모여서 날마다 노는 거란다.”
은지네 가족은 공원 안을 다니면서, 가슴에 꽃이 없는 할아버지들을 찾아서 꽃을 달아드렸습니다. 누구보다 연지가 열심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오래 오래 사세요.”
꽃을 달아주며 은지가 웃으며 인사하면, 할아버지들은 함박 웃으며 좋아하셨습니다.
은지네 가족이 더 깊숙이 들어가자, 그늘진 곳에 커다란 현수막이 눈에 띄었어요. 현수막에는 ‘아.사.모 사랑의 봉사대‘라고 큰 글씨가 써 있었어요.
“할아버지. 아,사,모,가 무슨 말이에요?”
“저기 옆에 써 있구나,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긴 말을 세 글자로 줄인 것이 아,사,모란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임? 그럼, 이 할아버지들이 아름다운 사람들이에요?”
“그렇지. 그런데 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단다. 은지야, 저걸 보렴.”
현수막 뒤 그늘진 곳에 여섯 명의 할아버지들이 의자에 앉아서 이발을 하고 있었고, 아,사,모,의 파란색 조끼를 입은 여섯 명의 젊은 부인네들이 할아버지의 머리를 깎고 있었습니다.
부인네들이 부지런히 빗과 가위로 익숙한 솜씨로 이발을 마치면, 안내자가 번호를 불러 기다리던 할아버지가 의자에 앉아서 이발을 하게 했습니다.
“할아버지. 이 할아버지들이 왜 여기에서 이발을 해요?”
“할아버지들은 일을 못하기 때문에 돈이 없단다. 그래서 몇 달동안 이발을 못한 사람도 많지. 그걸 알고, 예수님을 믿는 이.미용 기술자들이 모여 한 달에 한 번씩 시간을 내어 이곳에 와서 할아버지들에게 돈을 안 받고 이발을 해준다는구나.”
“할아버지. 저기 할머니 두 사람이 파마를 하고 있어요.”
“그래 맞어, 할머니들도 있구나. 연지야,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냐?”
“할아버지, 이제 알았어요.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사람이란 말이지요?”
“그래. 저 부인네들도 아름답고, 또 우리 은지도 아름답고.”
“저 두요?”
“그럼. 오늘 어버이날에 꽃을 못단 할아버지들 가슴에 꽃을 달아준 우리 은지야말로 참 아름다운 사람이지.”
“저만했나요. 할아버지도, 또 우리 엄마 아빠도 모두 했지요.”
“그래. 우리 가족은 언제나 이렇게 아름다운 가족으로 살아가자.”
은지 가족이 가져 온 꽃이 어느새 바닥이 났습니다.
그들이 돌아오는 차안에서 은지는 마음에 꼬옥 다짐하였습니다.
“용돈을 저축했다가, 내년에는 내 돈으로 더 많은 꽃을 사다가 달아드려야지.”
차창 밖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른 아름다운 오월이었습니다.
- 월간 기독교교육에 게재(2002. 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