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꽃송이 아기의 꿈

유소솔 2020. 12. 13. 22:30

오늘도 인수는 엄마의 손을 잡고 유치원으로 갔습니다.                     

유치원이 먼발치에 보이자, 인수가 생각난 듯이 말했습니다.

엄마, 내 여자동생 하나 낳아주면 안돼요?”

, 여자동생?”

인수엄마가 놀라며, 인수를 바라보았습니다.

엄마. 우리 유치원에 선희가 있는 데요. 너무 예뻐서 내 동생했으면 해요.”

그제 서야 인수엄마는 무슨 뜻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 인수도 여자동생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어려운 일이야.”

어려운 일이에요?”

그럼. 아기는 생겨야 낳지, 생기지 않으면 낳을 수 없단다.”

엄마. 아기는 어떻게 생기는데요?”

엄마 배를 봐. 아기가 생기면 불룩하거든? 그런데 아직 엄마는 배가 불룩하지 않잖아.”

그럼, 언제 배가 불룩한데요?

그건, 나도 모르지. 하나님이 주셔야 하니까.”

, 그렇구나.”

유치원 마당에는 노란색 원복을 입은 아이들이 노느라 떠들썩했습니다.

인수야. 오늘도 잘 배우고 잘 놀아라.”

. 엄마, 안녕-” 인수가 작은 손을 흔들었습니다.

 

인수엄마가 돌아서서 가다가, 유치원 선생님과 만났습니다.

어머, 인수 어머니!”

연두색 옷이 잘 어울리는 김 선생님이었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 요즘 인수가 엄마를 귀찮게 굴지 않아요?”

그런 거 없는데, 왜 무슨 일이 있어요?”

아직 모르시는구나. 우리 아이 중에 선우와 선희 남매가 있는데, 선희는 아주 귀엽거든요.“

선희라는 말에 인수엄마는 아까 인수의 말이 얼른 생각났습니다.

그래서요?”

인수가 선희를 좋아하는지, 어제 같이 놀다가 갑자기 선희에게 뽀뽀를 했어요.”

저런!”

선희는 싫었던지, 막 울음을 터뜨렸지요. 그러자 오빠 선우가 달려와서 인수를 때려서, 인수와 선우가 서로 싸웠어요. 겨우 말렸지만 인수도 나중에는 울더라구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 때 인수가 울면서, 나도 우리 엄마한테 여자동생을 낳아 달랠 거야하고 말했어요.”

, 그랬어요?”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말씀드린 것이니, 참고하시라 구요.“

. 고맙습니다. 그럼. 선생님, 수고하세요.”

인수엄마는 유치원을 나오면서,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그래서 인수가 여자동생을 낳아달라고 했구나?”

그렇지만 인수엄마는 어림없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15평 임대아파트에 매월 붓는 돈도 장난이 아닙니다.

인수아빠가 받는 월급으로 전기세, 수도세, 깨스비, 아파트 관리비를 내고, 작은 적금을 붓고, 생활비를 아껴 써도 남는 게 별로 없습니다. 인수의 유치원 비용과 인수 엄마 아빠의 용돈을 벌기 위해 인수엄마는 지금 출근을 하고 있습니다.

 

인수엄마가 다니는 곳은 교회에서 하는 노인대학입니다.

동네 아파트 노인들이 일주일에 두 번 모여서, 노래와 율동을 하고 여러 가지 재미있는 게임을 합니다. 또 가끔 훌륭한 선생님들을 모시고 노인들의 건강과 정신을 지킬 수 있는 말씀을 듣고, 점심도 먹습니다.

모든 비용을 교회가 사회를 섬기는 뜻에서 내기 때문에 노인들은 부담이 없어서 인지, 등록한 노인이 80명이나 됩니다. 그래서 이 일을 맡은 사람들도 4명이나 되고,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 교회 여자신자들이 와서 도와줍니다.

인수엄마는 이 노인대학에서 사무도 보면서, 가끔 노래와 율동도 가르칩니다. 그래서 받는 월급은 얼마 되지 않아 겨우 세 식구가 살아가는데 조금 보탬이 되지만 큰 도움은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빠듯하게 살아가기 때문에 인수 하나 키우기에도 힘이 듭니다.

그런데도 인수아빠는 가끔 딸을 하나 낳아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인수엄마는 어려운 살림살이에서 아이 하나를 더 키우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조목조목 따지면서 말하면 인수아빠는 그만 입을 다물어 버립니다.

 

그 날 밤이었습니다.

인수를 먼저 잠재우고, 인수의 엄마와 아빠가 함께 텔레비전을 보았습니다.

9시 뉴스에서, 우리나라의 인구가 점점 줄고 있어서 큰일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젊은 엄마들이 아이들 키우기가 힘들어서 아이를 하나밖에 낳지를 않아, 평균 1.3명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세계 여러 나라 중 가장 작은 수여서, 빨리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앞으로 노인은 많아지고, 젊은이들이 부족해 나라가 약해진다고 걱정하는 목소리였습니다.

여보, 들었지. 우리 같이 하나만 낳은 집이 많은가봐.”

아이들 키우기가 힘이 드는데, 어쩔 수 없지요. .”                                     

여보.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인수 동생을 하나 낳아주면 안될까?”

지금 우리 처지가 나라 걱정을 하게 되었어요? 나 오늘 피곤해서 먼저 자요.”

인수 엄마는 침대로 가서 이불을 뒤집어썼습니다. 오늘 노인대학에서 한바탕

율동을 가르치느라 땀을 흘린 탓인지, 인수엄마는 금방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인수아빠는 침대 속으로 들어가 아내를 뒤에서 정답게 안았습니다. 그러자 잠을 자면서 인수엄마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뒤로 젖히며, 인수아빠를 함께 안았습니다.

 

인수엄마는 커다란 꽃밭 사이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빨강 꽃, 노랑 꽃, 하얀 꽃들이 가득 핀 들판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그 때 주먹보다 큰 빨강 꽃 한 송이가 인수엄마에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인수엄마는 조금 놀라며 그 꽃송이 앞으로 가서 살펴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꽃송이 속에는 예쁜 아기얼굴이 하나 있었습니다.

, 참 예쁜 아기가 있네?”

인수엄마는 자기도 모르게 그 꽃송이를 두 손으로 안았습니다.

엄마, 고맙습니다.”

, 엄마라고?” 인수엄마는 이상해서 그 꽃송이를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꽃송이 아기는 예쁜 웃음을 생글생글 흘리면서, 점점 사라졌습니다.

얘야, 꽃송이 아기야-”

소리를 지르다 깨어보니, 아침 6시였습니다.

, 이상한 꿈이다.”

인수엄마는 일어나서 옆에서 자는 남편을 깨우고, 부엌으로 갔습니다.

인수아빠의 출근을 위해 아침밥을 서둘러야 했습니다.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났습니다. 인수엄마는 요즘 몸에 이상을 조금씩 느꼈습니다.

오늘 아침 아빠 식사를 차리다가 그만 욱하고 헛구역질을 했습니다.

여보. 왜 그래?”

뭘 잘못 먹었나 봐요.”

인수엄마는 아빠를 출근시키고, 인수를 유치원에 바래다준 후, 그 길로 출근했습니다.

속이 매스꺼워서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아, 점심시간에 혹시나, 해서 가까운 병원에 갔습니다.

검사결과는 혹시나 가 그대로 맞았습니다. 아기가 들어선 것입니다.

문득 석 달 전 새벽에 꾼 꿈이 생각났습니다. 꽃송이 속의 예쁜 아기 말입니다.

, 그 꿈이 바로 아기가 들어선 꿈이었구나.”

그렇지만 인수엄마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안 돼. 인수 하나를 키우는데도 얼마나 힘이 드는데.”

인수엄마는 마음을 모질게 먹고, 아기를 지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의사님과 상의하여 수술할 날을 일주일 후로 잡았습니다.

 

그 날 밤, 인수엄마는 또 꽃밭 길을 걸었습니다. 전에 본 아름다운 꽃밭 길이었습니다.

많은 꽃들 중에서 유난히 큰 빨간 꽃송이가 또 보였습니다.

그래. 바로 저 꽃송이야.”

인수엄마는 그 꽃 앞으로 가서, 꽃송이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아기 얼굴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아기는 웃지 않고, 심술이 난 얼굴이었습니다.       

얘야, 너 어디 아프니?”

그러자 아기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습니다.

엄마. 미워!”

, 내가 미워? ?”

난 세상에 나가서 내 꿈을 펼치고 싶은데, 엄마가 못하게 하잖아요.”

, 내가 너를 못하게 한다구?”

엄마는 나를 죽이려고 하잖아요.”

뭐라구, 내가 너를 죽인다구?”

엄마, 살려주세요. 엄마-”하면서 아기는 울며 사라졌습니다.

얘야-”

인수엄마는 자기가 소리치는 바람에 놀라 깨었습니다, 또 꿈이었습니다.

 

인수엄마는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요즘, 아이 하나 키우기가 몹시 힘듭니다. 더구나 둘을 키운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꿈속에서 미리 나타난 귀여운 딸을 만나보니,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세상에 나가서 자기 꿈을 펼쳐보겠다는 딸아이의 꿈을 방해하는 것이 과연 부모로서 할 짓인지?

아무리 아이들을 키우기 어렵다고 해도, 저렇게 귀엽고 예쁜 아이를 죽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인수 엄마는 아침밥을 준비하면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서 생각을 깊이 했습니다. 부엌에서 아침마다 듣는 라디오 방송을 틀었습니다.

아름다운 음악이 들리다가, 아침 뉴스를 방송하였습니다.

뉴스 중에, 우리나라 가정에서 아이를 많이 낳게 하기 위해서 각 가정의 두 번째나 세 번째의 아이들에게는 유아원 보육료를 우선 정부에서 보조한다고 했습니다.

그 뉴스를 듣고, 인수엄마는 누가 자기의 짐을 내려주는 것처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꼈습니다.

그 날 아침, 아빠가 먼저 출근하신 후, 인수는 엄마와 아침밥을 먹었습니다.

인수야, 기쁜 소식을 들려줄까?”

엄마, 기쁜 소식?”하고, 인수가 눈을 커다랗게 떴습니다.

네 소원대로 예쁜 동생이 생겼단다.”

엄마, 정말이에요?”

인수는 숟가락을 던져버리고 뛰어와, 엄마에게 안겼습니다.

그리고 엄마 배를 슬며시 만져보았습니다. 조금 불룩하였습니다.

엄마. 하나님이 내 동생을 주셨어요?”

그럼. 인수가 동생을 달라고 기도했었나봐.”

그러자 인수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고맙습니다.”

고맙다는 인수의 말에 인수엄마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것은 석 달 전에 새벽꿈에 나타난 꽃송이 아기 목소리였기 때문입니다.

 

                                                            - 계간 아동문학세상(2010. 봄호) 게재

 

 

 

 

 

 

 

 

'동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동이와 낙랑이 사랑  (0) 2020.12.26
숲속의 여름학교  (0) 2020.12.23
마스크와 민들레 홑씨  (0) 2020.12.12
마스크와 민들레  (0) 2020.12.12
도시락 편지  (0) 2020.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