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도시락 편지

유소솔 2020. 12. 10. 23:41

9월이 되자, 가을이 다가오고 있는지 새벽이나 밤에는 제법 선선했습니다

준이야, 이제 일어나거라. 아침 선선할 때 공부해야지.”

준이가 일어나 시계를 보니, 어김없이 6시였습니다.

새벽마다 교회에 다녀오신 엄마는 아들을 깨우시고 나서야 다른 일을 시작하십니다.

하품을 하며 일어난 준이가 화장실로 들어가 찬물로 세수를 합니다. 잠이 달아납니다.

준이는 책상에 앉아 오늘 학교에서 배울 공부를 미리 찾아 읽기도하고, 쓰기도 합니다.

 

준이는 엄마와 둘이서 삽니다. 공장에 다니시던 아빠가 작년 가을에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시다 뺑소니차에 치어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엄마와 준이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가난하지만 웃음이 가득하던 준이의 가정에 이때부터 슬픔과 외로움이 깃들기 시작했습니다. 엄마의 얼굴과 준이의 마음에 깃든 쓸쓸함이 몇 달이 지나도 좀처럼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작년 성탄절에 엄마가 집주인 아줌마를 따라 교회에 나가셨고, 준이도 교회학교에 가서 초등부 학생이 되었습니다.

 

새해 첫날부터 엄마는 전에 보다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엄마는 큰 결심을 하신 듯 새해 첫날부터 새벽 5시면 일어나 교회 새벽기도회에 다녔습니다.

이때부터 엄마의 얼굴에서 그늘이 조금씩 사라졌지만, 준이의 마음은 아직도 쓸쓸합니다.

몇 달 전에 엄마는 보험회사에 들어가서 생활설계사로 일하십니다. 일이 쉽지만은 않은지, 밤에는 한숨을 쉴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준이에게는 언제나 웃으며 다정한 말로 용기를 주십니다.

엄마는 집에서 일하실 때 작은 소리로 노래 부르십니다. 자주 들은 준이는 그 뜻은 잘 몰라도 따라서 부를 수 있습니다.

 

-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이 찬송을 3절까지 부르실 때 엄마의 얼굴이 참 평화스러워서 준이도 좋습니다.

또 며칠 전에는 엄마가 액자를 사다가 벽에 걸고 나서, 그 앞에서 소리 내어 읽으셨습니다.

 

- 하나님이 나의 목자시니, 내가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를 푸른 풀밭에 먹이시고, 잔잔한 시냇가로 인도하시도다.

 

큰 소리로 더 긴 구절을 읽으신 엄마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준이가 좋아서 엄마 곁으로 다가가자, 엄마가 말했습니다.

준이야. 이제 우리 집의 아빠는 하나님이시다. 준이 아빠는 우리를 오래 지켜주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지켜주시는 참 아버지시란다. 알았지?”

하지만 준이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알 수가 없어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준이는 가끔 아빠가 생각납니다. 아빠와 엄마와 함께 놀이동산에 가서 청룡열차를 타고 놀았을 때가 좋았습니다. 이젠 하늘나라에 가서야 만날 수 있다고 하시니, 준이는 아빠가 그립습니다.

그렇지만 준이가 가장 싫은 때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가 없을 때입니다. .

엄마, 직장에 안가면 않되요? 집에 오면 엄마가 없으니 마음이 텅 빈 것 같아요.”

내가 직장에 나가야, 우리가 살 수 있는 거야. 직장에서 열심히 일해 돈을 벌어야 우리가 굶지 않고, 또 준이가 대학교까지 가서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계속 밀어주지 않겠니?”

그렇지만 엄마가 없으니 집에 혼자 있기가 쓸쓸해서 그래요.”

그래? 그럼, 네 마음에 예수님을 모셔봐. 그럼, 쓸쓸하지 않아. 나도 그랬단다.”

예수님을 어떻게 모시는데요?”

네가 아빠를 부르듯이 마음이 쓸쓸할 때마다 큰 소리로 하나님 아버지!‘하고 부르면 된단다.”

그렇지만 준이는 안 보이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른다는 게 어쩐지 이상합니다.

 

이튿날 학교에서 오전 공부를 마치고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급식을 먹으러 식당으로 가고, 교실에는 급식을 안 먹는 준이만이 남았습니다.

준이가 도시락을 풀자, 빨강색 종이가 도시락 뚜껑에 붙어있습니다. 준이가 종이를 뗀 다음, 거기에 쓴 글을 읽었습니다.

 

“예수를 마음에 모시는 사람,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는 특권을 주셨단다.“(요한 3:12) - 엄마가 씀.

 

준이가 편지를 속으로 읽었는데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소리 내어 두 번을 더 읽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준이의 마음속에 누가 들어온 것처럼 마음이 든든해졌습니다.

도시락을 열고보니, 준이가 좋아하는 김밥이었습니다.

준이는 자기도 모르게 처음으로 소리 내어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도시락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월간 <기독교교육> 게재(200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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